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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5 천 년 전의 한글 흔적

작성시간12.09.10|조회수70 목록 댓글 1

5 천 년 전의 한글 흔적
 
출판을 위하여[신지녹도문 천부경]을 보강 다시 쓰다 보니 5 천 년 전 원시 한글이 나온다.
 
6) 반파유적지의 토기 쪼가리로 본 증거 
 
지금 중국 서안에 있는 반파 유적지에서 나온 흑도(黑陶) 쪼가리에서는 원시한글 가림토의 어머니 신지신획 글자가 나오는데 이 흑도는 우리 한민족이 빛살 무늬 토기와 함께 만들어 썼던 질그릇이다.
그 질그릇은 온전한 모습도 없고 따라서 온전한 문자도 아직 보이지 않으나, 깨진 쪼가리에서는 신대문자, 신지 신획으로 보이는 원시 가림토, 금문이 혼용된 쪼가리가 나오는데 그중 몇 자만 보자.
 
다음 T 자 같은 것은 초기 가림토로써 '羊족'을 뜻하는 글자이다.

 

 
아래 그림에서 착하다는 善 자는 양의 머리를 그려놓았다. 즉, 양이란 동물은 호랑이 등 다른 동물과 달리 착하기만 하니 아마 착한 동물을 대표적으로 그려놓은 모양이다.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그러나 다음 진짜 양을 보자.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인용

 
이 역시 양의 머리이다. 즉, 이것으로 보아 당시 말이나 글자는 몇 마디 되지도 않아 같은 그림을 여러 방향으로 응용했다는 말이 되고, 또 처음 금문이란 어떤 음이 있는 것이 아니로 그저 지금 교통 표지판처럼 뜻만 있었던 것을 중국인들이 들여다가 자기네 말에 맞추어 음을 만들었다는 것이며, 따라서 신지녹도전자도 처음에는 뜻만 있었던 것이 나중에 음을 붙였다는 것이다.
 
  다음 흑도 쪼가리 중 아래 X 같은 것은 당시 우리가 영어를 쓴 일이 없으니 분명 알파벳은 아니고, 이는 신지녹도문과 같은 글자로 '하나'의 '나'에 해당하는 '빛 받는 대지'이다.
 

 
아래는 [신지녹도문 천부경]하나의 ‘나’ 
 

 
명마산 글쓴 바위에 나타나는 X 들
대략 4500 년전 밝달천제(檀君)께서 아사달(앗달)에서 선 아사선(앗선)이 대략 2 천년간 계속되가가 한나라에게 망하고 그 천제국 이었던 앗선 =선한, 신한(辰韓) 진한(辰韓) 유민들이 마한의 남동쪽 땅 한 귀퉁이를 얻어 신라를 세웠다는 말이 삼국유사에서 최치원은 말하고있다.
이때 선비나 지식층은 경주에 가서 나라는 세우고 상것들, 즉 무당, 풍각쟁이, 사당패, 백정, 각설이 패 등은 물도 별로 없는 명마산 기슭에서 따로 모여 살았는데 그래도 그들은 고향을 잊지 않으려고 북쪽에 바위가 병풍처럼 쳐 있는 바위아래 그들이 쓰던 금문 신지녹도문 가림토 등의 글자를 새겨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그들은 글자를 새기는 전문가도 아니고 또 연장도 시원치 않아 그 글자들은 매우 조잡하나 이는 당시 역사를 더욱 실증 하는것 이었다.
즉 글씨 전문가가 새긴 글자라면 진실이 왜곡 될 수도 있으나 상것들이 새긴 글자는 그대로 진실일 수 밖에 없다.
이 명마산 글자는 그간 부근에 사시는 향토사학자 예대원 씨가 발견 학계에서 보고 했으나 학계에서는 금문, 신지녹도문, 가림토를 전연 해독할줄 모르니 어떤 애들의 낙서쯤으로 알고 그대로 방치하고 있어 남한에서 단 하나뿐인 원시 한글의 문화재가 지금도 비바람에 마모되고 있다.
이에 글쓴이는 인근에 사시는 독자님들과 그들이 했던 대로 천제를 지내고 그들이 했던 대로 그 아래 마당 바위에서 음복과 밝달춤을 추고 왔는데 그 명마산 글씨 바위에 새겨진 수많은 글자 중 여기 흑도 글자와 같은 것만 제시 한다.
 
명마산 글씨바위 글자들은 대략 2~2500년 전에 새겨져 있다.
아래 그림에서 나무는 환웅 木이고  X는 원시 한글 가림토로 [신지녹도문 천부경] 하나의 '나' 와 같은 글자다
 
명마산 글씨바위에는 수많은 나무 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중 일부이다, 나뭇가지가 신지녹도전자 하나의 하 와 같고 그 옆에 X 자가 쓰여 있다.
 
환숫의  빛을 곰네 누리가 밭는  X 들 
 

  

 

 

 


 아랫것은 노골적인 가림토, 또는 현재의 ㅈ인데, 원시한글 가림토가 있다 하면 쌍지팡이를 들고 일어나며 그 가림토의 흔적을 내놔보라고 글쓴이를 정신병자로 몰아붙이던 한글학회 사랑방 회원들이 봤으면 좋겠다.
 

 
명마산 글씨바위 ㅈ. 고히 주무시라는 뜻이 있다.
 

 

 
 다음 글자는 금문으로, 위 '일곱'의 점들이 단순한 점이 아니라 일곱에서 '사내'를 뜻하는 'ㅅ으로 된 싹'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ㅅ 자들이 [신지녹도문 천부경] 일곱의 ‘일’ 에서는 간편하게 점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
 
[신지녹도문 천부경] 일곱의 '일'

 

여기서 위 점 세 개는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아들 들이고 다음 'ㅡ' 는 땅이며 그 아래 점 세 개는 자유로이 갈 수가 없는 감자나 마늘처럼 땅 속에서 새로운 씨인 사내가 찾아오기만 기다리는 딸 들이다.
 
그러나 흑도 쪼가리에서는 이것을 더 노골적으로 그렸다.
즉 위 점 세 개는 사내이니 ㅅ 으로 그렸고 


 

 
아랫것은 겨집(겨집女 훈몽자회)들 이므로 천부인에서 겨집, 즉 감둥이가 검둥이가 같은 말이듯 곰=감= 굼이고 굼은 구무, 구멍을 의미하는 ㄱ 자와 같은데 이는 또한 곡옥(曲玉)과 같은 그림이다.
 

 그렇다면 곡옥이란 무엇인가
얼마 전 KBS1 역사 다큐멘트리에서 방영한 홍산문화의 곰네(熊女) 무덤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나타나는 곰의 발과 곰의 턱뼈


 

 
 地神인 곰네 상

 

곰네유골과 함께 나타나는 곡옥(曲玉)

 
 
이는 또 [신지녹도문 천부경]셋의 환웅의 ㅿ이 山자로 되고 신라 각간(角干,뿔 큰)은 山이 하나인 관모를 쓰나 왕들은 여러개의 山자가 겹친 왕관을 쓰는데 그 왕관에은 곡옥이 붙어 있다.
즉 곰네는 환숫을 돕는다는 말이다.

 

이상으로 보아 원시 한글은 5 천 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 남한에는 명마산 글씨 바위에만 있다
 
먼저도 할 말이지만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최만리 파 등이 중국을 팔아가며 공갈을 치고 반대하자, 세종은 고육지책으로 정인지 등에게 잠시 설명해주고 그 어려운 [훈민정음해례본] 제자원리를 쓰게 하는데, 정인지 등이 쓴 그 내용은 '훈민정음의 제자원리는 순전히 중국의 음양오행음설이 기본이 되는 [성리대전]으로 만들었다'는 등 구역질나는 것이며, 그래서 여기에 맞추다 보니 한국의 계절이 4 계절이 되었다가 5 계절이 되는 등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제자해를 쓰게 하고, 이것이 1940 년 안동 이한걸의 집에서 발견되어 우리 국보 70 호가 되고 유네스코 인류문화 유산으로 지정되나, 려증동 교수의 철저한 연구로 이것은 일본인 小倉進平이 엄청난 돈을 받고 간송미술관에 팔아먹은 붓글씨 위작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 위작 해례본만 신주단지 믿듯 해가며 틀림없이 '자방고전(字倣古篆), 즉 우리 조상들의 글자를 본떠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세종의 말씀과, 또 최만리 상소문에 무려 6 번이나 '예부터 언문이 있었다.' 는 말을 무시하여 세종을 거짓말쟁이를 만들고 [세종실록]을 위서로 만드는 그 사람들이 이 대략 5000년 전의 흑도를 본다면 이번에는 뭐라고 할지가 궁금하다.
 
이 가림토 흔적은 많아야 입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자만 나왔어도 그것은 그때 이미 가림토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이다. 즉, 유물 추적에서 공룡의 발톱 하나만 나와도 이는 공룡이 살았다는 증거가 된다는 말이다. 
  
  http://cafe.daum.net/chunbuinnet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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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시간 12.09.11 아주 중요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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