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 길게 뻗은 모래사장, 울창한 숲속의 캠프촌,
독특한 건축 양식의 조탕(潮湯)과
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이는 용궁각 등이 담긴 옛 월미도 사진엽서를 들여다보면
다른 나라 풍광 속을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 월미도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광복 후 한때 있었지만
6·25전쟁으로 원형을 찾아볼 수 없게 된 데다가
피폐한 경제, 군부대의 주둔 같은 시대적 정황 등이
그를 용납하지 않았던 게 그간의 지역적 현실이었다.
더구나 60년대 이후 지상명제였던 경제개발의 여파로
해면을 매립해 항만과 공장 부지를 만들었고,
바닷가에 축대를 쌓아 '문화의 거리'를 조성한 것도
자금에 와 보면 너무 서둘렀던 감이 없지 않은 시행착오였던 것이다.
개설 30년이 다 돼도 명색이 '문화의 거리'인데 '문화'는 없고
'횟집'과 '놀이터'만 남은 형색이 초라해 보였던지
시가 개발한답시고 '전통 정원 공원'을 어거지로 만든 것은
초장부터 월미도 부활에 초를 친 격이 되고 말았다.
가당치 않은 짝퉁 천풍명월에 취할 것이 아니었다.
월미도 해상에서 벌어진
신미·병인양요, 운양호사건, 제물포해전, 인천상륙작전 등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적 기억과 그 상흔을
후손에게 알려줄 박물관 등을 만들 일이었다.
어쨌거나 월미산 부활의 제1 조건은
인근에 진을 치고 있는 공장의 이전이다.
차선책의 하나로 전차 부설을 논의하더니
정작에는 건설비가 배나 들고 공장 지붕만 쳐다보게 될
모노레일을 공사 중이다.
반면에 울산시는 국내 최초로
노면전차를 부설한다니 부아만 끓는다.
역사와 환경을 존중하는 개발이어야 한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