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외우는 자세
차주일
팔이 땅을 짚고 있어 몸통에 자음이 없을 때
낯선 감정 하나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표정을 상상했을까.
보이지 않는 감정을 자기 최면으로 그린
생각 한 장 보여주기 위해
미간을 갑골문자처럼 찡그려
있은 적 없는 감정을 나타내 보다가
상현과 하현 간격으로 눈 깜박여
미완성 표정들을 폐기해버리다가
비로소 감정에 체온을 칠한 표정을 만지기 위해
두 발이 얼굴을 감싸 두 팔 되었을 때
표정을 발음하기 위해
입 모양을 고르는 한 짐승의 침묵
이보다 진심 어린 언어가 있을 수 있을까.
인간의 침묵을 짐승의 입으로 말하기 위해
표정을 초성 자리에 올리고
직립을 받침 자리에 받치고
처음으로 사랑 고백을 창조한
인간의 침묵을 외우던 짐승의 자세를 빌리면
내 자세로 사랑 고백하는 '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후생 아닐까.
내가 침묵에 들면 누군가 큰 숨을 내쉬곤 한다.
누가 나를 열람하나 보다.
내 침묵을 골라 자세를 꾸리는 사람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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