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바이러스
최순섭
하얀 마스크 하나가 휙 지나갔다
검은 복면을 하고 바라보는 눈빛이 날카롭다 앵앵 소리 들려오는 도시의
스산한 회색빛은
죽은 까치를 밟고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 속도보다 빠르게 번지고
잠시 후 복제인간이 코로나를 타고 와서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기침소리는 총알이 날아와 꽂히듯 아프다
하나둘 늘어나는 표범의 눈빛이 번뜩거리는 오후
붉은 깃발을 들고 하얀 마스크가 몰려왔다
비행기를 타고 왔다 배를 타고 왔다 자동차를 타고 걸어서 왔다
또 다른 하얀 마스크가 내 곁으로 다가오고
나는 슬금슬금 자리를 뜬다
복제된 하얀 마스크가 다가와 길을 물었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또 한 손을 내저으며
‘ 저리 가요 숨을 곳이 없어요.’ 라고 말했다
불어나는 하얀 마스크 속에서 나는 하얀 바이러스
기침소리 한방에 다리가 풀리고 텅 비어가는 유령들이 사는 도시
뉴스에서 내일은 영하 12도라고 일기예보가 나올 때
하얀 눈이 내렸다
하얀 마스크를 쓰고 내렸다
한동안은 녹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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