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의 가을 / 나태주
바야흐로 이 나라에는 누님의 가을입니다.
뻐꾸기 뻐꾸기 꾀꼬리 찌르레기 같은 것들
모두 목이 쉬어 재 넘어가고 먹구름도 따라가고
이제 이 나라에는 바위 틈서리로 섬돌 밑으로
날카롭고 미세한 강물 다시 흐르기 시작하여
눈물 어린 안구를 말갛게 씻고 바라보아야 할
누님의 가을입니다
누님.
그 아득한 미리내를 건너
깊은 밤마다 꽃상여 타고 하늘나라로 시집가신 누님.
들국화 꺾어 싸리꽃 꺾어 꽃다발 만들어 드릴 테니
무덤을 열고 꽃가마 타고
서리 기러기 줄 서 나는 하늘로 해서
치마 끝에 초록 수실 빨강 수실 넘실거리며
두 눈고피에 파란 불 켜 달고
오십시오. 부디 이 땅에 다시 강림하십시오.
이제 이 땅의 모든 꽃들과 열매와 나무들은
일 년 치의 죽음을 장식하기 위하여
예쁘게 예쁘게 치마저고리를 갈아입었고
이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죽어서도 이름이 잊혀지지 않기를
꿈꾸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님.
어찌하여 풀벌레 울음소리는 밤새워
아직도 우리에게
돌아오라, 돌아오라, 돌아오라, 목청을 돋구어
이 땅의 적막을 보태는 것이겠습니까?
누님.
바야흐로 이 나라에는 누님의 가을입니다.
그 아득하고 깜깜한 눈물의 무덤을 열고
저 미세한 풀벌레 울음소리의 강물을 노 저어
아무도 모르게 가만가만
이 땅의 풀과 나무들 속으로 오십시오.
오셔서 붉은 나뭇잎들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익어가는 온갖 과일들을 더욱 달디달게 익히시어
이 나라의 가을을 더욱 완전무결한 죽음이게 하십시오.
이 나라의 가을을 완성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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