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다만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곳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타 다른 민족의 성전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다른 민족도 성전과 성소가 있어 매일 거기서 자기들의 신에게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전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갱신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계약은 자신들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선택된 백성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사제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담아 보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예배와 신앙의 행위들은 그저 신앙인으로서 필요한 뭔가를 청하기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자존심이고 자긍심이며 정체성을 새롭게 하고 후손들에게까지도 물려주는 계약에 따른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하느님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또 그분의 말씀을 듣고 배움으로써 자신을 바로 세우고 쇄신시켜 성화하여 삶의 자리로 돌아가 살아내게 하는 구심점이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이 율법학자들과 대사제들에게는 이권과 체면이 얻어지는 곳이 되었고, 장사꾼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시장과 일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성직(聖職)이 돈벌이가 되고, 정결한 예물(禮物)이 되어야 할 것들이 사욕의 물건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속에서는 그런 일들이 만연해진 것입니다. 성전과 성소의 주인이 하느님이 아니라 사욕에 가득 찬 사람들이 되어, 하느님께 올려야 하는 찬송과 영광이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돌려지고, 하느님의 말씀이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 대신 사람의 귀와 입술만을 즐겁게 하거나 오히려 얽어매는 도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모인 성전은 어떠한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리시는 예수님은 결국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의 영예와 이권과 명분을 모두 거두어내고 계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성전 안에서 영예와 이권과 명분을 찾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기 보다는 성전의 참된 의미와 역할을 예수님께 물었을 것이고, 만약 성전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이 부당하였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옳지 않았음을 밝혀내 그분을 없앨 방도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전의 주인과 본의(本意)를 잃어버린 형식적인 예배만이 남은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느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곳입니다. 하느님께 은총과 축복을 받는 곳 이전에 하느님의 뜻을 받는 곳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래 전 모세가 호렙 산에서 떨기나무의 불꽃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다가갈 때 자신의 신발을 벗어 놓았듯이, 자신의 필요와 생각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곁에는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는 백성들이 있었습니다.(루카 19,47-48)’ 예수님이 참된 성전이심을 루카 복음사가는 증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느님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랑을 체험하며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말씀, 참된 예배가 예수님 곁에서 온 백성을 통해서 정결하게 선포되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로써 자기 본 모습-정체성, 그 거룩함을 하느님 안에서 회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