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 이성복
밤하늘 하도 푸르러
선돌바위 앞에 앉아 밤새도록 빨래나 했으면 좋겠다
흰 옥양목 쳐대 빨고 나면 누런 삼베 헹구어 빨고
가슴에 물 한번 끼얹고
하염없는 자유형으로 지하 고성소까지 왕복했으면 좋겠다
갔다 와도 또 가고 싶으면 다시 갔다 오지
여태 살았지만
언제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
추석날 / 이남일
잘 이룬 차례상을 올리고
풍성하게 익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늘보다 높은 날
꿈을 못 이룬들 어떠랴.
조금 늦어진들 어떠랴.
꽃향기보다
언제나 꽃 피우는 시간은 길었다.
우리는 이루는 것보다
이루기 위해 살지 않았는가.
이룬 기쁨보다
땀 흘린 시간에 감사하는 날
추석 날 아침에 / 황금찬
고향의 인정이
밤나무의 추억처럼
익어갑니다
어머님은
송편을 빚고
가을을 그릇에 담아
이웃과 동네에
꽃잎으로 돌리셨지
대추보다 붉은
감나무잎이
어머니의
추억처럼
허공에
지고 있다
추석 지나 저녁때 / 나태주
남의 집 추녀 밑에
주저앉아 생각는다
날 저물 때까지
그때는 할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어머니도 계셨는데
어머니래도 젊고 이쁜
어머니가 계셨는데
그때는 내가 바라보는
흰 구름은 눈부셨는데
풀잎에 부서지는 바람은
속살이 파랗게
떨리기도 했는데
사람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주저앉아 생각는다
달 떠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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