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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감상실

술의 둠스데이/문정영

작성자이명희|작성시간23.06.07|조회수39 목록 댓글 0

  술의 둠스데이/ 문정영

 
나는 매일 술을 조금씩 먹고 자랐다
서른 마흔 그 이상의 나이를 먹으면서도, 좁은 이마에 띠를 두르고 달리기하면서도
술병 뒤에 숨어 먹거나 독작하였다
어떤 것이 사라질까, 두렵지 않다 술잔에 이야기하였다
폭음을 싫어한다는 말에 꽃잎이 혼자 웃었다
지구의 종말은 비둘기가 먼저 알 거야
뱉어놓은 술 찌꺼기를 가장 많이 먹는 짐승은 위대하니까
간에서 자라는 물혹들이 가끔씩 물었다
내가 자란 만큼 술은 사라졌는가, 아니 빙하가 녹는 속도를 묻는 게 더 빠를지 몰라
나는 매일 불안한 공기를 뱉으며 키가 줄었다
내 몸속에 들어와 숨쉬기 곤란한 질문이 이별이었을까
내가 놓아버린 저녁을 감싸고 있는 술잔들이 따듯해졌다
이제 좀 더 놓아버릴 것들을 찾아야겠다고 실언했다
더는 당신이라는 말을 술병에 담지 않겠다고
자정 지나 혼잣말하곤 했다

 

―계간 《시산맥》 2023년 봄호
_문정영 시인
1997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낯선 금요일 』,『잉크 』, 『그만큼』, 『꽃들의 이별법』 등. 계간  《시산맥 》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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