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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무대공포증 심리적 원인을 알면 대처할 수 있다.

작성자김종완(클래식)|작성시간08.07.29|조회수296 목록 댓글 0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옛말이 있다. 철부지가 또는 철부지처럼 나이만 먹은 사람들이 상황 파악이 안 되고 무엇이 중요한 건지 어려운 건지 모르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에 대한 교훈이 담긴 말이라 생각된다. 다분히 야단치는 의미, 정신 차려야 하는 의미가 담긴 말일 것이다.

그런데 가끔 연주를 앞둔 마당이면 차라리 하룻강아지 같은 상태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가 맘껏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듯이, 연주에 대한 걱정도, 청중에 대한 의식도, 암보에 대한 불안도 모른 채 그냥 연주에만 몰입하고, 연습에만 전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이도 부질없는 상념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그러고 싶어도 이미 범이 무서운 줄 알만큼 커버린 상황을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어느 예술가나 자신의 분야가 무엇이든지 스스로의 작품을 세상에 드러내는 순간은 마치 범 앞에 선 듯 떨리고, 긴장되고 불안한 심정을 느끼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특히 무대를 통해 그것도 혼자서 수많은 청중과 스승과 제자, 비평의 눈들 앞에 나를 펼쳐 보여야 하는 음악인들의 연주 무대는 그야말로 긴장의 극치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이 무대야말로 재생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순간순간 흘러가는 연주를 통해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하고, 알려야 하고, 공감을 불러 일으켜야 되는데, 실수는 용납될 수 없고 나 자신뿐 아니라 청중의 느낌까지도 매순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왜 이 어려운 길을 택해서 이 고생을 하면서 살아야만 하나’하는 생각을 안 해보는 연주자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너무 힘들어 죽었다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휴’하고 한동안 지내다 보면 또 그렇게 힘들었던 연주회에 대한 미련과 새로운 계획이 솔솔 솟구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요번만은 지나치게 긴장하지 말고 계획한 대로 잘 해봐야지 하지만 막상 지내놓고 보면 불안과 긴장으로 인해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왜 무대에 서면 아니 무대에 설 생각만 하면 그렇게 긴장이 되고 불안해지는 것일까? 특별히 어떠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소에 연습하던 대로, 평소 그 곡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정리해서 정성껏 선만 보이면 될 텐데 왜 그렇게 쓸데없이 필요 이상으로 떨려서 다 망치게 되는 것일까, 도대체 왜 불안해지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아니 가질 수 없게 된다.

불안이라는 심리적인 관점에서 ‘닥쳐오는 위기에 대한 내적 신호’라는 말로 정의된다. ‘위기가 닥쳐올지 모르니 대비해라’하는 의미인 것이다. 이때 우리 몸에도 동시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는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을 통해서 주로 일어나며 이러한 생리적 변화를 통칭해서 긴장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과 긴장이란 말은 거의 같은 개념을 심리적, 생리적 관점에서 서로 다르게 부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왜 불안해야 하는가’, 즉 ‘왜 긴장해야 하는가’하는 문제가 다시 말해 ‘왜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가’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위기에 대처하고 이를 극복해야 함은 생존을 위한 첫 걸음인 것이다. 생존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초적으로 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젊음을 구가하고, 예술을 꽃 피우고, 인생의 보람을 느끼고 하는 것은 이 기초적인 ‘생존 상태의 유지’라는 반석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불안이란 현상은 생존유지의 불꽃이고, 생명력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좋고 싫고, 필요하고 필요없고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불안하지 않을 수 없고, 불안하지 않아서는 더더구나 큰 일이다. 미처 불안이 작동되지 않아 범 앞에서도 태평할 수 있는 하룻강아지의 삶은 바람 앞의 촛불일 수밖에 없다. 불안, 긴장이란 현상은 이렇듯 필수불가결한 생체현상이며, 또한 고마운, 바람직한 현상인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불안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본래 의미대로 생존을 유지하고, 더욱 생존력을 키우는데 기여하게 되느냐 아니면 지나친 불안으로 인해 생체 전반의 균형이 깨어져 오히려 생존 유지에 반하는 반응을 불러 오게 되냐냐가 관건인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같이 불안으로 인한 교감신경계의 흥분은 여러 가지 신체적인 증상을 나타나게 한다. 심장 현관 계통의 기능은 항진이 되어서 가슴이 벌렁거리고 뛰게 되고, 얼굴은 달아오르고,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끼게 돈다. 근육은 긴장 상태가 유지되며 굳고, 떨리는 증상이 일어난다. 머리가 무겁고, ‘띵’하고 ‘멍’하고 무언가가 머리를 꽉 누르고 조이는 느낌, 뒷머리가 땡기고 목이 뻗뻗하거나,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쉬어도 쉬는 것 같은 시원함이 느껴지지 않아 자꾸 한숨을 쉬게 되는 것도 그 한 예이다. 온몸이 찌뿌둥하고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것도 근육의 긴장으로 인한 흔한 증상이랄 수 있다.

장의 움직임도 느려져서 소화가 안 되고 속이 거북하고, 식사 시간이 되어도 배고픈줄 모르고, 때로는 속이 꼬이고 쓰린 느낌이 들 수도 있고, 변비도 흔히 발생할 수 있다. 소변은 자주 보게 되고 곁들여서 감각기관까지 예민해지기 때문에 흔히 들리던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짜증을 내기 쉽고, 민감한 사람은 문을 여닫을 때 생기는 바람에도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손가락에 땀이 흥건히 고이기도 한다.

교감신경계의 흥분은 온 몸에 전반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이 모든 것은 하나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생명을 유지하려는 원칙 하에 일어나는 일련의 생체반응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반응들이 필요 없으니까, 도가 넘치니까, 그만해라 해서 없어지는 현상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안의 의미를 깨닫고, 불안으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활용해서 바람직한 결과를 유도해 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 우리는 불안을 적절히 통제하고 활동하기 보다는 오히려 불안을 기피하고, 억제하고,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바람에 불안을 더욱 야기하고 통제 불능의 상태로 확대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무대 연주를 경험해야 하는 음악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불안, 긴장을 더욱 불러일으키는 요소로는 지나친 상향의식, 경쟁심, 평가에 대한 집착, 상대 평가에 대한 불안, 신체적 조건에 대한 불만, 성장 배경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이 모든 요소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비합리적 사고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인식한다는 데 있다 하겠다.

상향의식이나 경쟁시은 우리를 발전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마음가짐이요 심리적 상태이다. 보다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연습은 무슨 필요가 있고, 더더구나 그 어려운 연주를 왜 준비하게 되겠는가. 한 번 연주회를 통해 홍역을 치르고 나면 전에는 못 느꼈던 것을 느끼게 되고, 막상 연습할 때 무심코 스쳐 지나던 부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무엇보다 갖고 있는 음악적 소양, 실력이 크게 향상됨은 제자들을 통해 또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누구나 느껴보는 점일 것이다.

경쟁심은 어떠한가. 경쟁하는 마음, 이기고자 하는 마음은 그 어느 것보다도 나를 채찍질하고 근면, 인내,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나타내는 심리적 상태이다. 상대적으로 보다 나은 평가를 받고자 하는 마음은 항상 연주하고자 하는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한 음, 한 프레이즈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연습함에 있어 소홀해선 안 되게끔 나를 일깨우고 긴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상향의식, 경쟁의식으로 비롯되는 긴장과 불안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서 더욱 원하는,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기 보다는, ‘잘못되면 어떡하지’하는 비합리적 사고방식이 발동이 되는 경우다.

향상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상대보다 평가를 잘 못 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즉 내가 원하는 상태보다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면, 이런 생각은 원래의 불안과 긴장을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불안이 san 커져서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또한 커져버린 불안과 긴장을 해소시키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연습도 안 되고, 점점 연주 결과에 대한 확실한 보장은 없고 따라서 더욱 긴장이 증폭되는 악순환을 가져 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합리적 사고방식은 걸음마를 배울 때는 넘어질 수도 있지 하고 잘 걸으려고 노력하는 마음과는 달리, 넘어지면 안 된다 하면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걷는 마음의 상태라 볼 수 있다.

초점이 잘 걷는다와 넘어지면 안 된다로 나뉘게 된다. 전체적인 곡 해석이 바르게 도고, 연주의 흐름이 제대로 흘러가고 있으며, 연주하는 나는 물론 청중의 감동이 연주와 함께 하고 있는지 등 전체적인 연주의 중요한 부분들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어느 한 부분의 트릴이 거북해서 혹 이 부분을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만 매달린다든지, 어느 악장 어느 부분의 연주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생각에만 집착하게 되어 이것만 넘어가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작 중요한 것은 제쳐두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전반적인 곡의 흐름이고, 연주를 통해 얼마나 통합적으로 곡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전달 하느냐일 것이다. 따라서 부분에만 집착하는 마음으로는 전체를 감당할 수 없고, 부족한 부분은 불안으로 채우게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비합리적 사고방식의 특징은 실수는 곧 실패요 패배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청중은 음악 전반을 듣고 감동을 느끼지 어느 한 음에 모든 것을 맞추지는 않는다. 또한 그럴 능력도 없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연주회에서 그 곡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는 연주자 자신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이 될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연주자보다 그 곡에 대해서 더 정확히 한 음, 한 프레이즈, 한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마치 내가 이 곡을 알고, 내가 이 음에서 실수한 것을 아는 것처럼 알고 있는 듯이 생각이 들고 그래서 절대로 그런 실수는 해선 안 되고, 이 트릴을 실수한 것은 이 악장을 망친 것이고, 곧 이 연주를 망친 것이라는 식으로, 있을 수도 있는 작은 실수가 곧 실패요 패배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나를 꽉 얽어매는 효과를 갖고 와서 결과적으로 더욱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다.

합리적 사고방식에 젖어 들게 되면 나도 모르게 ‘만인의 애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막연히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호평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에 젖게 된다.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내 맘에는 들어야 된다로 발전한다. 그러나 내 맘에 드는 연주라는 함정은 극복하기 어려운, 자신을 너무나 힘들게 만드는 함정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스스로의 마음에 드는 연주란 일생에 한두 번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것을 연주회가 임박하면 스스로에게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청중을 감동시키기 위해선 적어도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게 된다. 청중의 감동을 책임지고자 한다. 청중들의 심리상태는 가지각생일 수밖에 없다. 인사 삼아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당신이 얼마나 하나 보자하고 미운 마음에 온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냉정한 비판의 눈을 유지하려 애쓰는 비평가도, 우리 선생님 연주는 언제 들어도 훌륭하다 하면서 감동할 준비가 되어있는 제자들도 있을 것이다.

감동할 사람은 감동하고, 그럴 준비나 그럴 마음이 없는 사람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연주를 통해 느끼는 감흥은 청중 각자의 몫이라는 점이다. 결코 내가 그들의 느낌을 관장할 수 없다. 책임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청중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나의 연주를 듣고 감동하는 것이다. 나의 것을 정성껏 드러내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의 반응을 기다릴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모든 이의 마음에 같은 종류의 감흥을 동시에 기대하는 것은 마치 내가 ‘만인의 애인’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심리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어찌‘만인의 애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를 좋아하고 내 연주를 기뻐하는 이들보다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부정적인 눈을 자꾸 의식하게 되면서 불안과 긴장은 항상 나를 따라 다니고, 억누르려고 할수록 더욱 증폭되는 것이다.

어떠한 성장 배경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어머니의 양육 태도는 성인이 되었을 때 불안과 긴장을 야기하는 상황에 직면해서 보이는 반응양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상대적인 가치관을 주입하고 상대평가로 아이의 자존심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며, 과잉 보호를 하여 타율적인 아이로 키웠는지, 아니면 자율적인 아이로, 시행착오를 스스로 경험하며, 적절한 격려와 지도로 자존심을 키우며, 스스로의 길에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며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웠는지 하는 문제는, 어른이 되어 스스로의 문제를 홀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부딪쳤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타율적인 아이로 성장한 경우는 불안이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자세를 고집하게 된다. 어려서는 어머니가 모든 불안 요소를 미리 제거해 주었던 것이다. 아이는 어려움을 어머니에게 통고하면 되었다. 더러는 아이의 통고 이전에 어머니가 미리 알아서 불안에 대비하기도 한다. 불안이라는 생존을 위한 기초적인 시련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그 끝맺음을 제대로 경험하고 체득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계획에 따른, 어머니를 만족시키는 결과에 아이도 그런가보다 하면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막상 어른이 되어 불안에 직면했을 때, 왜 내가 할 만큼 노력했는데 불안이 해결되지 않느냐 하면서 불안을 원망하고, 불안을 일으키는 환경과 상황을 원망하며 불안이 해소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된다. 이것은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된다. 불안은 결코 누군가에 의해 해소도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극복하고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불안에 적절히 대처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극복한다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대전제는, 불안은 우리가 떨칠 수 없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특히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야 하는 입장이 있는 한 항시 불안을 유발하며 살고 있다 할 수 있다.

불안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불안과 친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불안을 미워하고, 멀리하고, 배제하고 거부하려 하면 할수록 불안은 커지고 나에게 밀착되어옴을 느끼게 도니다. 어차피 함께 해야 할 거라면 받아 들이고 어우러지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본래 불안의 의미가 그러하듯, 불안은 기본적으로 나를 돕는 현상이지 나를 나쁘게 하는 현상은 아닌 것이다. 불안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깨달아 자다가도 일어나 연습하고, 길 가다가도 곡에 대한 해석을 생각해 보고ㅗ, 불안이 생길 때 그 불안이 흐르는 곳을 따라 흐르면 되는 것이다. 부족한 부분에서 불안은 유발된다. 그 불안이 시키는 대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면 그 불안은 덜해지고 불편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안과 긴장의 문제는 결국 나의 문제인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내가 불안하려 들면 불안할 수 밖에 없고,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받아들이고 대응할 수 있다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이란 현상을 다루고 조절하고 활용하는 능력은 나 자신의 문제가 된다. 나를 확고하게 확립하는 것, 즉 자아 정체감의 확립은 불안을 다스리는 첫 걸음이라 말 할 수 있다. 상황의 변동이나 심리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일관된 나의 모습을 유지하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불안의 의미를 되새기며 발전을 향해 노력할 수 있다면 불안은 더 이상 나를 방해하는 현상이 아니라 내가 더욱 향상할 수 있게 해주는 신선한 자극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극을 보다 충실한 연주 준비로 승화시키는 것이 나의 몫이다. 철저한 연습보다 더 중요한 연주 준비는 없을 것이고, 더 효과적인 불안 극복책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충분하고 철저한 기계적인 연습이 기본이라 생각된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악보를 확인하고 무심코 스쳐지나가던 악상 부호의 의미를 되새기고 박자를 확인하고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연습하고, 곡의 전체적인 흐름을 분석하고, 확실하게 곡을 숙지할 수 있도록 힘써야 될 것이다. 항상 하던 거니까, 지난번에 했던 거니까, 별로 난해한 곡이 아니니까 하면서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마음속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조금 부족하게 연습하게 되면, 알게 모르게 그 부족한 부분을 불안이 스며들어 채우게 된다. 불안은 그냥 제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고체 같은 것이 아니라 어디든 틈만 있으면 스며드는 액체나 기체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부족한 부분에 스며들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자꾸 파고들어 범위를 확장하고 점점 커져서 나를 압도해 오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이 스며들 틈이 없게끔 미리 대비하고 철저하게 연습하는 방법만이 가장 효과적인 불안의 대응책이 아닐까 싶다.

철저한 기계적 연습이 이루어지면서 차츰 혼을 담는 노력도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내가 흘린 땀방울만큼, 내가 들인 정성만큼, 내가 준비하는 연주곡에 생명이 깃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사람이 이 곡을 연주하였고 또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러나 내가 연주하는 이 곡은 나의 것인 것이다. 나만의 것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연주 준비요, 철저하게 나의 마음이 스며든 곡이 연주될 때 청중들에게도 나의 마음과 곡에 대한 애정이 전달되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며 무대 공포는 무대의 보람과 희열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연주자로서의 길은 홀로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치 ‘도’를 닦는 것과 같아 불안이든, 긴장이든, 연주의 성공이든, 그 모든 것이 내 마음 속에 있고, 나 스스로 해결하고 극복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려울 수 있음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불안을 조절하고 다스리며 불안에 적응함으로써 나를 발전시키고, 내가 지향하는 음악에의 길로 정진할 수 있으며, 이러한 나의 마음이 여주를 통해 드러날 때 청중과도 감동을 함께 나누며 호흡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음연 <피아노 음악> 1996년 11월, 12월호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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