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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

DMZ평화의길 32-1코스 2부 : 배롱나무 붉은 꽃은 방울방울 눈물 머금고

작성자대모산|작성시간25.10.25|조회수149 목록 댓글 0

DMZ 평화의 길 32-1코스(우회로) 제2부
간촌교-간촌리북천둑방길-북천교-

대대리북천북쪽둑방길-고성보훈공원-

송죽리연어공원-옛북천철교-송강정철정-

마산해안교-초계천-송림해안길-반암마을
20250920


1.코스 소개 : 생략. 제1부 참조.

 

 

2.배롱나무 붉은 꽃은 방울방울 눈물 머금고

 

제2부(간촌교~반암마을) : 고성군 간성읍 교동리에서 간촌교를 건너 간성읍 간촌리로 넘어와서 간촌리 지역을 지나간다. 이제부터는 북천의 남쪽 둑방길을 따라 간성읍 간촌리와 상리 지역을 통과한다. 남쪽에는 고성군청이 자리한 고성군의 행정 중심지 간성읍 상리와 하리 지역이 펼쳐져 있고, 북쪽에는 간성읍 교동리 지역이 자리하고 있다. 북촌 둑방길에는 여름꽃의 대명사 배롱나무 붉은 꽃들이 빗물을 머금고 방울진다. 배롱나무 꽃은 붉은색, 흰색, 보라색 등 세 종류가 있으며, 선비들이 뜰에 심어 학문하다가 쉬는 중 감상하는 꽃이라고 한다. 배롱나무 꽃의 명품은 담양의 명옥헌(鳴玉軒)으로 알려져 있다. 명옥헌(鳴玉軒)의 배롱나무는 지금도 한창일까? 북천둑방길의 배롱나무 꽃들을 살피니 붉은색이 주종이고 간혹 보라색 꽃이 보이지만 흰색을 발견할 수 없다. 가을비는 쉬지 않고 내리고 가을비 속 우산을 받치고 둑방길을 따라간다. 배롱나무 붉은 꽃은 국토를 순례하는 그리움의 눈물방울처럼 아롱진다.

 

북천둑방길은 북천교 남단에서 간성읍 상리에서 거진읍 대대리로 이어지는 간성로와 만나고 평화의 길은 북천교를 건넌다. 북천교는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옛 북천교는 통일의 염원을 담아 합축교(合築橋)라고 명명된다. 북한에서 1948년도에 착공하여 건설 도중 6.25동란으로 중단되었고, 우리나라 공병 대대가 1960년에 다리를 완공하여 북천교(北川橋)라고 하였지만 남북이 합쳐져야 한다는 뜻에서 합축교라 부른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그 옆에는1988년 완공된 새 북천교가 있다. 합축교는 현재 보도&자전거길로 통용되고 새 북천교는 자동차전용도로이다. 합축교에 담긴 뜻이 무엇일까? 6.25전쟁의 비극을 원한에서 관용으로 승화시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원한을 끊임없이 도돌이표로 되풀이하는 것은 평화와 상생으로 승화(昇華)하는 길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북천교를 건너 거진읍 대대리로 넘어갔다. 북천교 북단 대대삼거리 중심에 충혼비가 있었던 곳에는 노송이 식재되어 있고, 충혼비는 고성보훈공원에 재건립되었다고 한다. 평화의 길은 거진읍 대대2리 대대삼거리로 이어지지 않고 북천교 아래를 지나 북천 북쪽둑방길로 이어간다. 거진읍 대대리 북천둑방길에도 배롱나무 가로수길이 조성되어서 붉은 배롱꽃은 빗물을 머금고 길손의 탐방을 맞이한다. 간성읍 간촌리, 상리, 거진읍 대대리 지역의 북천 둑방길에 왜 남도 지역에서 주로 자라는 배롱나무를 가로수가 조성하였을까? 어떤 의도가 분명히 있을텐데 길손은 파악할 수 없다. 남도 어느 지역과 자매 결연을 맺은 탓일까? 전쟁의 비극을 승화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일까?

 

북천둑방길에서 국도 제46호선 진부령로로 내려가 진부령로 남북쪽에 조성된 고성보훈공원과 호국영웅쉼터를 살핀다. 고성의 창조적 미래를 위한 창조의 탑과 고성 청소년쉼터碑 옆에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공적비, 월남참전기념탑과 월남전참전용사추모비, 북진통일비와 충혼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일행들은 그냥 지나쳐가지만 전쟁의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며 공적비, 기념탑과 추모비, 충혼비를 살폈다. 그런데 월남참전은 우리가 용병으로 참전하였으며, 참전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2008년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하였다. 베트남 하미마을 위령비의 추도문을 읽어 보면 우리가 미래로 나아갈 방향이 보인다. 뉴시스 기사와 그 위령비 일부를 소개한다.

 

【서울=뉴시스】김호경 사회부장 = (상략)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이 벌인 민간인 학살 사건은 약 80건, 희생자는 9000여 명으로 지난 2000년 집계된 적이 있지만 추정 규모는 이후에도 계속 늘고 있다. 그렇다고 베트남 정부가 한국에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베트남 정부는 자국 언론에서 혹여 양민학살 관련 문제를 다루면 오히려 보도를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리곤 했다. 한국군이 철수한 지 19년 만인 지난 1992년 양국이 수교를 단행했을 때 수교협정 서명식에 참석한 보 반 키엣 베트남 수상은 "과거 두 나라 사이에 불행한 일이 많았으나 이는 양국 국민의 뜻과 무관한 일"이라며 과거사 문제에 일찌감치, 분명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 -중략- 문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이 계기가 돼 하미마을 위령비의 추도문을 오랜만에 찾아 읽어봤다. 지난 11일에 하미 학살사건 50주기 위령제가 현지에서 열렸고 한국에서도 여러 사람이 민간인 참배단을 구성해 참석했다고 한다. 50주기를 맞은 하미마을의 망자와 유족들에게 뒤늦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추도문 전문을 소개한다.  

"디엔즈엉은 예전에 강과 바다가 있던 곳으로, 신성한 이곳에서 락과 홍의 자손이 호앙선산맥을 넘어 남쪽으로 땅을 열고 500년 전 나라를 세웠다. 사람들은 하미, 하깡, 하방, 하록, 지아록 등 마을을 세웠고, 이곳은 예로부터 평화롭게 살면서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사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땅이었다. (중략) 1968년 이른 봄, 정월 스무 넷째 날 청룡부대 군인들이 갑자기 나타나 흉포하게도 양민들을 미친 듯이 학살하였다. 하미 마을은 30가옥이 불에 타고 주민 135명의 시체는 산산이 흩어지고 태워졌다. 그 지역은 붉은 피로 덮였고 모래는 뼈와 섞이고 집들은 사람과 함께 불태워졌다. 탄 고기와 비린 피를 탐하는 개미들, 화염이 지나간 후 더욱 짙어진 어둠을 생각한다. (중략) 지난 25년간 고향은 평화롭게 다시 세워지고 디엔즈엉 땅은 다시 비옥해지고 감자와 쌀이 잘 자라고 강의 물색도 좋아져 물고기와 새우도 많다. (중략) 이 깊은 상처를 남긴 그때의 한국인은 지금 찾아와 용서를 구하였다. 그리하여 용서 위에 비석을 세우고 고향 발전을 위한 인도적 협력의 길을 열고 있다. 모래와 소나무는 하미 학살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향불은 저세상의 영혼을 달래기 위함이다. 천 년의 흰 구름은 마을의 번영과 평안을 기원한다. 2000년 8월 경진년 가을 디엔즈엉 당, 정부, 주민" - 뉴시스. 김호경 2018. 3. 25.

 

비는 쉬임없이 내리고 휴대폰 배터리는 달랑거리는데 충전기는 작동하지 않는다. 거진읍 송죽리로 넘어와 연어공원을 지나 동해북부선 옛 북천철교 북단에 이른다. 여기서부터는 해파랑길 48코스와 동행한다. 2018년에 걸었던 추억을 찾아 북천 둑방길을 따라가면 초계천이 북천에 합수하는 서단에 송강정철亭과 여러 안내판과 고성군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북천의 하구를 내려본다. 북천이 동해 바다로 합수하는 출구는 희부윰하다. 가을비가 북천의 하구와 동해 바다에 퍼붓고, 강과 바다는 하늘의 비를 모두 받아들인다. 물의 포용력이 고성 북천 하구에서 가슴을 물들인다. 이 포용력이 평화의 바탕인데, 말은 평화를 외치면서 상처와 증오, 원한의 길로 나아가는 징표들이 너무 많다. 진정한 상생의 길이 고성 북천 하구에 있다. 

 

초계천이 북천에 합수하는 두물머리의 마산해안교를 건너 이제 북천과 이별한다. "고성 북천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 북천에게 편지 쓰지 않는다 눈이 내려도/ 찾아가지 않고 멀리서 살아간다// 아무리 비가 내려도 바다가 넘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 바다에게 편지 쓰지 않는다/ 나는 그 북천과 바다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더 이상/ 멀어질 수 없을 때까지// 나와 북천과 바다는 만날 수 없다/ 오늘도/ 그 만날 수 없음에 대해 한없이 생각하며 길을 간다// 너무나 오래된 것들은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래도/ 너무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나의 영혼 속에 깊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고성 북천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길을 가다가도/ 나는 몇 날 며칠 그 북천의 가을 물이 되어 흘러간다/ 다섯살 때의 바다로/ 기억도 나지 않는 서른다섯 때의 아침 바다로// 다 말하지 못한 것들만 거울처럼 앞에 나타난다" - 고형렬(高炯烈, 1954~)의 '북천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전문. 강원도 고성의 시인 고형렬은 왜 북천과 바다에 편지를 쓰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북천이 오래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도 오래된 것의 잘못된 것 때문이 아닐까? 그 잘못된 것들 때문에 눈물이 나오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 잘못된 오래된 것을 북천과 바다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오직 우리의 힘만이 이것들을 바로잡아 나갈 수 있다.

 

말 모양을 닮은 높이 46m의 마산(馬山)을 돌아 송죽리 들녘으로 나간다. 이곳은 예전에 호수가 있고 대나무가 많아서 죽포동(竹泡洞)이라고 불렸던 곳으로 북쪽으로 들녘이 드넓게 펼쳐지고 해안에 송림이 길게 이어진다. 이 들녘을 야다평(野多坪)이라 일렀던 것 같다. 야다평 동쪽의 해안가 송림길을 따라 북진한다. 송림은 보호 구역으로 통제되고 있다. 길게 이어지는 송림길에서 거진읍 반암리로 넘어간다. 이곳에서 해변으로 나가 보았다. 파도는 뒤채며 해안으로 몰려왔다가 포말로 부서지고, 멀리 수평선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다, 바다는 넓다, 바다, 바다는 깊다. 바다는 지상의 모든 것을 넓고 깊게 무화한다. 가야할 반암항과 거진항이 있는 북쪽을 바라본다. 파도와 운무 속에 반암항 등대가 보이고 거진항은 보이지 않는다. 해변에서 만나는 비와 바람은 길손에게 여름의 폭풍우처럼 느껴진다. 오래된 것의 폭풍우를 뚫어야 한다. 그럼에도 길손은 그 폭풍우 속에서 맴돌고 있다. 내 이루지 못할지라도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의 盤岩처럼 밑받침을 이루고 다음 세대의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반암해변에서 나와 자산천로를 따라 반암마을로 이어간다.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3.7km
전체 소요 시간 : 6시간 19분

13:21 교촌길

간성읍 교동리에서 간촌교를 건너 간성읍 간촌리(艮村里)로 넘어와 교촌길을 따라간다.

 

북천 둑방길 나가는 길

교촌길에서 간촌리 들길로 나가 북천 남쪽 둑방길로 이어간다.

 

교촌길

교촌길에서 소하천의 다리를 건너 전신주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간촌리 들녘으로 나간다.

 

간촌리 들녘길(교촌길 지선)

간성읍 간촌리 들녘길(교촌길 지선)을 따라 북천 천변으로 나간다.

 

간촌리 저수지

간성읍 간촌리 북천 남안(南岸)에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다. 간촌리 저수지를 오른쪽으로 돌아 동쪽 둑방으로 나간다.

 

뒤돌아본 교촌길

간촌 저수지를 돌아 오른쪽 앞 지선 교촌길로 나왔다. 교촌길이 중앙 전신주 뒤에서 왼쪽으로 이어져 간성읍 상리 지역으로 이어진다. 

 

간촌리 저수지둑방길

간성읍 간촌리 저수지 둑방을 지나 북천둑방길을 따라 간성읍 상리 북천교 남단으로 이어간다.

 

13:28 배롱나무 가로수길

간촌리 저수지 둑방에서 북천둑방으로 이어지는 길은 배롱나무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다.

 

배롱나무

간촌리 저수지 둑방에 붉은색 꽃이 핀 배롱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배롱나무 붉은꽃

배롱나무 꽃은 붉은색, 보라색, 흰색의 세 종류가 있는데, 팝콘 터지듯 핀 붉은색 배롱꽃이 빗물을 머금고 방울 짓는다.

 

보라색과 붉은색 배롱꽃

배롱나무는 백일 동안 꽃이 피어난다. 왼쪽의 배롱나무는 보라색 꽃, 오른쪽은 붉은색 꽃이 피어 있다.

 

13:36 간성읍 상리

간촌리 북천둑방길에서 간촌리 들녘 너머로 간성읍 상리 지역을 살핀다.

 

간성읍 상리(上里)는 동쪽으로 하1, 하2리 서쪽으로 간촌리와 교동리로 연결되어 있고, 남쪽에는 금수리, 북쪽으로 거진읍 대대리가 이웃하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소농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골짜기라 하여 속칭 소농골이라 불렀으며 지금은 쇠롱골이라고 부른다. 여지도서에는 금룡동리(金龍洞里), 방축동리(防築洞里), 천하정리(天下井里)란 기록이 있었으나 금룡동리와 천하정리는 연대 미상 용연동(龍淵洞)으로 변했고 1916년 8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문리(西門里)와 방축동(防築洞), 용연동(龍淵洞)이 상리(上里)에 편입했다. 1973년 행정구역 분할로 현재의 상1리와 2리가 됐다. 또 간성 시가지 주변에 있던 읍성의 서쪽문이 현재 고성중·고교로 가는 국도 상에 있었다고 하여 그 서쪽 문 일대를 서문턱이라 불렀으며 지금은 그 일원이 상1리 4반이 됐다. 구전에 의하면 옛날 함씨가 처음으로 상리에 입주 정착할 때부터 간성시가지를 중심으로 윗 부분을 상리, 중간 부분을 중리, 그리고 남천 쪽을 하리라 불렀다고 한다. 또 상리 서남쪽 골짜기를 방축이 있다 하여 방축동이라 하고 지금의 군립도서관 부근엔 우물이 3개 있던 곳이라 삼정동이라 했는데 용현동이라고도 불렀다. 그 외에 1반을 서문밖, 2반을 사직당, 5반을 천하정(天下井)이라 부르고 있다. - 고성문화원

 

북천교 남단

간성읍 간촌리에서 북천둑방길을 따라 상리로 넘어왔다. 붉은 꽃이 핀 배롱나무 둑방길은 간성로의 북천교 남단으로 이어간다.

 

북천교와 거진읍 대대리

간성읍 상리 북천 둑방에서 북천교와 그 북쪽의 거진읍 대대리 지역을 살핀다. 북천교는 간성읍과 거진읍의 경계이다.

 

13:42 간성로

북천 둑방에서 간성로의 북천교 남단으로 나와서 간성로 남쪽의 북천교차로와 간성읍 상리 지역을 바라본다.

 

새 북천교

간성읍 상리와 거진읍 대대리를 이어주는, 1988년 완공된 새 북천교 남단에서 거진읍 대대리 방향을 바라본다.

 

합축교(合築橋) 안내판

▶문화재명 : 고성 합축교(국가등록문화재 143호) ▶소재지 : 고성군 간성읍 상리, 거진읍 대대리 ▶등록일자 : 2004.12.31

통일염원이 서려있는 합축교(合築橋) 일명 북천교(北川橋)는 거진읍과 간성읍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폭 6m, 길이 214m, 높이 5m로 남과 북이 함께 만든 교량으로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꿈이 함께 담겨져 있다. 다리는 하나로 이어졌지만 남과 북에서 건설한 부분의 모습은 완연히 다르다. 교각 17중 남쪽에 9개는 북한에서 1948년도에 착공하여 건설도중 6.25동란으로 중단되었고, 북쪽의 8개는 우리나라 공병 대대가 1960년에 다리를 완공 개통시켰다. 원래 명칭은 북천교(北川橋)였지만 남북이 합쳐져야 한다는 뜻에서 합축교라 부르고 있다.

 

옛 북천교

합축교(合築橋)라 불리는 옛 북천교를 따라 거진읍 대대리로 이어간다. 

북천 하류

합축교를 건너며 북천 하류를 바라본다. 북천은 간성읍 상리와 거진읍 대대리를 가르며 동해 바다로 흘러간다.

 

옛 북천교와 새 북천교

옛 북천교인 합축교는 보도&자전거도로로 이용된다. 새 북천교는 북단에서 간성로의 대대삼거리로 이어진다.

 

옛 북천교 북당

평화의 길은 옛 북천교 북단에서 왼쪽으로 돌아 북천교 아래로 통과하여 북천교 북쪽 둑방으로 올라간다.

 

돌아본 옛 북천교와 새 북천교

북한에서 1948년도에 착공하여 건설도중 6.25동란으로 중단된 북천교를 우리나라 공병 대대가 1960년에 완공한 옛 북천교 옆에 1988년 완공된 새 북천교가 있다. 건너편에 고성군청있는 고성군 중심지 간성읍 상리와 하리 지역이 펼쳐져 있다.

 

남북 합작교 표석

옛 북천교인 합축교(合築橋) 북단 거진읍 대대리 지역에 '분단의 현장 남북합작교' 표석이 서 있다. "본 교량은 남북의 합작으로 완공된 시설물로서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기고자 이 징표를 세웁니다. 2004년 1월 1일 거진읍 대대2리 주민 일동" 

북천 북쪽 둑방

옛 북천교인 합축교(合築橋) 북단에서 북쪽 둑방을 돌아 북천교 아래로 내려간다. 북천은 남쪽의 간성읍 간촌리·상리 지역과 북쪽의 간성읍 교동리·거진읍 대대리 지역을 가르며 흘러온다.

 

두 개의 북천교

북천교 북단에서 서쪽으로 돌아 옛 북천교와 새 북천교 아래를 통과하여 북천 북쪽 둑방길로 올라간다.

 

13:47 북천 북쪽 둑방길

거진읍 대대리 지역의 북천 북쪽 둑방길을 따라 대대2리 지역을 지나간다. 대대리 둑방길에도 배롱나무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다.

 

돌아본 북천교 북단

간성로 서쪽의 북천교 북단에서 서쪽에서 남쪽으로 돌아 북천교 아래를 통과하여 둑방으로 올라왔다.

 

거진읍 대대2리

북천둑방길에서 북쪽에 자리한 대대2리 마을을 살핀다. 왼쪽 뒤에 대대삼거리 도로표지판과 그 왼쪽에 노송이 보인다.

대대리(大垈里) 위치는 동쪽으로 송죽리와 간성읍 봉호리, 서쪽으로 초계리와 접하여 있고, 남쪽으로 간성읍 상리, 북쪽에 오정리와 각각 이웃하고 있다. 예부터 마을의 뒷산인 노구산(老구山)이 마치 세 마리의 큰 학(鶴)이 사이좋게 날개를 펴고 앉은 것과 같은 형상으로 이루어진 터(垈)라고 하여 '학터' 또는 학대리(鶴垈里)로 불렀다. 그 후 어음(語音)이 변해 현재는 '한터' 또는 대대리(大垈里)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다른 뜻으로 넓은 들이라는 의미로 ‘한터’라고 하고 한자어 대대리(大垈里)라는 주장도 있다. 대대면의 소재지였으나 1916년 8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골말과 삼거리, 성단께를 합해 대대리(大垈里)라고 하였고, 1930년까지 방축골(防築谷) 산기슭에 큰 늪이 있었는데 지금은 논으로 변했다. 대대2리는 국도7호선과 국도46호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어 속칭 ‘삼거리’라고 마을 삼거리 중심에는 옛날 충혼탑이 있었으나 해체하였고 대신 노송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 고성문화원 

 

대대2리 마을

거진읍 대대2리 마을이 대대삼거리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고, 중앙 뒤쪽 산자락에 대대1리 마을이 보인다.

 

대대리 북천둑방길

거진읍 대대리 북천둑방길에 가로수로 조성된 배롱나무에 붉은 배롱꽃들이 피고지기를 백일 동안 지속한다.

 

거진읍 대대1리 마을

거진읍 대대리 북천둑방길에서 북쪽으로 대대1리 마을을 살펴본다.

 

방축동(防築洞)에는 1546년(조선 명종 원년) 간성읍 교동리로 이전한 간성향교와 유적지가 있다. 근래 마을 야산 주변에 청동기 유물들이 발견되어 청동기 주거지군으로 알려졌다.『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마을명 대대리(大垈里), 고개 이름은 노고현(老姑峴, 할미고개), 골짜기는 방축골(防築谷), 들은 후천평(後川坪), 대구미평(大口尾坪), 제방은 운자제언(雲字堤堰), 보는 후천보(後川湺, 지금의 북천보), 주막은 송전주막(松田酒幕, 솔밭주막)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대1리는 일명 ‘안대대리’ 또는 ‘큰말’이라고 한다. - 고성문화원 

 

13:55 국도 제46호선 진부령로

거진읍 대대리 북천둑방길에서 국도 제46호선 진부령로로 내려간다.

 

고성보훈공원

진부령로 건너편에 고성보훈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오른쪽의 넓은 터에는 호국영웅쉼터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창조의 탑

진부령로 북쪽에 고성군의 새로운 도약과 밝은 미래를 향한 창조적 발전을 상징하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1995년 7월

고성 청소년 푸른쉼터

창조의 탑 오른쪽에 '고성 청소년 푸른쉼터' 표석이 세워져 있다. 1999년 7월 23일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공적비

(사)대한민국 6.25참전국가 유공자회 고성군지회에서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공적비를 2005년 6월 3일 건립하였다.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공적비

관리번호 : 17-2-56, 관리자 : 고성군, 소재지 :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대대리 510-8

나라의 운명이 암흑세상에 빠졌을 때, 등화를 밝혀 나라를 구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번영을 이룩하는 데 초석이 된 것은 6.25참전 국가유공자들의 애국정신으로 이룩되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번영을 위해 싸우신 고성 지역 참전 유공자의 나라사랑 정신과 참전용사들의 공덕을 기리고 길이 계승하고자 2005년 6월 3일 (사)대한민국 6.25참전국가 유공자회 고성군지회에서 건립하였다. 6.25 한국전쟁으로 운명을 달리한 고인들의 넋을 기리고 지금의 평화로운 조국을 있게 해 준 6.25한국전쟁 국가유공자들의 공덕은 우리의 가슴속에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월남참전기념탑과 월남전참전용사추모비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공적비 옆에 월남참전기념탑과 월남전참전용사추모비가 서 있다.

 

월남참전 기념탑 안내판

관리번호 : 17-2-54, 관리자 : 고성군, 소재지 :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대대리 510-8

세계평화와 자유수호를 위하여 조국의 부름을 받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해외(월남)에 파병하여 우리국군의 용맹성을 세계만방에 떨치고 국가의 위상을 높임으로써 조국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탑은 인간의 존엄성과 월남 파병의 참뜻을 널리 알리고 후세들에게 우리민족의 용맹성과 호국정신을 계승 시키고자 강원도와 고성군에서 1억 2천만원을 지원받아 2004년 11월5일 대한민국 월남참전유공전우회 고성군지회에서 건립하였습니다. 냉전시대에 세계평화와 조국을 사랑하는 월남참전 용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유를 누리며 세계무대에 주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월남참전 용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받들고 후세들에게 확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고취시키는 교훈으로 이 탑을 세워 그 뜻을 영원히 후세에 전하고자 합니다. 

 

호국영웅쉼터

국도 제46호선 진부령로 남쪽, 고성보훈공원 맞은편에 호국영웅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오작교(烏鵲橋)

월남전참전기념탑과 월남전참전용사추모비 앞에는 오작교가 조성되어 진부령로를 가로질러 호국영웅쉼터와 이어진다. 음력 칠월 칠석에 견우와 직녀를 서로 만나게 하기 위하여,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모여서 자기들의 몸을 잇대어 만든다는 다리 오작교(烏鵲橋) 이름을 이곳에 왜 붙였을까? 호국의 영혼들과 만난다는 의미로 붙였을 것이다.

 

북진통일비와 충혼비

국도 제46호선 진부령로 북쪽, 월남참전용사 추모비 동쪽에 북진통일비, 중앙에 충혼비가 우뚝하다.

 

충혼비 안내판

관리번호 :17-2-50, 관리자 : 고성군, 소재지 :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대대리 510-8

1951년 4월 20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 직전까지 2년간 국군 제5·8·9 사단과 미 제10군단 장병들은 괴뢰군 예하 12·15·45 사단과 건봉산에서 접전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여 치열한 전투 끝에 거진 지구를 수복시키는 데 불멸의 공을 세웠다. 처음 미 10군단이 당하지 못하고 밀려나자 아군 제5·8·9 사단과 미 7함대 20여척이 거진 앞바다에 집결 합동 작전으로 최후의 반격을 가해 중공군 1개 사단과 괴뢰군 2개 사단을 건봉산 계곡에 몰아 넣고 섬멸시키는데 이 때 육박전에서 북괴군이 머리가 짧기 때문에 머리를 만져보고 칼로 찔렀다고 한다. 이같이 피의 격전에서 당시 건봉사 탈환은 동부전선 일대를 사수할수 있게 한 대전과였다. 이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산화한 호국 용사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1956년 5월 30일 거진읍 대대리 삼거리 중앙에 충혼비를 건립하였으나 88올림픽 성화 봉송으로 주변정비 사업으로 고성군에서 이 자리에 옮겨 재건립하였다. 

 

부추꽃

충혼비 안내판 앞쪽 들에 하얀 부추꽃들이 피어 반짝인다.

 

뒤돌아본 고성보훈공원

고성보훈공원에서 진부령로를 건너 북천둑방길로 나와서 고성보훈공원과 호국영웅쉼터를 돌아본다.

 

14:05 진부령로와 북천

국도 제46호선 진부령로와 북천 사이의 보도&자전거길을 따라 앞쪽의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의 북천1교 아래를 통과한다.

 

대대교차로와 동해대로 북천1교

왼쪽의 진부령로 대대교차로를 지나, 동해대로 북천1교 아래를 통과하여 거진읍 송죽리로 넘어간다. 

 

14:11 연어의 고향 조형물

거진읍 송죽리 연어공원에 '연어의 고향'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송죽리 마을

거진읍 송죽리 마을의 밤나무에 밤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오른쪽 뒤에 마산이 보인다.

 

14:17 옛 북천철교(北川鐵橋) 출입구

옛 북천철교는 사라지고 교각 위에 나무다리를 조성하였고, 출입구에 옛 동해북부선 철도요충지 '고성'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부터 해파랑길 48코스와 동행한다. 잠시 북천의 보도교를 걸어보고 되돌아온다.

 

옛 동해북부선 철도요충지 '고성' 안내판

●분단 전 동해북부선 철도 전체 노선 중 고성구간 약 43.1% ○연장 : 양양~원산(192.6km) 중 83.0km ○정차역 : 32개 역 중 13개 역(북고성 6, 남고성 7) ●남북 간 철도연결 시범사업 추진 ○2007.5.17. 제진~감호 구간 시범운행(현재 운행 중단)

 

북천 보도교

1930년대 건설된 북천철교(北川鐵橋)는 사라지고 교각에 보도교를 조성하였다. 건너편은 간성읍 봉호리 지역이다.

 

북천 상류 방향

북천 보도교에서 북천 상류 방향을 살핀다.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의 북천1교가 보인다.

 

북천 하구

북천 보도교에서 북천이 동해 바다에 유입하는 북천 하구를 살핀다. 오른쪽은 간성읍 봉호리 해안이다.

 

북천 보도교

보도교를 따라 간성읍 봉호리 방향으로 나갔다가 보도교를 건너 거진읍 송죽리로 되돌아간다.

 

거진읍 송죽리(松竹里)

옛 북천철교 출입구에서 송죽리(松竹里) 지역을 바라본다. 오른쪽 뒤에 마산(馬山)이 있으며 이곳은 옛 죽포동이다.

 

송죽리(松竹里)는 동쪽의 동해, 서쪽으로 오정리와 대대리가 있으며, 남쪽으로 북천과 간성읍 봉호리, 북쪽으로 반암리와 송포리가 각각 이웃하고 있다. 옛날 송학동(松鶴洞)과 죽포리(竹泡里)라고 부르는 두 마을이 있었다. 송학동(松鶴洞)은 송림이 무성하고 앞뜰에 학(鶴)이 찾아온다고 하여 이름하였고 또 한 곳은 북천 하구에 자리 잡은 곳으로 앞산인 마산(馬山) 기슭에 호수와 대나무가 있어서 죽포동(竹泡洞)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죽포동이 수해로 인하여 가옥이 유실된 후 1916년 8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두 마을을 합하여 송죽리(松竹里)로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 죽포리에는 죽포역(竹泡驛)이 있었다.『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죽포역리(竹泡驛里), 간성군읍지에는 죽포리(竹泡里)와 송학동리(松鶴洞里)로 각각 기록하고 있다.『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마을명을 ‘죽포리’와 ‘송학리’로, 죽포리 산은 마산(馬山), 들 이름은 야다평(野多坪), 역 이름은 죽포역(竹泡驛), 송학리 산은 송학봉(松鶴峰), 들 이름은 유전평(柳田坪, 버드내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고성문화원 

 

마산(馬山)

옛 북천철교 출입구에서 북천둑방길을 따라 내려간다. 왼쪽 뒤 옛 죽포동 지역에 마산이 있다. "마산(馬山)은 죽포 동쪽 들 가운데 있는 해발 46m의 산으로 말처럼 생겼다. 마산은 옛날 용마가 났으나 용마(龍馬)를 탈 장사가 마을에 태어나지 않아 용마가 의리상 그곳에서 죽었다고 하여 마산(馬山)이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성문화원)

 

거진읍(巨津邑) 송죽리(松竹里)

북천둑방길에서 거진읍(巨津邑) 송죽리 지역을 다시 바라본다. 오른쪽에 마산이 있고, 그 앞에 초계천이 흐른다. 

 

14:23 초계천 하구의 쉼터

거진읍 송죽리 초계천 하구 마산해안교 서단(西端)에 쉼터정자와 화장실, 평화누리길 인증스탬프박스, 동해안 국토종주 자전거길 종합안내도, 고성군 조형물 등이 설치되어 있다.

 

송강정철정(松江鄭澈亭)

평화누리길 쉼터정자 이름은 <관동별곡>을 기록한 송강 정철(1537~1594)을 기려 송강정철정(松江鄭澈亭)이라 하였다.

 

전망대

송강정철정(松江鄭澈亭) 아래 초계천(草溪川)이 북천에 합수하는 두물머리 언덕에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북천 하구

초계천을 합수한 북천이 동해 바다에 유입하는 북천 하구를 내려본다. 오른쪽은 간성읍 봉호리 지역이다.

 

초계천(草溪川)과 마산해안교

전망대에서 초계천 위를 가로지르는 마산해안교를 올려보았다. 뒤쪽에 마산이 자리한다.

 

송강정철정(松江鄭澈亭)

전망대에서 송강정철정(松江鄭澈亭)과 마산해안교 서단(西端)의 고성군 조형물을 올려본다.

 

동해안 국토종주 자전거길 종합안내도

마산해안교 서단(西端) 출입구에 서 있는 동해안 국토종주 자전거길 종합안내도를 살핀다.

 

동해안 자전거길 1코스~3코스 안내도

동해안 국토종주 자전거길 종합안내도 중 고성 구간 1코스~3코스 안내도를 자세히 살핀다.

 

2코스 자산교~남천교 안내도

동해안 국토종주 자전거길 종합안내도 중 2코스 자산교~남천교의 상세 안내도를 살핀다.

'문화재와 박물관'과 '석호여행'

동해안 국토종주 자전거길 종합안내도 중 오른쪽의 '문화재와 박물관'과 '석호여행'을 살핀다.

 

◆문화재와 박물관 ●천학정 : 천혜의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건립되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청간정(관동팔경) : 까마득히 높다란 관동팔경의 경치를 배경으로 한 해돋이는 한 폭의 동양화 같다. ●건봉사 : 신라 때 지어진 천년 고찰 건봉사, 불이문,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가 원래 모습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화암사 : 신라 혜공왕(서기 769년) 때 창립된 사찰로 천년이 넘는 역사르 간직하고 있다. ●왕곡마을 : 옛 것 그대로 시간이 멈춘 곳, 왕곡마을의 옛 추억을 찾아,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해 보자. ●진부령미술관 : 천재화가 이중섭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3개월을 주기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화진포해양박물관 : 1500여종, 4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형형색색의 산호섬과 열대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진포생태박물관 : 박제와 골격, 화석류와 영상, 실물 모형 등을 통해 화진포호의 생성과정, 동식물 생태계 등을 관찰할 수 있다.
◆석호여행 ●화진포석호 : 국내 최대 석호(潟湖)인 화진포호 주변에 조성된 화진포둘레길을 도보 또는 자전거를 대여하여 둘러볼 수 있고, 화진모 소나무숲 산림욕장의 응봉에 물리 화진포호와 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송지호 석호 : 해수유입이 비교적 적고 동해안 석호 중 수질이 가장 양호하다. 송지호 관망타워에서 송지호에 찾아오는 철새들의 군무를 볼 수 있으며, 도보 또는 자전거를 대여하 송지호 둘레길을 감상할 수 있다. 

고성군 역사탐방

동해안 국토종주 자전거길 종합안내도 아래 왼쪽에 소개된 고성군 역사탐방을 살핀다.

 

●고성통일전망타워 : DMZ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고성통일 전망타워에 서면 구선봉과 해금강, 감호 등 천하절경의 금강산을 볼 수 있다. 발아래에는 금강산 육로관광의 길목인 동해선 남북연결 도로와 철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6.25전쟁체험전시관 : 한국전쟁 중 동해안의 주요전투를 다룬 기획 전시실, 영상체험실, 전쟁체험실, 병영체험실 등이 있다. ●DMZ박물관 : 한국전쟁 전후 모습과 휴전선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 70여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생태환경 등을 전시물이나 영상물로 재구성하여 DMZ박물관에 담아 놓았다. ●이승만초대대통령 화진포기념관 : 1954년 이승만초대대통령의 별장으로 지어진 이곳은 철거와 복원 및 보수를 거듭해 이승만대통령 화진포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기붕부통령별장 : 1920년 외국인 선교사가 건축해 사용했던 건물을 휴전 후 이기붕부통령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했다. ●화진포의 성(김일성별장) : 1938년 선교사 셔우드홀 부부의 의뢰로 독일망명 건축가 베버가 건축하였으며 한국전쟁 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에 복원하였다. 김일성이 이곳을 별장으로 사용한 것은 1948년부터 2년간이다. 

 

고성의 특별한 맛

동해안 국토종주 자전거길 종합안내도 아래 오른쪽에 소개된 고성의 특별한 맛을 살핀다.

 

●자연산 물회 : 금방 잡은 자연산 가자미, 오징어, 해삼 등 에 각종 야채와 초고추장이 어우러져 새콤달콤 신선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명태지리국 : 고성 특산품인 명태에 다른 양념없이 마늘과 소금으로만 간을 해 끓여낸 맑은탕이다.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한 저지방 음식이라 영양면에서도 으뜸인데다 맛이 깔끔하고 시원 담백하다. ●도치두루치기 : 심통이라고도 불리는 도치는 살이 연하고 뼈도 그냥 씹어먹을 수 있다. 도치두루치기는 겨울철 별미로, 잘 익은 김장김치를 넣고 끓이면 얼큰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토종(흑)돼지 : 고성군 토종흑돼지는 담백하고 고소하며 쫄깃쫄깃하다. 지방이 적고 다른 육류에 비하여 단백질, 비타민 B군이 많을 뿐 아니라 인, 칼륨, 철분, 메치오닌 성분도 많다. ●털게찜 : 겨울철 동해에서만 볼 수 있는 털게는 표면에 털이 보송보송 나 있지만 하얀 속살의 담백한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정도로 인기여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고성막국수 : 큼직한 무가 먹음직스럽게 들어 있고 얼음이 둥둥 떠있어 보기만 해도 시원한 동치미를 국수에 부어 먹는 고성막국수는 담백하고 개운해 별미 중의 별미로 사랑받고 있다. ●추어탕 : 청정 고성의 깨끗하고 힘이 넘치는 미꾸라지를 같아 고추장에 끌인 추어탕은 예부터 전통 보신식품이었다. 비타민A를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어 훌륭한 스태미너 음식이다. ●도루묵찌개 : 도루묵은 비늘 없는 생선으로 고단백이지만 아주 담백한 맛이 난다. 겨울철 별미로 알이 꽉 찬 도루묵찌개를 맛보다 보면 입안에서 살짝 터지는 알의 쫀득쫀득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산해안교

초계천(草溪川)의 마산해안교를 건너 송죽리 옛 죽포동의 마산으로 건너간다.

 

초계천(草溪川) 상류 방향

거진읍 초계리에서 발원하여 북천에 합수하는 초계천(草溪川)을 올려본다. 중앙의 산은 송학봉인듯, 오른쪽에 마산을 확인한다.

 

북천(北川) 하구(河口)

마산해안교에서 초계천(草溪川)이 북천(北川)에 합수하는 두물머리와 북천이 동해 바다에 유입하는 북천 하구를 내려본다.

 

14:30 마산해안교

마산해안교를 건너 초계천 북쪽 둑방길을 따라 올라간다.

 

걸어온 길

초계천 건너편의 송강정철정 앞에서 마산해안교를 건너 초계천 북쪽 둑방으로 넘어와 둑방길을 따라 올라왔다.

 

14:39 갈림길

초계천 북쪽둑방길을 따라 오르다가 앞쪽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송죽리 들녘으로 나간다. 왼쪽 산은 송학봉인 듯. 

 

옛 죽포동(竹泡洞)

마산 북쪽 기슭의 옛 죽포동(竹泡洞) 들녘길을 따라 동해 바다 해안으로 나간다. 해안에는 송림이 길게 이어진다. "북천 하구의 이곳은 마산(馬山) 기슭에 호수와 대나무가 있어서 죽포동(竹泡洞)이라 불렸다고 한다." (고성문화원)

 

야다평(野多坪)?

거진읍 송죽리의 옛 죽포동 지역에 들녘이 드넓다. 이 들녘을 야다평(野多坪)이라 이르는 듯. 해안에는 송림이 길게 이어진다.

 

마산(馬山)

마산(馬山) 기슭에 호수와 대나무가 있어서 이곳은 죽포동(竹泡洞)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대나무 대신에 소나무들이 무성하다.

 

송죽1길

마산 북쪽 기슭의 송죽1길을 따라 앞에 보이는 송죽 배수펌프장을 거쳐 동해 바다 옆 송죽리 해안의 송림으로 이어간다.

 

송죽리 해안 송림

동해 바다 거진읍 송죽리 해안에 길게 펼쳐진 송림이 거진읍 반암리로 이어진다. 이 들을 야다평(野多坪)이라 이르는 듯.

 

송죽 배수펌프장

농경지 침수방지를 위해 전동기 펌프가 설치된 송죽 배수펌프장 앞을 지나 송죽리 해안의 송림으로 이어간다.

북천 하구와 동해 바다

중앙 뒤에 북천 하구가 있는 간성읍 봉호리 해안에 건물이 보인다. 비가 내리는 동해 바다는 흐릿하다. 

 

동해 바다

동해 바다가 아득하고 송죽리 해안의 송림이 북쪽으로 이어간다.

 

14:47 송죽리 해안의 송림

거진읍 송죽리 해안의 송림이 북쪽으로 길게 펼쳐진다.

 

돌아본 마산

말 모습을 하였다는 마산을 돌아본다. 마산 뒤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송죽리 해안으로 나왔다.

 

종합방제사업 안내판

송죽리 해안의 우량곰솔림 종합방제(防除)사업 안내판이 붙어 있다.

 

15:01 해안 송림

거진읍 송죽리에서 반암리로 넘어왔다. 송죽리 해안의 송림은 북쪽 반암리 해안으로 이어져 있다.

 

동해 바다

반암리 송림 앞 동해 바닷가로 나와 아득히 펼쳐지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동해 바다를 바라본다.

 

반암 해변

반암 해변에서 북쪽 반암항과 그 북쪽의 거진항을 올려본다. 반암항 방파제와 등대가 보이지만 거진항은 보이지 않는다.

 

15:08 자산천로 출입구

해변에 나가 동해 바다와 풍경을 살핀 뒤 해안 송림길을 따라와서 자산천로로 나간다.

 

반암교차로

자산천로 보도에서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의 반암교차로를 돌아본다. 교차로 입구에 각자전수교육관 표지안내판이 서 있다.

 

반암리(盤岩里) 자산천로

거진읍(巨津邑) 반암리(盤岩里) 자산천로를 따라 반암마을로 이어간다.

 

고성군 각자전수교육관

거진읍 반암리 자산천로 건너편에 고성군 각자전수교육관이 있다.

 

15:11 반암(盤岩)마을

자산천로가 거진읍 반암리 반암마을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이어간다. 평화의 길은 오른쪽 반암길로 이어간다.

 

반암리(盤岩里)는 동쪽으로 동해를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오정리, 남쪽으로 송죽리, 북쪽으로 송포2리에 각각 인접하고 있다. 예부터 간성군 대대면에 속한 마을로써 해안이 돌아가는 모퉁이에 위치하여 돌구미 또는 회진리(回津里)로 부르기도 하였다. 마을 땅속에 암반이 있고 마을 주변에 암석과 해중(海中)의 평평한 반석이 널려 있다고 하여 반바우 또는 반암리(盤岩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을 서쪽에는 국난이 있을 때마다 신호의 역할을 하였던 높은 봉수봉 정양산(正陽山)이 있다.『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반암회리(盤岩回里)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산 이름은 烽燧山(봉수산, 正陽山 烽燧), 작봉(鵲峰, 까치봉) 일명 응암봉(鷹巖峰), 들 이름은 장승평(長承坪)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고성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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