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과 유서
김숙영
모서리가 닳아 밑그림이 드러난 식탁
네 개의 다리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지만
나는 더이상 이 자리에 앉지 않는다
의자는 마주 보는 사람 없이 오래 앉아 있었고
그릇은 물기마저 잊은 채
냄새를 숨겼다
내 안엔 한 끼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냅킨처럼 접어둔 말
반쯤 남긴 감정들
소금처럼 흩어진 질문들
한때는 이곳에서 웃음이 오갔고
말을 푸는 사이 국이 식고
눈빛 하나로 반찬의 의미가 바뀌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그 모든 게 적막이 되었다
숟가락도 대화도 나란히 놓인 그릇도
일시 정지처럼 굳어 갔다
나는 기필코 이 식탁에 앉아
긴 유서를 한 줄씩 떠올린다
미뤄둔 안녕들
이 식탁은 끝끝내 말이 없다
그러나 하루 세 번 세상의 전부를 담았던
작은 무대였음을 안다
나는 오늘도 물 한 잔 올려놓고
당신이 앉던 빈자리를 바라본다
식지 않은 여백 그리고 표정
여기, 사랑이 남아 있어요, 암시하는데
마지막 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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