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요셉 신부님 -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작성자김주예 마리아|작성시간22.12.01|조회수18 목록 댓글 0

비유의 달인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사도를 예수님은 사람 낚는 어부라고 표현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에는 어려운 표현이나 어휘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늘 우리와 가까이에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와 그 모든 신비를 계시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무심하게 지나친 낙엽이나 바람이나 햇살도 그냥 나에게 오지 않았음을 깨닫는다면 그 안에서도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넘치고 가득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도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라는 비유를 써서 그 역할과 목적을 분명하게 제시해주십니다. 그 표현은 또한 믿음의 풍성한 수확을 얻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알맞은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부에게는 배를 움직이는 기술과 바다를 읽는 지혜와 물때를 아는 지식과 그물을 치고 손질하는 탁월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경험에 담긴 시행착오와 성찰, 깨달음과 확신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들도 처음에는 그저 어부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들도 세상살이에서 오는 희로애락 안에 있었습니다. 조상들이 가르쳐주고 보여준 율법과 계명에 형식적으로 따르면서도 이 세상의 것에 더 애착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그들은 사도가 아닌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갈릴래아 어부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선포가 가슴으로 크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끊임없이 그들을 당신 곁으로 부르시면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쁨, 평화, 즐거움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형언할 수 없는 자비와 사랑을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듣고 보고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기도 하고 묻기도 하면서 예수님께 마음을 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지를 묻고 그 답을 예수님 안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마태 4,19)” 예수님의 이 부르심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단 한 번만 있었던 부르심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하느님 나라가 얼마나 위대하고 좋은지에 대한 물음과 갈망 속에서 그 부르심은 갈릴래아 어부들에게 계속 이어졌습니다. 어부였지만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가슴 깊은 곳에 있었던 궁극적인 물음, 곧 진리와 생명에 대한 물음을 던질 때까지 계속 이어져야만 했습니다. 지식이나 기술이 아닌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하는 그 날까지 말입니다. 그렇게 부르심은 어부들을 제자가 되게 했고 이어 사도가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하느님 사랑에 이르는 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형제들을 통해서 어떻게 구현해 낼 수 있는지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예수님께 당신을 따르라고 끊임없이 부르심을 받았고, 부르심에 매번 응답함으로써 사도들로 양성되었으며, 하느님 사랑과 그분 나라에 대한 갈망과 형제들을 사랑하는 법을 예수님께로부터 얻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