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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감상실

[詩]침묵을 외우는 자세 / 차주일

작성자박오은(소교)|작성시간23.03.03|조회수36 목록 댓글 0

침묵을 외우는 자세

 

                                                                             차주일

 

팔이 땅을 짚고 있어 몸통에 자음이 없을 때

낯선 감정 하나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표정을 상상했을까.

 

보이지 않는 감정을 자기 최면으로 그린

생각 한 장 보여주기 위해

 

미간을 갑골문자처럼 찡그려

있은 적 없는 감정을 나타내 보다가

상현과 하현 간격으로 눈 깜박여

미완성 표정들을 폐기해버리다가

 

비로소 감정에 체온을 칠한 표정을 만지기 위해

두 발이 얼굴을 감싸 두 팔 되었을 때

 

표정을 발음하기 위해

입 모양을 고르는 한 짐승의 침묵

 

이보다 진심 어린 언어가 있을 수 있을까.

 

인간의 침묵을 짐승의 입으로 말하기 위해

표정을 초성 자리에 올리고

직립을 받침 자리에 받치고

처음으로 사랑 고백을 창조한

인간의 침묵을 외우던 짐승의 자세를 빌리면

 

내 자세로 사랑 고백하는 '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후생 아닐까.

 

내가 침묵에 들면 누군가 큰 숨을 내쉬곤 한다.

누가 나를 열람하나 보다.

 

내 침묵을 골라 자세를 꾸리는 사람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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