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기술
유리창에 몸 베인 햇빛이
피 한 방울 없이 소파에 앉아 있다
고통은 바람인가 소리인가
숨을 끓고도, 저리 오래 버티다니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자
햇빛은 비로소 신음을 뱉으며 출렁인다
고통은 칼날이 지나간 다음에 찾아오는 법
회는 칼날의 맛이 아니던가
깨끗하게 베인 과일의 단면은 칼날의 기술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풍경의 살을 떠내는
저 유리의 기술,
머리를 처박으며 붕붕거리는 파리에게
유리는 불가해한 장막일 터,
환히 보이는 저곳에 갈 수 없다니!
이쪽과 저쪽, 소리와 적막 그 사이에
통증 없는 유리의 칼날이 지나간다
문을 열지 않고도 안으로 들이는 단칼의 기술,
바람과 소리가 없다면 고통도 없을 것이다
유리의 기술은 대단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니까.
눈 먼 어리석은 파리 녀석.
훤히 보인다고 앞으로 붕붕 날다가 고갤 처박기 일수다.
유리창을 열어본다.
그제야 창에 머물고 있던 바람과 소리가 들어온다.
유리창 안쪽과 바깥쪽.
훤히 보이는데도 드나드는 것이 다르다.
유리가 맺고 끊어내는 단칼의 기술이다.
문을 열지 않고서도 유리가 받아주는 햇살, 바람과 소리가 없다면 고통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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