단풍 3/김문억
아직도 난 너를 잘 모르겠어 진맥을 못 하겠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하지가 않아 합격 불합격 대박 나고 부도나고 입원하고 퇴원하고 일교차가 심하고부터 마음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너무 야하게 변하고 있어 그렇게 늘 서성거리며 앓는 소리 하니까 믿기지가 않아 어디론가 갈 것 같아 마지막 유언장 같아
꽃구경 멀미가 나서 울렁증으로 몸살을 앓고 시를 쓰다가 대명천지 땡볕에 세운 무지개는 무너지고 편집에서 삭제된 아쉬운 문장들이 짧은 해 부여잡고 북새를 떨고 있어
화려한 배웅 뒤에서
받아 읽는 점자 한 장.
물레방아 : 대나무 대롱 끝에서 빳빳하게 세운 물이/ 슬그덩슬그덩 물레를 돌리고 있다/ 확 속의 곡식을 찧고 있다 달아오른 공이의 힘.
김문억 시조집<김문억의 사설시조2019파루>중에서
옛 사람들은 물레방아를 보고 살았지만 요즘 사람은 물레방아를 볼 기회가 거의 없다
물레방아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의 힘에 의해서 거대한 물레가 돌아가고 떨어진 물이 도가니를 가득 채웠다가 확 쏟아지는 힘에 의해서
돌확 속에 있는 곡식을 찧은 공이의 힘이 가해지는 원리다
공이는 수컷이고 돌확은 암컷이다
대나무 대롱,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 돌고 도는 물레방아, 공이, 돌확, 같은 낱말들이 모여서 엮어지는 문장을 잘 살펴보면서 이 시를 감상하면 물레방아는 결국 관능적인 형상이 된다. 한적한 시골풍경으로 늦가을 마른고추를 한 바가지 넣고 공이질을 하는 물레방아를 본 기억이 있다. 고전의 어느 단편을 읽는 듯 한가하고 행복하다.
아무것도 아닌 물레방아 단편을 그렇게 또 보고나니 세상모든 관계가 그런 이치로 돌고 돌아 간다.
하늘과 땅의 관계를 시작으로 해서 남과 북 물과 불 수컷과 암컷 +와 - 의 관계에서 에너지는 불출을 하고 생명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