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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신부님 -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작성자김주예 마리아|작성시간22.12.01|조회수25 목록 댓글 0

제(濟)나라 환공이라는 사람이 여행하는 도중에 곽(郭)나라 옛 성터를 지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곽나라는 이미 망(亡)하여 그 성터는 폐허(廢墟)로 변한지 오래였습니다. 환공은 지나가는 촌부(村夫)에게 물었습니다. ‘곽나라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곽나라 사람은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했습니다.’ 환공이 깜짝 놀라 다시 물었습니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했는데 왜 망했습니까?’ 촌부가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선을 좋아했으나 선을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악을 싫어했으나 악을 끊지 못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라가 망하여 폐허가 된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 앎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고 결국에는 곽나라 망하여 폐허가 된 것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앎은 실천에까지 옮겨지는 앎입니다. 안다고 그저 입술로만 말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것을 실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을 참으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시대처럼 아는 것이 많은 시대가 또 언제 있었는지요? 인터넷이나 각종 매스컴을 통해서 나라가 흥하는 법, 행복하게 사는 법, 건강하게 사는 법, 성공하는 법, 부자가 되는 법, 성장하고 성숙하는 법에 관하여 우리는 이미 넘칠 만큼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지식일 뿐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에는 열심히 다니지만 신앙 따로 삶 따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지난 주(12월 1일 자) 가톨릭신문 1면의 기사가 <신앙따로 생활따로-복음과 유리(遊離)된 실태 심각>였습니다. 천주교 신자 1만 5천 명을 조사하여 ‘교회의 가르침과 상충되는 법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겠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25.3%만 전적으로 교회의 가르침에 따를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심이 깊어지지 않고 성숙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앙인으로 무엇이 옳고 마땅히 해야 하는지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이미 아는 것을 소신 있게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이 있어서 생각으로는 또 마음으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하룻저녁에 집 열채도 짓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집은 또한 잠시 시련과 위기와 고통이 따르면 하룻밤에 모두 무너져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반석(盤石)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라고 명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새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멈춤 없이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 되기, 모든 일에 주님과 함께 하려고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기, 아침 저녁기도하기, 자주 미사와 고해성사 참례하기, 매일 미사독서와 복음을 읽기, 교회와 세상과 형제를 위해 기도하기, 본당과 구역에 활동에 참여하기, 불만족보다는 감사하기, 자랑하기 보다는 칭찬하기, 선을 행하고 악을 끊기. 겸손과 순명 희생과 인내의 덕행 쌓기.>

이 모든 것은 전능하시고 사랑 자체이신 주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실천에 옮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는 다시 한 번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앞서 주님께 대한 신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26,4)” 이 반석이 아니면 우리들이 지금 행하는 신앙생활과 가정생활과 모든 계획과 수고들은 시련과 위기와 유혹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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