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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감상실

[詩]뜻밖의 질문 / 천양희

작성자박오은(소교)|작성시간23.03.12|조회수41 목록 댓글 1

뜻밖의 질문

 

                                                   천양희

 

눈이 녹으면 그 흰 빛은 어디로 가나

그가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는 다만

그 질문을 생각하고 기억하고 상상할 뿐

그 흰 빛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이 세상에

눈보다 더 눈부신 흰 빛이 있을까

얼마간 의문을 가져보다가

생각은 머릿속으로 하는 혼잣말 같고

날리는 눈발은

하염없이 잃어버리는 목소리 같아

 

눈이 쌓이고 쌓인 눈 위에

또 눈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누구의 기억 속에 얼마나 쌓였을까

거듭 가파른 생각을 한다

어느덧

눈에 눈[雪]물이 차오른다

 

눈이 녹아도

그 흰빛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눈을 쓸면서 뒤늦게 받아들인다

 

저 흰 빛만큼 눈부시게

내 생각을 들어올린 구절은 없다

 

어떤 눈은 너로부터 무너지고

어떤 너는 눈처럼 쌓인다

 

눈이 와서 하는 일이란

나에게서 오점을 지워주는 일

 

백색이 모두인 눈의 세계에도

유백 설백 청백으로 나뉜다는 걸 알고 난 뒤

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뜻밖의 질문을 받을 때처럼 놀라서

눈길을 오래 걸어 본다

 

쌓이거나 녹거나 하는 것만큼

긴 문장이 있을까

 

돌아보니

어느 소설의 첫 문장같이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마침내

뜻밖의 질문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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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샤인(이현재) | 작성시간 23.03.13 ㅡ 눈이 쌓이는것을 보면서
    나는 누구의 기억에 얼마나
    쌓였을까 ㅡ
    ...멋진 표현입니다...

    아래 시도 좋아합니다.

    벌새가 사는 법
    /천양희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번이나
    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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