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그리기
장석남
새를 그리고 그 옆에 새장을 그린다
그러면 자유를 그린 것 같다
새는 새장을 모른다
새장은 새를 향해 조금씩 다가간다
나를 향해 나는 모르는 죄가 다가오듯이
우리를 행해 우리가 모르는 벌이 다가오듯이
내 이름을 쓰고 이름 위에 새를 그린다
새가 내 이름을 가지고 날아오를 것 같다
날다가 그만 놓아버릴 것 같다
새를 그린다
오래 앉아 있는 새
새를 향해 하늘이 조금씩 조금씩
붉은 하늘이 야금야금 다가온다
- 계간 《포지션》 2024년 여름호
장석남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뺨에 서쪽을 빛내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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