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하는 꽃
김경수
석양을 등지고 이야기가 돌아왔다.
이야기는 화려한 빛깔의 이력履歷을 자랑하며
사람들의 옆에 앉았다.
저녁 식탁에 앉은 꽃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바람이 불자 작은 꽃들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을 토로했다.
침묵하는 꽃은 침묵으로 깊은 공감을 표했다.
꽃병에 물만 채우면 이야기꽃이 쉽게 피어날 줄 알았는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는 잠시 중단되었고
다시 피어난 이야기는 점점 길어져 갔다.
만약 식탁 위에 책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더욱더 길어졌을 것이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도 결국 그 식탁에 펼쳐졌고
부끄러움과 한탄과 울음이 폭발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길어져 가는 이야기에
참석한 꽃들은 시들어 갔고
이야기가 오고 가며 사건의 전말顚末이 드러났다.
밤을 밝히며 이야기를 하다가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담론이 되었고
이야기는 계속 눈덩이처럼 굴러갔다.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죄책감을 토로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했다.
새벽에 꽃피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꽃이
자신의 힘들었던 생활과 절망을 길게 늘어놓았다.
절망은 수다가 되어 깃발처럼 펄럭였고
절망은 누구에게나 찾아가 친구가 되기를 간청했다.
절망 속에도 희망을 꿈꾸는 깊은 이야기가 있었다.
희망을 허리에 차고 버스와 기차를 타고 추억을 찾아가던 시간과
집을 나와 배회하던 시간이
또 다른 슬픈 이야기를 만들었다.
즐거운 여행을 꿈꾸던 꽃이 속절없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