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이사 8,10)” 예수님의 탄생이 갖는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시는 목적 또한 같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신 이유도 같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이유도 같습니다. 영원한 이별인 죽음을 이기고 우리와 함께 영원히 계시기 위해서입니다.
<헤어짐>은 모든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고 슬픔입니다. 세상의 재물이나 영예를 상실하는 것도 큰 두려움이며 슬픔이겠지만,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두려움이며 슬픔입니다. 어린 아기도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지게 되면 그 즉시 두려움과 불안을 느낍니다. 다 큰 아들이 군대를 잠깐 다녀오는 것도 부모에게 큰 슬픔이며 걱정이고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때가 되어 새 가정을 이룰 아들딸을 자기 품에서 떠나보내는 것도 부모에겐 슬픔이며 근심이 됩니다. 늘 곁에 있었던 사람이 잠시라도 떠날 양이면 얼마 가지 않아 그 자리가 크게 느껴지며 그리워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만남의 연속인 동시에 헤어짐의 연속인 것입니다. 삶의 희로애락은 모두 거기에서 오는 것입니다. 생로병사는 그 만남과 헤어짐의 시작과 끝이 될 것입니다. 또한 최근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외로움, 우울증 역시도 진정한 만남, ‘함께 있음의 결핍이나 문제’에서 오는 것이니, 사람에게 있어서 누군가가 함께 한다는 것은 그토록 중대한 일이며 그보다 더 귀한 일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저를 내셨으니, 제가 주님 안에서 쉬기까지 제 마음이 평안하지 못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느님을 만나 그 안에 쉬기까지 지금 현세에서 우리들의 삶은 늘 불안과 슬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대림시기를 통해 영원한 만남, 영원히 함께 있음을 이 신앙 안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헤어짐도 상실도 있을 수 없는 그 영원한 만남-영원히 함께 있음을 위해 영원하신 분께서 2000 년 전 이미 우리에게 오셨고, 지금도 우리와 성령을 통해 함께 하심을 일깨우는 시기가 바로 대림시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탄생 예고는 영원함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존재가 하느님의 영원하심에 일치되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령 안에서 교회 공동체의 믿음과 성사들 안에서 그것을 체험하고 있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때에는 그분을 마주 뵙고 영원한 만남, 진실하고 선하시고 아름다우신 주님과 함께 있음에 기뻐하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때와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깨어 기다리며 기도와 말씀 안에서, 교회가 성사들을 통해 베푸는 은총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형제적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서 주님과 함께 하는 여정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이 약속에 굳은 신뢰를 두며 우리는 주 하느님께서 이루실 영원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성모님과 같이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언제나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