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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신부님 -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작성자김주예 마리아|작성시간22.11.14|조회수22 목록 댓글 0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 ‘간절함’은 삶의 활기를 불어넣는 원동력이 되곤 합니다. 특별히 당연한 것, 평범한 것, 보통의 것이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 일어난 간절함이란 더욱 그러합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먹고 소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졌을 때에는 사는 데에 가장 핵심이 되는 사랑과 우정,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일도 어려워집니다. 다른 사람과의 공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단순히 육체적인 활동에 그치지 않고 영성생활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묵시록의 말씀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너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묵시2, 2-4)”

의로운 일도 하고, 어려움과 힘겨움을 다 이겨내며 맡은 바 업무도 충실히 수행하였음에도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마는 경우입니다.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했던 일이 이제는 역전(逆轉)되거나 변질되어 그 일이 사랑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로서 사는 중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 안에서, 직장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겼던 것을 저버리는 일!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눈먼 소경이 “예수님, 다윗의 후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8,38)”하며 자비를 구한 기도는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간절함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청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41)”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처음의 사랑으로 볼 수 있는 그 마음, 그 시선, 그 신의를 청하는 것입니다. 묵시록에서 에페소 교회가 옳고 그름을 보는 ‘육적인 시력’은 누구보다도 밝았으나 ‘영적인 시력을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며, 모든 사람과 일들을 사랑으로 볼 수 있도록 영적인 시력이 더 밝아지도록 청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시력이 밝아지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다시 처음에 지녔던 사랑의 길을 보게 되고, 우리가 하는 일을 지켜본 사람들의 입에서 ‘하느님 찬미’가 터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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