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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감상실

[수필]새롭게 또 다르게 / 노정숙

작성자강은소(유심화)|작성시간24.09.08|조회수60 목록 댓글 0

특집: 윤오영 문학상 수상자 < 작가 노트>

 

새롭게 또 다르게

노정숙

자신이 경험한 것만 쓴다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연애사와 가정사를 객관적 시선으로 썼다. 인간의 근원과 소외, 사회적 속박을 예리하게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2005년 대담에서, 살면서 가장 환상적인 일은 ‘글쓰기와 섹스’라고 했다. 글쓰기를 즐기지 못하고 노역勞役이라 생각했는데 글의 지반인 상처와 결핍의 뿌리를 진실하고 솔직하게 헤치다 보면 환상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어림잡게 되었다.

우리의 신변잡사가 모두 글의 씨앗이다.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을 잘 가려내야 한다. 역지사지와 이심전심을 바탕으로 글을 쓰지만, 독자가 단방에 환상에 빠질 만하게 쓸 수 없기에 고민하고 또 상심한다. 내가 겪은 이야기 속에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과 시대정신이 들어 있는지, 새로운 정보는 있는지, 사고의 확장에 도움이 될지 점검한다. 선택과 생략에 칼 같은 판단이 필요하다. 수필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부단히 공을 들인다.

갈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수필쓰기, 새로운 목표를 ‘쉽고 재미있게’로 잡았다. 어쨌거나 읽혀야 한다. 누구나 느끼는 경이롭고 흐드러진 풍광 소개나 위인전 전수 같은 지당한 말씀을 지양하고, 시류에 맞춰 위선보다 위악의 옷을 입혀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부족한 위트와 유머도 탐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추기 어렵지만 마음은 활짝 연다. 전쟁을 겪고 원조를 받던 후진국에서 살아온 부모님 세대와 개발도상국에서 부대끼며 갈등하고 살았다. 우리는 그야말로 불굴의 의지로 고속 성장을 이루었다. 그다음 세대는 성장한 나라에서 누리고 다지며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선진국에서 태어나 눈 뜨며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신인류인 손자들의 세상이다. 쉬이 따라갈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신인류의 세상은 불협화음투성이지만 궁금한 게 많다. 매일매일 무뎌지는 몸을 닦달하고 더듬거리는 정신을 채근한다. 무럭무럭 늙어가는 중에도 뭔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를 세우는 중심에 언제나 글이 있다. 숨탄것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미미하나 세상을 향해 창과 곡을 푼다.

내가 쓴 글 중에 체험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없으며, 그렇다고 체험 그대로 쓴 것도 단 한 줄도 없다.” 아니 에르노 이전에 괴테가 한 말이다. 대문호도 끊임없이 쇄신을 위해 길을 떠난다. 노력하는 자는 마땅히 방황한다고 했다. 부단히 헤매던 중에 위로받으며 나는 괴테 추종자가 되었다.

경험을 그대로 쓴 것은 문학이 되지 않는다. 경험을 바탕으로 문학적 장치가 필요하다. 수필은 내 이야기, 내 생각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열린 문학이다. 시, 소설, 시나리오, 동화, 모든 장르의 좋은 점을 가져와 내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수필이야말로 자유롭고 광활한 놀이판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하고, 얼음은 물에서 되고 글은 글에서 된다. 창작은 모방을 벗어야 나오고, 대창작은 자연의 모방이다. 작가는 평생 남이 못한 말 한 마디만 하면 된다’는 윤오영 선생님의 지엄한 말씀을 새긴다. ‘수필은 시적 영감을 산문적으로 형상화해야 한다. 내용이 좋고 심오한 사상이 있어도 문학적 표현 기술이 있어야 문학이다’는 따끔한 말씀도 거듭 새긴다.

내 수필쓰기는 선 채로 꾸는 꿈이다. 긴 갈증 속에 찰나의 샘물을 만나는 지난한 작업이다. 오래 느끼며 겪어내고, 늘 읽고 겨우겨우 조금 쓰는 비경제적인 활동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존재 확인을 위해 실바람에도 귀를 세운다.

<한국산문> 2024. 7월호 (vol.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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