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때에는 오늘 복음의 예리코 소경처럼 앞이 깜깜해져 안 보이거나 그렇게 내 자신이 비천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구석 어둔 곳에 홀로 움츠리고 앉아 빈손으로 헛된 것을 구걸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궁극적인 것을 찾지 않을 때,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을 때 그렇게 삶은 어둡고 비천해지며 헛된 것을 얻으려고 구걸하는 못난 사람이 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 예수님의 이 말씀을 묵상하는 내내 반문(反問)으로 되돌아옵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찾고 있느냐?’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12년 전 서품 때를 기억해 봅니다. ‘땅에 엎드려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하였고 무엇을 찾으려고 했던가?’ 오직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그런데 지금 저는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을 찾아 하려고 합니다. 실적주의, 업적주의에 젖은 뭇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내 몫을 찾고 있고 내 영광을 찾고 있으며 내 기쁨을 누리려고 합니다. 순명 대신 합리화를, 청빈 대신 욕심이, 정결함 되신 불순함을 찾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 되물으신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는 부드러운 말씀에 고개를 들 수 없고 그 대답을 할 수 없어 온 몸과 마음이 창피함으로 떨려옵니다.
그래도 성령께서는 저를 위로하고 격려하시면 용기를 내어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사람이 한결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에, 사람은 그 마음이 변화무상함을 아시기에 그분은 다시 자비의 문을 활짝 여시고 부르짖는 이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주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궁극의 것과 본질적인 것을 다시 추구하여 살 수 있도록 이렇게 말씀해주십니다.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묵시 2,4-5)” 다시 나를 찾으라고, 다시 너의 모습을 되찾으라고, 다시 당신 곁으로 다가와 따르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