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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義菴 손병희선생孫秉熙先生의 한시漢詩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4.12.01|조회수18 목록 댓글 0

의암義菴 손병희선생孫秉熙先生의 한시漢詩

김문억 

 

 

雖云芒木發花佳(수운망목발화가)

蕩池蓮花尤香好(탕지연화우향호)

古今班常何有別(고금반상하유별)

椒井洗心平等人(초정세심평등인)

 

비록 가시나무라 이름 지어도 핀 꽃은 아름답고

진흙탕 못에 핀 연꽃일지라도 향기는 더욱 좋더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을 어찌 반상으로 유별하느냐

초정에 마음을 씻으니 사람은 다 평등하더라

-손병희의「초정약수음椒井藥水吟」전문-

 

명품이다.

나라를 빼앗겼던 조선 말기라고는 하지만 꼬장꼬장한 유교사상과 반상의 따가운 눈초리가 시퍼렇게 살아 있던 때다.

외래문화가 도입되고 개화기를 거치고 있던 시절이라고 하지만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양반의 기득권이 아직은 득세를 하던 시절에

이런 시 한 수로 자신의 속마음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은 확고하고 대범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양반 골이라고 하는 충청도 꼬장꼬장한 본바닥에서 쓴 이런 저항적 외침은 선구자적 사상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풍자된 비유도 뛰어나면서 통쾌하거니와 잘못된 반상 계급의 뿌리 깊은 아킬레스건을 마냥 유린하면서

시대를 비아냥거린 의지가 용감하면서도 분명하다.

기저에 그런 사상을 깔고 있는 한시 한 수는 문학적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으로도 잘못된 인권에 대한 큰 질문이기도 하다.

칠언절구七言絶句로 된 이 글은 처음 두 문장에서 소외되고 힘 못 쓰는 서민층을 가시나무와 더러운 못물에 비유시키고 있다.

대단히 절묘하다특히 가시나무를 끌어오는 속뜻에는 저항적 이미지가 강하게 숨어 있다.

가시 자체가 이미 저항적이면서 숨기고 싶어도 자꾸만 밖으로 솟구쳐 나오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송곳과 같은 의미다아카시아 꽃이나 연꽃 같은 경우는 특히 향이 더욱 진하고 깊다.

비록 신분은 하층이지만 장미나 국화 같은 군자 행세를 하는 꽃과 비교할 수 없다는 자존심이다.

하늘님이 내려준 자연의 조화도 그러하려니와 어찌 사람의 존엄이 계급화 되어 차별될 수 있느냐는 외침이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모순도 대자연이라고 하는 물,

물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하는 지독하게 독한 초수로 몸을 씻고 보면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외침이다.

톡톡 쏘아대는 초수의 의미가 리얼하고 진한 참여시다.

특히 새롭게 인식되는 것은 그 무렵은 나라를 빼앗기고 궁핍하던 시절이어서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는 울분을 쓴다거나 애국충정을 이야기하는 시가 많았지만

이 시는 계급사회가 지배하는 전제정치를 반대하고 민권신장을 외치는 휴머니즘이 진동하는 시다.

물론 의암 선생이 구국을 위해 독립선언문을 쓰고 해방을 위해 평생을 몸 바친 실천은 이미 역사에 길이 빛나는 사실임을 누구나 알고 있는 바다.

젊은 시절에 천도교에 입교하면서 교령이 되고 독립운동을 했으니

어쩜 이 시는 시기적으로 봐서 스무 살의 청년 때 쓴 작품으로 미루어 짐작해 본다.

어느 날 초정 물을 먹으러 갔다가 양반네들이 거들먹거리면서 일반인들을 괄시하는 꼴을 보고

청년 손병희의 울분이 불끈하여 손을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강하고 정의로웠던 선생의 품성으로 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화다.

어쩜 이 글도 그 무렵에 쓴 작품 같다통쾌하다.

사실 감상은 이렇게 유추 해석하고 있지만 네 구로 이루어진 한시 한 편은 시끄럽지도 않고 큰 소리도 아니면서 품격이 깊다.

그러면서도 안으로의 외침이 우렁우렁하고 크다는 말이니 문학적 가치가 별나다.

 

기왕 붓 잡은 김에 자랑 좀 해야겠다.

어쭙잖은 글을 쓴다고 우쭐대고 있는 필자 입장에서는

구국의 선각자이면서 이런 좋은 글을 남긴 의암 선생이 우리 고향 출신이라는 것에 한없는 긍지를 갖게 된다.

뿐이겠는가의병장 한봉수 선생이 있는가 하면 단재 신채호 선생도 있고 신규식도 있다.

손병희 선생을 비롯하여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구국지사가 여섯 분이나 되고

현대에 와서는 4장군을 다섯이나 배출한 곳으로 청풍명월의 고장이면서 애국충절의 고장이라고 한다.

이런 선각자들 앞에서 붓끝이 휘거나 게으르면 안 될 것이다.

글을 쓴답시구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 같아 부끄럽다.

훈민정음을 자랑으로 알고 행복하게 쓰는 나로서는 모처럼의 한시 감상이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김문억 산문집<스트리킹 하는 시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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