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待臨)시기는 구세주의 오심을 기쁨과 희망 속에서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4000년 역사 속에서 크고 작은 흥망성쇠를 반복하며 지내온 이스라엘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모든 사람들을 정의와 평화로 다스리실 메시아-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린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 전체와 내면 안에 오셔서 우리를 완성하시고 의로움과 평화로 다스리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여 우리의 기다림 속에서는 오늘 복음의 말씀대로 두 가지 중요한 태도가 요청됩니다. 첫째는 ‘깨어 있음’이고, 둘째는 ‘준비하고 있음’입니다. 이 두 가지를 포함하지 않으면, 결코 우리를 완성하시고 모든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 예수님을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대림시기를 반복하여 지내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이 기다림의 시기를 통해서 깨어 준비함으로써, 우리 안에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주 예수님을 잉태하여 탄생시키기 위함입니다. 구세주 예수님을 내 안에 내 삶에 모시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자신을 두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 대림 시기를 통해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이며 선물이신 주님을 모시도록 성실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 노력의 첫째가 바로 깨어 있음입니다.
“깨어 있어라.(마태 2,42)” 주님께서 우리를 흔들어 깨우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가 어둠 속에 깊이 잠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잠든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잡을 수도, 걸을 수도, 맛볼 수도 없기에 참된 진리와 실재를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사랑받고 있고 축복받은 사람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곁에 늘 함께 하는 나의 부모와 자녀, 친구와 형제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잠들어 있는 사람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그 마음이 얼마나 더럽혀져 있는지, 그 삶이 얼마나 누추하고 상처가 나서 하느님 자비와 사랑의 손길로 돌봄을 받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장님이 되었거나 혼수상태(昏睡狀態)인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식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잠든 사람의 모습을 바오로 사도는 ‘어둠의 행실’이라고 일컬으며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猜忌)(로마 13,13)” 노아 때처럼 탐욕과 욕정, 시기와 질투, 미움과 비난, 무절제와 불규칙한 생활에 빠져 자신을 소모하고 훼손시키는 상황이 어둠 속에 깊이 잠든 이들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깨어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우리가 솔직하고 분명하게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깨어난 사람은 다음으로 주님 모실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 준비란 무엇이겠습니까?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13,12-14)”의 사도의 권고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수많은 일들과 사건으로 무너진 자신의 도덕성과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라’는 것은 시기 질투 미움 게으름 악독한 마음으로 짜진 낡은 인간의 옷을 벗어 버리고(회개), 사랑 기쁨 평화 겸손 용서 화해 나눔으로 짜진 복음의 옷으로 갈아입으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비추시는 빛이신 주님을 늘 내 앞에 모시고 그분의 모범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대림 시기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으로 주님과 나를 묵상하며, 묵상한 것을 기도하고, 기도한 것을 실천하는 시기입니다. 그렇게 하여 자신의 내면을 정돈하여 고요와 평화를 이루는 가운데, 깨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고대(苦待)하고 마침내 그분을 만나 기쁨을 이루는 축복을 누리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