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못했다면 들어서라도 구원을 받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눈 먼 사람 둘은 애초에 예수님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 관하여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아’시라는 것과 그분에게서 ‘하느님의 자비’가 베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진실을 들음으로써 눈먼 이들은 그분께 믿음을 가졌고 그 믿음이 치유에 관한 희망을 낳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역시도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의 눈먼 이들보다 더 많이 더 구체적으로 더 명확하게 예수님에 관하여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복음의 눈먼 이들은 듣고 곧 믿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믿기를 망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어야 희망을 가질 수 있고 마침내 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망설이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세상의 것에 더 많은 신뢰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 믿음을 어떻게 간직할 수 있을까요? 믿음은 자신의 한계와 간절함에서 돋아납니다. 한계에 부딪혀 간절함을 절감(切感)하는 사람은 작은 것 하나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난치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 자신과 가족 모두가 그 병의 전문가(專門家)가 된다고 합니다. 병을 치유하기 위해, 아니 병이 낫게 되리라는 확신과 희망으로 그 병을 낫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과 사례들에 온 정신과 마음과 몸을 기울이게 됩니다.
복음의 눈먼 이들은 예수님에 관해 직접적으로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하여 한 말들을 주의 깊게 들음으로써, 그것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고 입으로 나누는 가운데, 믿음으로 치유를 희망하며 그분이 오시길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 기억과 새김이 믿음과 희망의 시작이 되었고, 그 믿음과 희망이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과 구원을 담는 그릇으로 준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때가 되어 예수님이 오시어 그동안의 믿음과 희망에 관한 고백을 들으시고자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과 눈먼 이들의 대화는 간단하고 명확했습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마태 9,28)” 그들은 망설임 없이 고백했습니다. “예, 주님!” 그리고 예수님은 즉시 응답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마태 9,29)”
의혹이나 망설임 없는 신앙고백에 주님도 망설임 없이 응답해 주셨다는 것!
오늘 눈먼 이들은 기다림의 시기를 지내는 우리들의 준비와 응답의 모범(模範)이 됩니다. 가까이는 주님의 탄생이지만,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기도와 믿음 생활을 비롯하여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나라 문 앞에서의 우리들의 준비와 응답이 그러합니다. 기도할 때, 교회의 직분을 맡아 봉사할 때, 죄 중에 주님의 자비를 청해야 할 때, 자신의 한계를 만나 넘어서야 할 때, 주님은 물으십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우리의 응답은 단호하고 명확해야 합니다. “예, 주님!” 그리고 주님의 응답도 즉각적이고 명확하게 내려집니다. “네가 믿는 대로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