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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감상실

구덩이- 루이스 새커

작성자강애나-書瑛|작성시간23.06.15|조회수28 목록 댓글 1

     구덩이- 루이스 새커

 

 

 

내가 좋아하는 '웨이싸이드학교' 시리즈를 쓴 작가의 작품이다. 루이스 새커.

그 시리즈는 1978년에 발간됐다고 하는데 그간의 세월의 격차가 느껴지지 않는 재미를 준다는게 놀랍다.

 

'구덩이'는 1999년 뉴베리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이 작가의 이야기는 너무너무 매력적이다. 이런 일이 가능해? 싶게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캐릭터가 살아있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보다 생생한 현실감을 준다. 또 이 작품은 플롯이 치밀하게 구성되어있어서 끝까지 봐야 비로소 아아아~하는 감탄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

 

'구덩이'는 3가지 작은 이야기가 큰 이야기를 이룬다.

 

<이야기 1> 엘리아 옐내츠와 마담 제로니

 

스탠리 옐내츠의 고조할아버지 엘리아 옐내츠가 머리는 텅텅 비었지만 외모가 아름다운 아가씨와 결혼하기 위해 마담 제로니에게 조언을 구하고, 마담 제로니는 새끼 돼지를 주며 매일같이 산에 안고 올라가 물을 먹이라며 만약 소원성취할 경우 자기를 안고 산에 올라가 물을 마시게 해 달라는 조건을 걸었다. 엘리아는 아가씨에게 청혼하기 전날까진 그렇게 했지만 당일엔 돼지냄새나는 것이 싫어 물을 먹이는 대신 목욕을 했다. 그 결과 라이벌 남자의 돼지와 몸무게를 비교해봤더니 300kg으로 똑같아서 아가씨는 고민하게 된다. 아가씨가 자신과 50대 아저씨 중 누굴 고를지 고민하는 모습에 허탈해진 엘리아는 "저 남자와 결혼하세요"하며 포기해버리고 미국행 배를 탄다. 마담 제로니와의 약속은 바다 위에서야 생각이 났고 약속은 지켜지지 못해 저주를 받게 된다. 이런 연유로 그는 대대로 자손들에게 일이 안될 때마다 '아무짝에도-쓸모없고-지저분하고-냄새-풀풀-나는-돼지도둑-고조 할아버지'라는 오명으로 불리게 되고 말았다.

 

<이야기2> 키스하는 케이트 버로우와 양파장수 쌤

 

100여년도 더 전에 '초록호수'마을. 드넓은 초록호수를 곁에 둔 마을엔 케이트 버로우라는 유일한 학교 선생님이 있었다. 그녀는 흑인인데다 '매리 루'라는 양파먹는 당나귀를 데리고 다니며 호수 너머 산에서 양파를 캐서 파는 양파장수 쌤을 사랑하게 됐다. 학교의 비새고 삐걱이는 곳을 고쳐달라는 핑계로 그와의 달콤한 시간을 보내다가....어느 비오는 날 케이트가 쌤을 사랑하는 마음을 못이기고 뛰쳐나가 쌤에게 "가슴이 아파요" 라고 했더니 쌤은 "그것도 제가 고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키스한다. (특히 이 장면, 이상하게도 진짜 감동적이었다...구구절절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해 늘어놓지 않았지만 딱 보면 아, 하고 느껴지는 장면. 작가에게 다시 경의를 표하며....;) 그런데 이 장면을 딱 보게 된 어떤 부인이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을 내고 '흑인은 백인과 키스하면 안된다'는 법을 어겼단 이유로 트라우트가 쌤을 총을 쏴 죽인다. 이 사건 이후로 초록호수는 점점 메말라 바싹 말라 갈라진 땅을 드러내게 되고, 케이트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 은행을 털고 악당들을 처치하는 전설적인 무법자 '키스하는 케이트 버로우'가 된다. 그녀가 땅 속에 은행에서 턴 엄청난 돈을 묻어놨을거란 생각에 트라우트와 그 아내는 그때부터 무작정 땅을 파기 시작한다.

 

<이야기3> 스탠리 옐내츠와 제로

 

엘리아 옐내츠의 자손들은 거꾸로 말하면 성과 똑같아지는 이름인 스탠리를 대대로 부여받았고, 100여년 후 엘리아의 고손자인 스탠리 옐내츠는 뚱뚱보에다 학교에서 괴롭힘당하는 왕따로 고달프게 살다가 운도 지지리 없게도 하늘에서 떨어진 유명 농구스타의 운동화를 받았단 이유(고로 그 운동화를 훔쳤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초록호수 캠프로 오게 되었다. 거기엔 고참자들이 많았는데 겨드랑이, 엑스레이, 지그재그 등등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스탠리는 '원시인'이란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땅을 파다가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면 소장한테 보고하게 되어있었다. 알고보니 소장은 트라우트의 증손녀쯤 되는 여자로 대대로 뭔가 엄청난 보물이 나오길 기대하며 땅을 파왔던 집안 출신인 것이었다. 어느만큼 지난 후 제로는 스탠리의 땅을 1시간 파주는 대신 스탠리는 제로에게 읽는 법을 가르쳐주는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사건 이후 제로는 삽을 들고 광활한 호수 저편으로 가버리고 스탠리는 제로를 걱정하다가 트럭을 훔쳐 찾아보려 했으나 미수에 그쳐 결국 스탠리도 제로를 찾아 광활한 땅을 떠돌게 됐다.

스탠리는 제로가 '매리 루'라고 쓰여진 뒤집어진 배 밑에서 복숭아 단지 안의 '스플루시'를 먹으며 버틴 걸 알게 되고 둘은 넘버원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가 얹혀진 산으로 무작정 떠난다. 갖은 고생 끝에 도착해서 진흙탕 속 물과 넘치는 양파를 먹으며 버티다 캠프로 돌아가 보물을 찾아 떠날 생각을 한다. 늦은 밤 도착해 립스틱뚜껑이 나왔던 구덩이를 열심히 파다가 드디어 여행가방을 발견하고 꺼낸 순간 그들은 소장과 미스터선생님, 펜댄스키 선생님에게 포위당해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노란반점 도마뱀 여러 마리 덕분에 당장 가방을 뺏기진 않았지만 스탠리와 제로는 공포에 떨게 된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스탠리의 변호사가 도착했고 여행가방은 스탠리 옐내츠라는 이름이 쓰여 있어 뺏기지 않게 됐으며 제로와 스탠리 둘다 초록호수 캠프를 안전하게 떠나게 된다.

알고보니 스탠리의 아버지가 헌 운동화를 새 운동화로 바꾸는 실험을 하다가 발냄새 제거제를 발명했고 덕분에 특허전문변호사인 모렝고씨에게 부탁해 스탠리를 빼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스탠리의 아버지가 그걸 발견한 날은....엘리아의 고손자 스탠리가, 마담 제로니의 고손자 제로를 업고 산에 가서 진흙탕 물을 먹은 그 다음날이었다!!! (이 부분을 읽는데 소름이 끼쳤다)드디어 오랜 저주는 풀렸다.

 

아...또 쓰다보니 엄청나게 길어졌다.

하여간에 이 세 가지 이야기가 교묘하게 얽혀진 '구덩이'는 정말이지 대단한 작품이다. 정리하고 나니 그 사실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렇게나 많은 복선과 플롯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이야기 완성도라니.

구덩이, 도마뱀, 무법자, 캠프, 삽, 양파, 매리 루, 초등학교 선생님, 운동화, 집시, 돼지, 흑인과 백인, 복숭아, 넘버원 모양의 돌산...아 진짜 최고다 ㅋㅋㅋ 가만히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 진짜 웃기다.

이런 걸 재료로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루이스 새커밖에 없을거다.

이런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그는 구덩이 안에 인종차별문제, 아동의 인권문제, 물질 만능주의 세태 등 사회적 이슈들을 뒤섞어놓고, 운명을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하는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도 심어놓았다.

구덩이를 파며 단단해져갔던 몸처럼 스탠리의 우유부단함과 순진함은 집안 내력인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기질이 되어 운명의 극복자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구덩이 1개를 파야한다면 완전히 파여진 상상의 구덩이와 현실의 구덩이를 비교하며 한숨쉬기보단 당장의 한 삽, 그 다음 한 삽만을 생각하며 묵묵히 파는 것이 오히려 희망적이며 현실에 충실한 자세일 것이다. 그처럼 스탠리는 자기의 저주받은 운명과 그 결과를 미리 생각하기보다 당장 해야 할 일, 예를 들어 제로를 찾아 나서는 일, 산을 오르는 일 등을 택하여 묵묵히 하나하나 해감으로써 희망을 유지했고, 저주의 사슬을 마침내 끊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단, 한가지 단점이라면 300페이지가 넘는 양 때문에 읽어주기가 쉽지 않겠다는 거. 고민좀 해봐야겠다. 재밌긴 엄청 재밌는데..어쩌지?

 

아! 까탈이 많았던(서울 디지털 대 이경철 교수의 논술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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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강애나-書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6.15 이 글을 읽다 보면 구덩이에서 우리는 사랑과 이용 또 배신하는 인간의 본심을 알게된다 인간은 선한 목자 보다 하느님 아래 늘 심판을 받아 가야 하는 대상인것을 이 글에서 느꼈고 그 힘겹고 어려웠던 논술과제는 몇 번을 내고 또 냈어도 영어 실력도 모자란 나에게는 원어로 읽기는 크게 부족함이 많았다. 에공 다시는 원어 읽기 안할래요. 우리는 이경철 교수를 악경철이라 불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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