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절정이다
천양희
하늘에 솔개가 날고 있을 때
지저귀던 새들이 숲으로 날아가 숨는다는 걸 알았을 때
경찰을 피해 잽싸게 골목으로 숨던
그때를 생각했다
맞바람에 나뭇잎이 뒤집히고
산까치가 울면 영락없이 비 온다는 걸 알았을 때
우산도 없이 바람 속에 얼굴을 묻던
그때를 생각했다
매미는 울음소리로 저를 알리고
지렁이도 심장이 있어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알았을 때
슬픔에 비길만한 진실이 없다고 믿었던
그때를 생각했다
기린초는 척박한 곳에서만 살고
무명초는 씨앗으로 이름값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가난을 생각하며 '살다'에 밑줄 긋던
그때를 생각했다
제 그림자 밟지 않으려고
햇빛 마주보며 걸어갔던 시인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독에 바치는 것이 시라는 걸 알았을 때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그때를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절정이다
천양희
1967년《현대문학》4월호에 박두진 시인의 추천 완료로 등단.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사람 그리운 도시』『하루치의 희망』『마음의 수수밭』『오래된 골목』『너무 많은 입』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새벽에 생각하다』『지독히 다행한』, 육필시집『벌새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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