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이돈형
국수를 삶는다
긴 장마에 벽지가 뜨고 곰팡이 냄새는 내가 세상에 매달려 내는 냄새
처럼 뭉쳐있다
새들의 좁은 입으로 저녁의 외벽이 물려있고 사람들은 하루치 몸에
밴 곰팡내를 털며 돌아온다
삶는 냄새엔 사려가 있어 친근하다
끓어오를 때 찬물을 붓듯 허기를 끼얹고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창문
을 열어 냄새를 풍겨볼까
핏물 빠진 실핏줄처럼 면발이 풀어질 때까지
풀어주는 게 아니라 풀어지는 게 방생이 아닐까 국수를 저으며 생
각한다
저을수록 한 방향이 적막해지고 갓 삶아낸 면을 헹구다 보면 손 씻
는 삶을 어르는 소리가 들려
안간힘과 안간힘이 불다가 한 덩이가 될 때까지 삶은 국수를 냉장
고에 넣는다
무례하게 불은 국수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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