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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감상실

[詩]끝이 없는 것들 / 강 순

작성자박오은(소교)|작성시간23.07.18|조회수42 목록 댓글 0

끝이 없는 것들

                                                              강 순

 

 

생각은 밤을 길게 통과하는 고딕 양식

끝과 끝이 검고 뾰족해서 밤을 아프게 찌른다

 

질문과 대답에 둘러싸여 검은 피를 흘리는 사람이

한밤에 베개를 적시다가 돌연히

생각의 뿔을 그러잡아 내일의 방향 쪽으로 던진다

 

바닥과 벽들이 악쓰는 아이처럼 일어선다

시공을 가리지 않고 벌떡벌떡 일어선다

너는 슬픔의 목을 아직도 비틀지 못하였구나

생각들이 한숨을 몰아 아우성친다

 

동쪽은 곧 아침 해를 보내 염탐을 시도하겠지

패잔병 같은 불면이 생각의 성들을 몇 번 허무는지

 

거룩하고 위대한 생각들이 무너진다

비루하고 쪼잔한 생각들이 세워진다

 

통장 잔고, 공과금, 생활비 목록이

기형도, 허수경, 옥타비오 파스를 완패시킬 때

 

생각들은 흠뻑 지쳐 속눈썹이 늘어진다

뾰족한 것들은 모두 치열한 밥그릇 속에 있는 거다

내 안에서 비장하고 얍삽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소리친다

 

끝이 없어서 시작점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이

살 속으로 흥건히 들어온다

 

뾰족한 것들은 왜 모두 시린 몸의 은유인 걸까

 

버리지 못한 생각 알갱이들은

희망의 끝에서 외로운 발톱을 세우는 시간의 유적

슬픔의 끝에서 더욱 뾰족해지는 한밤의 유언

 

뜨거운 불면은 왜 건조하고 가려운 등 쪽으로만 흐르는 걸까

강 순 시인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시집으로 『이십 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 『즐거운 오렌지가 되는 법』, 『크로노그래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가 창작기금 수혜.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현재 수원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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