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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감상실

누님의 가을/나태주

작성자이명희|작성시간23.09.20|조회수84 목록 댓글 2

누님의 가을 / 나태주

 

바야흐로 이 나라에는 누님의 가을입니다.

뻐꾸기 뻐꾸기 꾀꼬리 찌르레기 같은 것들

모두 목이 쉬어 재 넘어가고 먹구름도 따라가고

이제 이 나라에는 바위 틈서리로 섬돌 밑으로

날카롭고 미세한 강물 다시 흐르기 시작하여

눈물 어린 안구를 말갛게 씻고 바라보아야 할

누님의 가을입니다

 

누님.

그 아득한 미리내를 건너

깊은 밤마다 꽃상여 타고 하늘나라로 시집가신 누님.

들국화 꺾어 싸리꽃 꺾어 꽃다발 만들어 드릴 테니

무덤을 열고 꽃가마 타고

서리 기러기 줄 서 나는 하늘로 해서

치마 끝에 초록 수실 빨강 수실 넘실거리며

두 눈고피에 파란 불 켜 달고

오십시오. 부디 이 땅에 다시 강림하십시오.

 

이제 이 땅의 모든 꽃들과 열매와 나무들은

일 년 치의 죽음을 장식하기 위하여

예쁘게 예쁘게 치마저고리를 갈아입었고

이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죽어서도 이름이 잊혀지지 않기를

꿈꾸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님.

어찌하여 풀벌레 울음소리는 밤새워

아직도 우리에게

돌아오라, 돌아오라, 돌아오라, 목청을 돋구어

이 땅의 적막을 보태는 것이겠습니까?

 

누님.

바야흐로 이 나라에는 누님의 가을입니다.

그 아득하고 깜깜한 눈물의 무덤을 열고

저 미세한 풀벌레 울음소리의 강물을 노 저어

아무도 모르게 가만가만

이 땅의 풀과 나무들 속으로 오십시오.

오셔서 붉은 나뭇잎들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익어가는 온갖 과일들을 더욱 달디달게 익히시어

이 나라의 가을을 더욱 완전무결한 죽음이게 하십시오.

이 나라의 가을을 완성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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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오은(소교) | 작성시간 23.09.20 이영춘 고문님과, 유시화, 나태주, 정호승 시인의 이야기도 나누었다오.

    카페 지켜주어(?)고맙네요. ^•*
  • 답댓글 작성자이명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9.20 그 분들은 모두 사실적 시를 쓰는
    시인들이죠.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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