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강경호
불로동과 황금동 사이
한때는 수많은 아담과 하와
그들의 천국이었던 골목
오래 웃자란 무화과나무 번성한
행복여관
신세대 아담과 하와들은 번화가로 몰려가고
한낮에도 적막이 흐르는 쇠락한
자물쇠 굳게 채워진 에덴의 길을 걷는다
문득 머리에 무화과 열매 하나
툭 떨어진다
탕자처럼 분탕질로 세상을 떠돌다가
어찌하여 어린 시절 불렀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노래가 목에 메이는가
가끔 노인 하나
짓이겨진 무화과 열매를 쓸던 모습 무심하게 바라보았는데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일생이
십자가의 못 박음질처럼 아프게 느껴지는가
고목과 한 몸이 되어가는 앙코르와트사원처럼
무화과나무와 하나가 되어가는
누군가 내 이름을 나직이 부르는 것 같은
행복여관,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에서
생애 처음 까닭 모를 울음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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