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를 먹는 저녁
안이숲
상자 속에서 너의 원형은 가지런하다
처음 뜨거웠을 때를 기억하나요, 당신
한입 베어 물며 대화를 할 때 입가로 조금씩 새어나가던
뜨겁고 단내 나는 웃음
전자레인지에 남은 조각을 다시 데워야 할까
대부분 식어버린 상대방의 표정을 배려하며
더 이상 달라붙지 않는
임계점이 지난 조각에 대해
눈을 뜰 때나 눈을 감을 때나
아니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파뿌리처럼 늘어지는 피자의 점성을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
먹고 살기 위해
새벽시장 인력 패 사람들과 입씨름을 하는 긴 시간 동안
피자는 조각마다 각각 다른 체온으로 입안에 들어가고
우리가 실제로 먹은 피자는 너무 굳어서
조금 녹아버린 빙하 같기도 하다
피자에는 빠른 시간이 산다
저녁은 늦게 오고
끈적하게 늘어지는 눈물이 조금씩 식어가는
접시 같은 네가
이제 슬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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