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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감상실

[詩]모래인간들 / 한혜영

작성자박오은(소교)|작성시간24.12.23|조회수35 목록 댓글 0

모래인간들

 

                                                                                         한혜영 

지하도로 쏟아져 들어가는 군중 속에서 나도 한 알의 뜨거운 모래로 휩쓸렸다

목마른 사막을 뭉쳐 모래인간으로 만든 신이 사람의 도시로 보낸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에는 고독이라는 유전자가 각기 다른 내력으로 숨어 있다

사막에 버려진 송장을 뜯으며 서럽던 개의 영혼이 숨어 있고 죽은 새끼의 무덤을 다독거리던 늙은 낙타의 울음소리가 스며 있고

그곳을 떠돌다 몰락한 바람의 냄새가 배어 있다

 

이러한 주재료로 지어진 사람들은 태생적인 갈증으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거다

그러다 광장에서 모래와 모래가 재회하면

사막처럼 뜨거워져서 폭풍한테 배운 노래를 폭풍처럼 불러 젖히는 거다

 

사막에서 온 줄조차 모르는

승객들 틈에 나는 한 알의 모래로 골똘하게 앉아 있었다

도시의 숨통을 묶었다 끌렀다 하면서

시간놀이를 즐기던 지하철이 멈출 때마다 승객들은 멱살이라도 잡힌 것처럼 끌려오거나 떠밀려 나갔다

 

모이면 흩어지는 것 또한 모래의 운명이니

그들은 어디로 가서 그날의 해변이 되거나 그날의 사막이 될 터였

 

 

한혜영 

충남 서산 출생.

1989년 《아동문학연구》 동시조 당선.

1994년 《현대시학》 시 추천.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8년 《계몽아동문학상》장편동화 당선.

시집 :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 『뱀 잡는 여자』, 『올랜도 간다』, 『검정사과농장』

시조집 : 『숲이 되고 강이 되어』

장편소설 : 『된장 끓이는 여자』

2006년 미주문학상, 2020년 제5회 동주해외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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