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ㅡ 김성규
돈 벌러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탄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경기도를 거쳐 충청도를 거쳐 어느 소읍에 내리면
시골에서는 대략 잘 지어놓은 도서관이 보이고
똑똑하고 무료한 표정의 아이들이 기다린다
점심도 거르고 자판기 커피를 들고 들어간다
최대한 즐겁지 않은 것을 인내할 수 있는
시골에서 찾기 힘든 나름 우등생 아이들에게 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늘 마음 속으로 하고 싶은 말
실패하기 위해 이런 데 나와서 방황하지 말거라
수업을 하며 아이들에게 허황된 자들
자살했거나 이미 자살이 가까워진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며
한때 이 사람들도 너희들같이 좋은 머리를 가진 아이들이었고
그래서 쉽게 이 지옥으로 빠져들었단다
한번 빠지면 나오기 힘든 곳일수록 호기심은 번뜩이고
되도록 다음 수업 때까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오너라
그러나 표정을 보면 이미
자기를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아이가 있다
써온 글을 읽어보면 너는 이미 잘못 날아왔구나
나의 선배들이 어떻게 이 판에서 살다 죽어갔으며
나와 나의 후배들이 어떻게 망가져갔는지
성공해도 실패해도 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야 하는
돈 때문에 인간이 인간의 밑바닥을 보게 되고
스스로 뼈다귀가 자기를 핥아먹으며 살아가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또 돈 때문에 그런 말을 삼가게 된다
서둘러 김밥과 라면을 먹고 기차를 타고 올라오면
내 몸에서 실패한 자들이 풍기는 냄새
간신히 집으로 기어들어와 소주와 김치를 방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날은 돈을 쥐고 빼앗기고 빼앗는 꿈을 꾸고
자면서도 온몸을 긁으며 소리 지르고 허우적거린다
⸺ 계간 《문학동네》 2018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