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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감상실

카오스 옆집에는 코스모스가 산다 / 홍순영

작성자박오은(소교)|작성시간24.11.29|조회수28 목록 댓글 0

 

카오스 옆집에는 코스모스가 산다

 

                                                                                          홍순

경사진 밭 가득, 잡초 이름이 피어있었다

개망초와 바랭이, 방동사니 곁으로 박주가리가, 환삼덩굴과 칡넝쿨이

친애하지 않는 것들의 목록이 길고 또 길었다

 

사람들이 길을 찾아 거리를 헤맬 때마다

잡초들은 몰래 그 길들을 훔쳐왔을까

일주일 새 너무 많은 길들이 우르르 피었고

사람의 길은 다 지워졌다

 

내 길은 어디 가서 찾아야 하지

 

나도 그들 이름을 지워버렸다

때로 지워야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

이름표를 잃어버리자 알 수 없는 물고기가 된 것처럼*

그곳엔 이름 없는 풀로 태어난 풀만 남았다

 

길이 지워져도 아주 사라진 건 아니라는 듯

바람 불 때마다 풀은

길을 꺼내놨다 얼른 뒤로 감추곤 했다

 

길을 잘못 든 섬서구메뚜기 방향을 가늠하고

하늘이 지워버린 구름 찾느라 사마귀는 허리를 꺾는데

 

풀의 이름도, 길도 사라진 곳에 피어난

한 무더기 붉고 흰 우주

정수리를 건드리는 잠자리 날개

 

내 발은 어느새 코스모스 쪽으로 방향을 틀고

* 룰루 밀러 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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