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을 그리다
신달자
쌀 한 톨을 그리기로 했다
밥 아니라 마음을 먹고 그리기 시작했다
마음은 생명의 주인
쌀 한 톨을 그리다가
쌀이 안 되고 터널이 되고 기차가 되고 먹구름이 되고
쌀 한 톨을 그리다가
쌀이 가마니가 되고 푸대가 되고 한주먹이 되고
몇 개의 종이가 찢어지고 늑대가 울고 몇 개의 밤이 뭉친 어둠이
지나가고
쌀 한 톨이 보이네
쌀 한 톨 안에 우주가 보이고
내가 밟고 자란 땅과 흙이 보이네
시든 잎 다 떨어지고 새잎 돋아나네
들판에 허리 구부린 자연의 주인
쌀 한 톨에 목숨이 열리는
희열이 보이네 노동이 만들어 가는 생명줄
인간의 무궁무진이 보이네
무더기가 아니라 하나의 존중이 보이네
천근의 쇠뭉치보다 더 무거운 한 톨 한 알의 무게
사라지지 않게 진하게 그리네
지구에 튼실하게 남게
행성에 떠돌지 않게
쌀 한 톨을 그렸는데 역사의 증언이 보이네
마음 안에 생명력이 퍼덕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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