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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지리산둘레길 16구간 1부 송정-문수제 : 지리산 왕시루봉 자락 섬진강과 오봉산, 구만들 풍경

작성자대모산|작성시간26.06.23|조회수56 목록 댓글 0

지리산둘레길 16구간 제1부

송정-의승재-송정계곡-원송계곡-

노인요양원-솔깔끔마을-문수제

20260616

 

 

1.지리산 왕시루봉 자락 섬진강과 오봉산, 구만들 풍경

 


지리산둘레길 16구간을 탐방하였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마을 위쪽 토지송정길에 2주만에 다시 온다. 2주 전 이곳에서 15구간을 역방향으로 탐방할 때는 탐방 내내 비가 내리고 지리산 산줄기는 운무에 덮여 수묵화를 그렸다. 이번 탐방날에도 기상 예보는 비가 내린다고 하였지만 예상과 달리 탐방 내내 땡볕이었다. 지리산둘레길에서는 16구간을 이렇게 개략한다.

 

송정-오미 구간은 구례군 토지면 전경과 섬진강을 보면서 걷는 길로  농로, 임도, 숲길 등 다채로운 길들로 이어진 10.4km의 둘레길이다. 숲의 모습 또한 다채롭다. 조림현상과 산불로 깊게 데이고 다친 지리산의 상처를 만난다. 아름다운 길에서 만나는 상처는 더욱 아프고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생각하게 한다. 남한의 3대 길지 중 한 곳으로 알려진 운조루를 향해 가는 길은 아늑하고 정겹다. 섬진강 너머 오미리를 향해 엎드려 절하는 오봉산이 만드는 풍광도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송정마을에서 출발해 약 1km의 오르막길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완만하고 숲길이 많은 편이라 걷기에 좋다. 오미마을은 조선시대 양반가를 엿볼 수 있는 운조루로 유명하다. 남한의 3대 길지로 꼽히는 운조루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이 새겨진 큰 쌀독이 있다. ‘누구든 이 쌀독을 열 수 있다.’는 뜻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린 사람들에게 이 쌀독을 열어 구제했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송정 1.8km 송정계곡 1.4km 원송계곡 2.7km 노인요양원 4.5km 오미', 전체 거리는 10.4km, 예상 소요 시간은 5시간 30분, 난도 상이다. 지리산둘레길 16구간을 2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1부(송정-문수제) : 송정마을 위쪽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토지송정길 80호 출입구 앞 지리산둘레길 15·16구간 시종점에서 토지송정로를 가로질러 서쪽 대나무숲으로 진입하여 지리산둘레길 송정-오미 구간 탐방을 출발한다. 이번 구간 탐방 지역은 토지면 송정리, 파도리, 구산리, 오미리 지역으로 섬진강 북쪽, 지리산 왕시루봉 남쪽 자락을 탐방하는 코스이다. 토지면에서도 파도리와 구산리, 오미리 지역은 섬진강 남쪽의 간전면과 문척면 지역을 마주하고 섬진강 북안(北岸)의 드넓은 구만들을 중심으로 자리하여 산악 지역인 구례 지역에서는 넓은 들녘을 차지한 곳이다. 그래서 구만들의 중심을 차지한 구산리 지역은 면사무소가 자리한 토지면 면소재지이다.

 

가파른 비탈길에 조성한 묵밭을 지나며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눈물겹다. 이제는 화전민들이 떠나가고 밭은 버려져 개망초가 무성한 묵밭이 되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고 몇 차례 굽이돌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탈길을 오르면 의승재, 출발지에서 1.1km, 약 40분이 걸렸다. 의승재는 어떤 유래가 있는 것일까? 1597년 정유재란 석주관 전투와 관련된 지명일 것이다.

 

송정계곡 아래 섬진강 북쪽의 산에 석주관성(石柱關城)이 있다. "고려 말기에 왜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鎭을 설치했는데 임진왜란(1592) 때 전라방어사 곽영이 호남지역의 왜적을 막기 위해 옛 鎭 위에 석주관성을 쌓았다. 성의 북쪽과 남쪽이 지리산과 백운산의 험한 산줄기이고 그 사이에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군사 방어 지형으로도 중요한 길목이다. 경사진 산허리를 따라 만든 성곽의 길이는 약 736m이고 돌로 쌓아 만든 벽의 높이는 50∼120cm이다."(국가유산청). 1597년 정유재란 때 8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석주관에서 구례 지역 수백 명의 의병들과 화엄사 승병 153명이 힘을 합쳐 처절한 혈전을 전개하였으나, 대부분의 의병들은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후일 이곳에서 싸운 의병장들을 석주관 칠의사라고 하여 석주관성 기슭에 석주관 칠의사 사당과 묘역을  조성했다. 그래서 석주관으로 내리벋는 능선의 고개 이름을 의승재(義僧嶺)라고 명명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송정계곡으로 내려가는 골짜기는 편백나무 그윽한 숲길이다. 비가 부족하여 골짜기 물은 말라 있다. 편백숲과 조릿대 터널을 지나고 골짜기를 건너 석주관 갈림길에 이른다. 석주관 갈림길에는 지리산둘레길 이정목과 '남도이순신길 충무공 백의종군로' 이정목이 함께 서 있다. 석주관은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면서 지났고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면서 궤멸된 조선 수군을 재건하려고 거쳤던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라남도에서는 "정유재란이 있었던 1597년, 당시 관직에서 파직당하여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군사, 무기, 군량, 병선을 모아 명량대첩지로 이동한 구국의 길을 '조선수군 재건로'로 명명하여 역사스토리 테마길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구례군에서는 구례읍 봉북리 258번지 일대에 조선수군 재건 출정공원을 2015년 11월 조성하였고, 토지면 송정리 석주관에서 구례읍 봉북리 손인필 비각까지를 '조선수군 재건로' 첫 구간으로 개통하였다. 이곳에서 석주관을 다녀오기 위해서는 가파른 송정계곡 석주골을 왕복해야 하는데 왕복 거리 1.8km이다. 지난 시절의 석주관 탐방을 추억하며 석주관 갈림길을 지난다.

 

송정계곡을 지나 섬진강으로 내리벋는 산줄기 허리를 가로지르면 섬진강 건너편 간전면 지역에 솟은 국사봉이 보이고, 그 서쪽 문척면 지역에는 계족산이 솟아 있다. 원송계곡으로 내려가는 임도에서 지리산둘레길은 다시 산길로 올라가 편백나무숲을 지나 쉼터정자에 이른다. 이 쉼터정자가 있는 능선이 토지면 송정리와 파도리의 경계를 이루는 것 같다.

 

토지면 파도리 지역으로 넘어가 임도를 따라간다. 오리나무에는 솔방울들이 그득히 달려 있고, 산딸기는 그리움으로 알알이 붉게 타오른다. 국도 제19호선 섬진강대로의 동방천 삼거리로 이어지는 임도로 내려간다. 토지면 구만들이 드넓게 펼쳐지고, 그 남쪽에 섬진강이 굽이돌아 흐르며, 건너편 남쪽 문척면 지역에 오봉산의 나즈막한 다섯 봉우리가 이어지고, 그 뒤에 오산(鰲山)이 솟아 있다. 그리고 서쪽에 구례읍 시가지에 시야에 들어온다.  

 

"해발 209m 오봉산(五鳳山)은 문척면에서 섬진강을 따라 가로로 누운 다섯 봉우리의 산이다. 이곳에는 오봉귀소형(五鳳歸巢形)의 큰 명당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특히 다섯봉 중 맨 동쪽 봉우리에 그 생기가 집중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아들을 점지받기 위해 부녀자들이 앞을 다투어 답산하였다. 산의 형태가 자라 모양으로 생긴 해발 542m 오산(鱉山) 위에는 도선, 원효, 의상, 진각 등의 스님을 모시는 사성암(四聖庵)이 있다. 바위 틈새에 샘물이 고여있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은 오산에 대해〈구례현의 남 15리에 있다. 산마루에 바위 하나가 있고 바위 틈에 빈틈이 있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 전하기를 도선(道詵)이 일찍이 이 산에 살면서 천하의 지리(地理)를 그렸다고 한다.〉라고 기록하였다."(고제희의 '대동풍수지리'에서)

석류꽃이 여름의 땡볕을 받아 더욱 붉은 빛을 흘리고, 부부의 금슬 사랑을 가져온다는 자귀나무 분홍색 꽃이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임도에서 골짜기를 건너 파도리 반곡길 언덕으로 올라간다. 북쪽으로 노고단과 그 동남쪽의 왕시루봉을 어림하며 반곡길을 따라가면, 토지면 드넓은 구만들과 섬진강, 문척면 오봉산과 오산이 끊임없이 가슴에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다. 이 지역이 풍수지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없지만 토지면 풍경은 마음에 평화롭게 자리하며 여유를 준다. 이 풍경은 탐방을 마치는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까지 이어진다.     

 

구례 지명은 '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으며 기름진 땅'을 뜻하는 '고래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래실'은 전라도 사투리로는 '구레실', 또는 '구레논'과 '구렛들'로 표현되며, 이 말들이 구례로 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 지역이 구레실이 될까? 이는 전남·전북·경남의 경계를 이루는 지리산 삼도봉(三道峰)을 꼭지로 삼아 흐르는 섬진강을 감싼 구례 지역은 산흙이 흘러내려 기름진 '구레실'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택리지』에서도 "구례 땅은 비록 들은 좁지만 농산물의 수확은 많고, 골짜기 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가니 가뭄타는 일이 적은 곳이다."라고 하였다.(고제희 '대동풍수지리' 참조) 구례(求禮)가 '예를 구한다'는 뜻이지만 본래의 뜻은 '물길이 좋고 기름진 땅'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토지면(土旨面)은 화엄사에 딸려 도자기를 만들어 바치던 토지처(土旨處)였는데 조선시대에 토지면이 되었으며 1914년 4월 1일에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마산면 하사리(下沙里) 일부를 병합하여 구산, 파도, 오미, 문수, 용두, 금내, 송정, 외곡, 내서, 내동 등 10개 리로 통폐합하였다. 동쪽으로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남쪽으로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과 문척면, 서쪽으로 구례군 마산면, 북쪽으로 구례군 산동면과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닿았다. 남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간전면과 문척면과 접경하였다. 동북방으로 지리산을 등지고 서쪽으로 섬진강 연안에 330㎞의 넓은 평야가 있다."(구례군청) 토지면은 고려 때 도자기를 만들어 바치던 토지처(土旨處)에서 유래하였다. 그리고 토지면 파도리는 '배들이>바드리>파도리'로 변한 말로, 배들이는 섬진강물이 마을 앞까지 넘쳐흘렀고 나룻배들이 이곳에 정박한 데서 유래되었으며,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 표기하여 파도리(把道里)가 되었다고 한다.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 각 지명의 뜻을 알아보고 나니 구례가 새롭게 보인다. 왕시루봉 자락의 토지면 파도리 등평들에는 묘지들이 즐비하다. 이곳이 명당이라는 풍수지리 때문일 것이지만 무덤을 명당에 잡는다고 하여 후손들이 잘 된다면, 그렇지 못한 후손들은 모두 출세하지 못하는 것일까? 길손은 이런 풍수지리를 모르고 명문가도 아니기에 죽으면 화장하여 산에 뿌려달라고 자식에게 이야기하였다.

 

구례군 노인전문요양원이 자리한 곳을 토지면 파도리 반곡이라 이른다. 그래서 이 지역의 도로명이 반곡길이며, 지리산둘레길은 반곡과 등평들 사이의 반곡길을 따라오르다가 임도를 따라 반곡 북쪽 언덕으로 올라간다. 언덕에는 파고라 쉼터가 조성되어 있는데, 조선수군재건로 안내판에는 '구례노인요양원 위쪽 쉼터'라고 적혀 있고, 지리산둘레길 설명에서는 '토지면 오봉전망대'라고 소개한다. 이곳에서는 남쪽의 드넓은 구만들과 섬진강, 섬진강 건너의 오봉산과 오산을 더 가까이서 살필 수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이곳을 선녀가 하늘로 오르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렸다는 금환락지(金環落地)의 명당이라 이른다고 한다. 이 자연 풍경 속에 사람들이 모여사는 토지면 파도리 파도마을, 구산리 구산마을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지리산 왕시루봉 자락의 산허리 임도를 따라 계속 서북쪽으로 나아가면, 토지면 구산리 구만마을 서쪽으로 오미리 오미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임도는 남쪽 들녘의 파도마을과 구산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두세 곳 나오는데, 드디어 파도리와 구산리의 경계를 이루며 구산리 단산마을로 내려가는 구산길이 나온다. 구산길을 가로질러 이제부터는 단산윗길 임도를 따라 솔까끔마을로 올라간다. 솔까끔마을은 토지면 구산리 단산마을 위쪽 산중턱 군몽골에 자리한 전원주택 단지를 이른다. '까끔'은 전라도 사투리로, 마을의 나지막한 산을 이르며, 까끔의 비탈진 길을 까끔길이라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솔까끔은 소나무동산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주성윤(朱成允, 1939~1992)의 '풀' 시비가 단산윗길 풀숲에 오두마니 서 있다. 시를 읽어 보았다. "신기루처럼 어느 백일에/ 별안간 드높이 치솟아오른/ 세월의 망루 그 위서/ 날카로운 고양이 수염 하나/ 번뜩한 순간 어둠은/ 들쥐가 되어 달아나 버렸다"('풀' 전문). 무슨 뜻일까? 세월의 무상감, 또는 화살처럼 빠른 세월의 흐름을 읊은 것일까? 세상의 부정적인 것들은 어느 순간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의미일까? 제목인 '풀'은 시의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풀은 民草를 뜻하는 것인지, 어둠이 달아난 곳인지? 풀, 백일, 세월의 망루, 고양이 수염, 어둠, 들쥐. 상징적 관념시가 가슴에 머물지 못한다.

 

드디어 문수골 입구의 문수저수지가 보이고, 그 아래 오미리 내죽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까지 걸어온 토지면 송정리, 파도리, 구산리 지역의 산길과 임도가 문수저수지 물에 풀어지며 아름다운 탐방길을 그린다. 문수골에는 어떤 역사적 상처가 숨어있는가?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0.5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16분

10:57 송정마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마을 위쪽에 지리산둘레길 15·16구간 시종점이 있다. 왼쪽 뒤에 봉애산이 보인다.

 

봉애산 자락길을 내려서면, 저 아래 송정마을이 눈에 들어오고, 긴 밤나무 길을 내려서면 송정마을 앞을 지나가게 된다. 송정마을은 행정리로 안한수내, 바깥한수내, 신촌, 원송 등 몇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계곡의 물이 맑고 차다고 하여 유래된 한수천은 안쪽에 위치한 안한수내(내한)마을과 바깥쪽의 바깥한수내(외한)마을을 이루고, 여순항쟁 때 소실되었다가 정착 사업으로 새로이 터를 잡아 새뜸(신촌)마을, 그리고 사람들이 쉬어가는 소나무 정자가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솔정(원송)마을로 나누어진다. - 지리산둘레길

 

지리산둘레길 상징조형물 벅수와 이정목

토지면 송정리 토지송정길 80호 출입구에 지리산둘레길 15·16구간 시종점 안내판, 지리산둘레길 상징조형물과 이정목이 서 있다.

 

지리산둘레길 15·16구간 시종점

가탄 10.6km, 오미 10.4km 지점에서 지리산둘레길 16구간은 토지송정길을 가로질러 대나무숲 산길로 올라간다.

 

오르막 산길

지리산둘레길 15·16구간 시종점에서 구례군 토지면 송정계곡 산길로 진입하여 가파른 오르막 산길을 올라간다.

 

11:09 송정 200m 지점

송정 0.2km, 오미 10.2km 지점,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올라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굽이돌아 올라간다. 

 

묵밭

돌로 쌓은 축대의 묵밭 두 곳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왼쪽으로 굽이돌아 올라간다.

 

11:17 참나무 숲길

짙푸른 녹음이 드리운 참나무 숲길을 올라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11:25 지리산둘레길 이정목

송정 0.7km, 오미 9.7km 지점의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을 지나 계곡을 돌아 올라간다.

 

11:35 의승재 산비탈길

가파른 산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면 의승재이다. 의승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석주관 전투에서 순절한 구례 지역 의병들과 화엄사의 승병들을 기리기 위해 명명한 고개 이름일 것이다.

 

의승재(義僧嶺)

송정 1.1km, 오미 9.3km 지점의 의승재에서 지리산둘레길 탐방객들이 간식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송정마을에서 숲길을 걸어 다소 험한 비탈을 올라서면 의승재에 다다른다. 의승재에서 석주곡수까지는 아름드리 편백숲이 순례자의 마음을 차분히 만들어준다. 석주곡수는 정유재란 때 구례선비 왕득인 등 수많은 구례 의병들과 화엄사의 승병들이 왜군에 맞서 백병전을 벌이다 옥쇄(玉碎)한 피의 전장이다. 순절한 의승병들이 흘린 피가 흘렀던 계곡물은 혈천(血川) 또는 피내라 불리며 석주관 칠의사묘 앞을 지나 섬진강으로 합류한다. - 지리산둘레길 

 

편백나무 숲

의승재 산등성이의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가 송정계곡으로 내려간다.

 

11:42 송정계곡 숲길

송정계곡 편백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간다.

 

송정계곡

송정계곡 골짜기를 건너간다. 골짜기의 물은 송정계곡과 석주계곡을 거쳐 섬진강으로 유입된다.

 

11:56 석주관(石柱關) 갈림길

송정 1.8km, 오미 8.6km 지점, 석주관 갈림길에서 아래는 석주곡(石柱谷)으로 내려가고, 둘레길은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석주관(石柱關) 내려가는 길

석주관성(石柱關城)으로 내려가는 골짜기는 정유재란 때 수많은 구례 의병들과 화엄사의 승병들이 왜군에 맞서 백병전을 벌이다 순절했는데, 그들이 흘린 피가 흘렀던 계곡물은 혈천(血川) 또는 피내라 불린다고 한다.  


석주관성(石柱關城), 정유재란(丁酉再亂)의 기억이 담긴 곳.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산 65번지 일대 돌로 쌓은 성으로, 고려 말 왜구가 섬진강을 통하여 전라도 내륙으로 침범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된 관문성으로, 성곽의 길이는 736미터이다. 이곳은 1597년 정유재란 때 구례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구례 출신 7명의 의사(왕득인, 왕의성,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를 모신 묘와 사당이 있다. 칠의사 묘역에는 총 8개의 묘가 있는데 이는 1597년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구례현감 이원춘을 함께 모셨기 때문이다. - 구례군청  

 

남도 이순신길 백의종군로

이곳에서부터 지리산둘레길은 이순신장군 백의종군로와 동행하며, 이곳에서 송정계곡으로 0.9km를 내려가면 석주관이 있다.

 

석주관(石柱關)은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군사전략상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전라도 방어사 곽영(郭嶸)이 남원에 진을 베풀고 11월에 이곳에 성을 쌓고, 구례현감 이원춘(李元春)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1597년 8월 초 왜군이 석주관으로 쳐들어오자 구례현감 이원춘은 소수 병력으로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남원성으로 퇴각하여 그곳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 후 왜군이 구례로 들어와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자 왕득인의 아들 왕의성과 이 지방 출신 선비인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 등이 수백 명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들은 화엄사 승병 153명과 함께 힘을 합쳐 처절한 혈전을 전개하였으나, 왕의성을 제외한 5의사와 대부분의 의병들은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이곳에서 싸운 의병장들을 석주관 칠의사라고 하여 성터 옆에 사당을 세웠으며, 순조 4년(1804) 나라에서 7명 의사의 충절을 기려 각각 관직을 내렸다. - 구례군청 

 

12:02 내려본 송정계곡

송정계곡이 험하다. 이 아래쪽에 석주관이 있으며, 석주관은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며 지났던 곳으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면서 궤멸된 조선수군을 재건하려고 거쳤던 길이라고 한다. 

 

12:10 지리산둘레길 이정목

송정 2.1km, 오미 8.3km 지점을 통과하여 등성이로 올라서면 남쪽으로 풍경이 열린다.

 

12:13 국사봉

산등성이 길에서 섬진강 남쪽 구례군 간전면 지역의 해발 682.2m 국사봉을 어림한다. 

 

12:20 원송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송정 2.8km, 오미 7.6km 지점, 토지면 송정리 원송계곡으로 내려간다. 

 

계족산

등성이길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면 해발 702.8m 계족산이 솟아 있으며, 바로 아래쪽은 송정리 원송계곡이다. 

 

12:26 원송계곡 임도

원송계곡 임도를 따라 '농작물 채취 금지. 마음으로만 담아가 주세요!' 알림막을 지나간다. 

 

원송계곡 갈림길

송정 3.0km, 오미 7.4km 지점의 갈림길에서 왼쪽은 원송계곡으로 내려가고,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갈림길

송정 3.1km, 오미 7.3km 지점, 시멘트 임도에서 숲 속으로 들어간다.

 

12:31 편백나무 숲

숲길로 들어가 편백나무 숲을 올라간다.

 

12:38 지리산둘레길 이정목

편백나무숲이 계속 이어지는 숲길을 통과하면 송정 3.5km, 오미 6.9km 지점을 알리는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서 있다. 

 

국사봉

편백나무숲을 통과하면 풍경이 열리며 섬진강 남쪽에 국사봉이 솟아 있는 풍경이 들어온다. 

 

12:41 쉼터정자

풍경을 살피고 숲길을 올라가면 언덕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이 지점이 토지면 송정리와 파도리의 경계인 듯.

 

12:49 토지면 파도리 산길

송정 3.6km, 오미 6.8km 지점, 쉼터정자에서 점심을 먹고 토지면 송정리에서 파도리 지역으로 넘어간다.

 

돌아본 쉼터정자

토지면 파도리 지역으로 넘어가서 쉼터정자를 뒤돌아보았다.

 

시멘트 임도

산비탈에 오리나무들이 열매를 달고 줄지어선 시멘트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12:54 갈림길

송정 3.9km, 오미 6.5km 지점, 시멘트 임도는 왼쪽으로 굽이돌고, 지리산둘레길은 직진하여 숲속으로 진입한다.

 

뒤돌아본 갈림길

시멘트 임도를 따라 내려와 갈림길에서 임도와 헤어져 숲길로 들어왔다. 오른쪽은 섬진강대로로 내려가는 듯.

 

편백나무 숲

임도에서 숲길로 들어가면 편백나무숲이 펼쳐진다.

 

13:01 임도

송정 4.2km, 오미 6.2km 지점, 편백나무숲을 지나 숲길을 내려가면 임도와 만나며 왼쪽으로 내려간다. 

 

구례읍 시가지

임도 언덕에서 오른쪽 뒤의 구례군청이 자리한 구례읍 시가지, 왼쪽의 오봉산, 그 뒤의 사성암이 있는 오산을 조망한다. 

 

섬진강과 오봉산

임도를 따라 내려가며 굽이도는 섬진강, 그 남쪽의 나즈막한 다섯 개 산봉의 오봉산, 그 뒤의 오산(鰲山)을 다시 살핀다.

 

13:06 갈림길

자귀꽃이 피어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은 섬진강대로의 동방천 삼거리로 내려가는 길.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돌아본 갈림길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 갈림길 임도에서 걸어온 임도와 걸어갈 임도를 돌아보았다.

 

갈림길

송정 4.4km, 오미 6.0km 지점의 갈림길에서 왼쪽 임도로 이어간다.

 

13:11 갈림길

송정 4.6km, 오미 5.8km 지점, 임도를 따라가다가 왼쪽 숲길로 이어간다. 

 

나무다리

임도의 갈림길에서 숲길을 따라가면 골짜기의 나무다리가 나타난다.

 

조선수군 재건로 설명안내판

나무다리를 건너면 쉼터에 '남도 이순신 길 충무공 조선수군 재건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정유재란이 있었던 1597년, 당시 관직에서 파직당하여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군사, 무기, 군량, 병선을 모아 명량대첩지로 이동한 구국의 길을 '조선수군 재건로'로 명명하여 역사스토리 테마길로 조성함."

 

◆석주관은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면서 지났던 곳이었고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면서 궤멸된 조선 수군을 재건하려고 거쳤던 길이기도 하다. 이순신으로서는 석주관은 물론 구례가 남다른 곳이다. 1597년 4월 1일(음력), 이순신은 의금부에서 풀려나면서 도원수 권율 휘하에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8월 2일까지 이어진 백의종군에서 권율의 진영이 있었던 전라도 순천과 경상도 초계에 머문 것을 빼면 가장 오랫동안 머문 곳이 구례였다. 그는 5월 14일부터 12일간 구례에서 구례 현감 이원춘의 은근한 환대를 받으며 전황과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손인필의 지극한 공대 역시 구례의 남다른 인연이 되었다. 5월 16일, 빗속에 구례를 나서 석주관을 거쳤다. 초계로 옮긴 권율의 진영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하동·단성·삼가를 거쳐 초계에 도착한 그는 7월 18일까지 그곳에서 머물렀다. 원균의 칠천량 해전의 패배 소식을 접하고 직접 연해안 동정을 살피겠다며 진주·곤양·노량을 돌았다. 그리고 진주에 머물렀다.

 

◆조선수군 출정 공원. 8월 3일 아침,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한다는 교유서를 받고 제일 먼저 떠올린 곳이 구례였다. 곧바로 출발해 자정 무렵에 하동 두치에 이르렀고 이튿날 아침에 석주관에 닿았다. 이원춘과 류해가 복병하여 지키다가 이순신을 보고 왜군 대적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조선 수군을 재건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이순신은 이들을 상대로 장시간 응대할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저물녘 구례현에 닿았을 때 제일 먼저 찾은 이가 손인필·손응남 부자였다. 이들과의 연은 이듬해 노량해전에서 함께 전사할 때까지 계속됐다. 이순신은 이튿날부터 곡성·순천·보성·장흥·진도에 이르기까지 병사와 무기, 화약, 화살, 그리고 군량미를 확보하면서 조선 수군을 재건하기 위한 힘겨운 여정을 이었다. 그리고 9월 16일, 13척의 배로 133척의 대함대를 무찌른 세계 해전사에 전무후무한 대승을 거두었다. 불과 한 달이 되지 않은 시간에 궤멸된 조선 수군을 재건하는 기적을 일구었고, 그 보름 후 대첩을 이룬 것이다. 조선 수군 재건의 첫걸음은 구례에서 시작됐고, 명량대첩 여정의 출발은 석주관이었다. 현재는 ‘조선수군 재건로’라는 역사 탐방로가 개설돼 지리산 둘레길 제16구간과 많은 부분이 겹쳐 이어진다. 전라남도에서 2014년부터 '조선수군 재건로' 조성을 시작해 현재는 전 구간이 개통됐다. ‘수군재건 입성길’로 불리는 그 들머리가 석주관이다. - [인문학이 있는 지리산 둘레길] 제16구간 송정~오미, 황부호 작가. 경남신문 2026. 3. 4.

 

돌아본 나무다리

나무다리를 건너서 쉼터의 '조선수군 재건로 설명안내판'을 살폈다.

 

감나무밭

'조선수군 재건로 설명안내판'이 설치된 쉼터에서 올라와 감나무밭을 지나간다. 

 

대나무밭

감나무밭을 지나 길 양쪽에 대나무밭이 있는 임도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간다.

 

걸어온 길

감나무밭을 지나 대나무밭 언덕길을 오르다 뒤돌아보았다. 중앙 오른쪽 위 편백나무숲길에서 임도로 나와 이곳으로 올라왔다. 

 

걸어온 길

죽순이 솟아 있는 대나무밭 길에서 왼쪽 위 편백나무숲길과 임도를 다시 돌아보았다. 중앙 뒤에 국사봉이 솟아 있다. 

 

야생 차밭

왼쪽에 야생차밭이 펼쳐져 있는 언덕길을 오른다.

 

13:18 걸어온 길

야생차밭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왔다. 왼쪽 뒤 걸어온 편백나무 숲길이 한눈에 들어오고, 중앙 뒤에 국사봉이 솟아 있다.

 

계족산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 언덕에 묘지가 조성되어 있고, 섬진강 건너편 구례군 문척면 금정리에 계족산이 솟아 있다. 

 

반곡길

송정 5.0km, 오미 5.4km 지점, 파도리 반곡촌으로 이어지는 반곡길을 따라간다. 중앙 뒤에 구례읍 시가지가 보인다.  

 

등평들

반곡길을 따라 토지면 파도리 등평들을 지나간다.

 

압해 정씨 월헌공계파 가족묘원

압해 정씨 월헌공계파 가족묘원이 조성되어 있고, 앞에 시조유래비가 서 있다. 왼쪽 뒤에 지리산 왕시루봉이 있을 것이다. 

 

시조의 유래 1)약 천 년 전부터 본관을 압해(押海) 정씨로 사용해 왔으며 이후 나주로 쓰다가 종친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압해로 결정함. 2)다산 정약용공께서는 38세(世)손임. 3)압해 정씨 나주파 월헌공계(고암계)로써 고암공께서는 월헌공의 증손자로써 사형제가 모두 고관 대작을 지내셨고 특히 고암공께서는 장원급제를 하신 자랑스러운 선조이시다. 4)대외적으로는 압해정씨 나주파 월헌공계로 알고 사용하시면 됨.

 

파도리 지역

압해 정씨 가족묘원에서 토지면 파도리 등평들 아래 반곡길을 내려보았다. 중앙에 구산리 구만(九灣)들, 중앙 맨 뒤에 구례읍 시가지가 보인다. 섬진강 건너 왼쪽에 나즈막한 오봉산이 이어지고, 그 뒤에 사성암이 자리한 오산이 솟아 있다. 

 

13:25 오봉산과 오산

토지면 파도리 반곡길을 따라간다. 섬진강 남쪽 문척면 금정리에 오봉산이 이어지고, 중앙 뒤에 사성암이 있는 오산이 솟아 있다. 

 

반곡길 42-126호

반곡길 북쪽 등평들에 예쁜 민가가 남향하여 자리한다. 오른쪽 뒤에 지리산 왕시루봉이 있을 것이다. 

선인장 꽃

반곡길 남쪽 민가 출입구에 선인장 노란 꽃이 예쁘게 피었다.

 

아왜나무

등평들을 지나는 반곡길에 아왜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아왜나무 꽃

아왜나무가 푸른 잎들 사이에서 하얗게 꽃을 피웠다.

 

13:30 노인요양원 진입로 쉼터

송정 5.5km, 오미 4.9km 지점, 노인요양원 진입로 쉼터정자 앞에 지리산둘레길 송정-오미 구간 안내도와 이정목이 서 있다.

 

지리산둘레길 송정-오미 구간 안내도

지리산둘레길은 이곳에서 구례노인요양원, 솔까끔마을, 문수저수지, 내죽마을, 하죽마을, 오미마을로 이어진다.

 

걸어온 길

반곡길을 따라 노인요양원진입로 쉼터 앞으로 왔다.

 

반곡길

오른쪽에 등평들이 펼쳐지고, 지리산둘레길은 반곡길을 따라 구례군 노인요양원 방향으로 올라간다.

 

돌아본 쉼터

노인요양원진입로 쉼터에서 반곡길을 따라 오르다 뒤돌아 보았다. 오른쪽 길은 파도마을로 가는 반곡길이고, 아랫길은 국도 제19호선 '섬진강대로'로 이어지는 파도길이다. 섬진강 건너 오른쪽에 오봉산이 나즈막하고, 왼쪽에 계족산이 솟아 있다. 

 

구례군 노인전문요양원 출입구

반곡길을 따라 구례군 노인전문요양원 출입구를 지나 언덕길을 올라간다.

 

구례군노인전문요양원

구례군 노인전문 요양원은 2008년 7월 22일 개원하였다고 한다. 지리산둘레길은 요양원 뒤쪽의 언덕길로 이어간다.

[데일리안 광주·전라 김기웅 기자] 구례군 노인전문 요양원이 문을 열었다. 노인 전문요양원은 치매, 중풍, 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전문인력을 갖춘 요양 시설이다. 군은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에 총공사비 19억4000만원을 투입, 총 60병상 규모의 최신 노인전문 요양원을 신축했다. 입소 대상자는 치매·중풍 등 중증 노인성질환으로 요양을 필요로 하는 노인 중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노인과 65세 이상노인 가운데 생계를 같이하는 부양의무자로부터 적절한 부양을 받지 못하는 노인이다. 입소 희망자는 입소서류를 구비 관할 읍,면사무소에서 신청하면 입소할 수 있다. 노인전문 요양원에는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간호사, 위생원, 조리사 등 30명의 직원을 배치, 정기적인 건강 검진과 예방접종은 물론 이,미용 서비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데일리안 2008. 7. 22. 

 

섬진강, 계족산과 오봉산

반곡길에서 등평들을 내려본다. 아래에는 섬진강이 굽이돌아 흐르고, 그 건너 왼쪽에 계족산이 우뚝하고, 오른쪽에 오봉산이 나즈막하다.

 

구만들, 오봉산과 오산

아래 중앙에 구만들이 드넓게 펼쳐지고, 섬진강 건너에 오봉산의 나즈막한 오봉이 이어지며, 그 뒤에 오산이 솟아 있다.

 

반곡길

반곡길을 따라가다가 위쪽 갈림길에서 왼쪽 임도로 이어간다. 

 

13:37 갈림길

송정 5.8km, 오미 4.8km 지점의 갈림길에서 왼쪽 임도를 따라 노인요양원 뒤쪽으로 이어간다. 

 

구례군 토지면과 문척면

노인요양원 뒤 임도에서 바라본다. 토지면 구만들이 드넓고, 섬진강 건너 문척면 지역의 오봉산이 아담하고, 계족산과 오산이 늠름하다. 

 

언덕길

골짜기의 다리를 건너 송정 6.0km·오미 4.4km 지점의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을 지나 언덕으로 오른다.

 

구례군 간전면

언덕에서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와 섬진강 건너 간전면 지역을 조망한다. 오른쪽 계족산 왼쪽에 간문천이 흐르고 그 왼쪽 지역은 구례군 간전면 지역이다. 노인요양원이 있는 토지면 파도리 이 골짜기가 반곡이며, 이 아래에 반곡촌이 있다.

 

13:43 임도의 언덕

임도의 언덕을 힘들게 올라가 내려간다.

 

굽이도는 임도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굽이돌아 송정 6.3km·오미 4.1km 지점의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간다. 

 

13:49 노인요양원 위쪽 쉼터

임도를 따라 언덕으로 오르면 언덕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토지면 오봉전망대 : 지리산둘레길은 원송마을과 숲길을 지나 토지면 파도리에 다다른다. 구례노인요양원을 돌아 가파른 임도를 올라서면 왕시루봉 끝자락에 자리한 파고라 쉼터에 도착하게 된다. 오봉과 섬진강의 여유로움과 넑게 펼쳐진 구만들의 넉넉함이 어우러진 풍광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오봉과 섬진강을 바라 보노라면, 선녀가 하늘로 오르다 금가락지를 떨어뜨렸다는 금환락지(金環落地)의 명당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지리산둘레길  

 

섬진강과 계족산

쉼터에서 섬진강과 그 건너 계족산을 조망하였다. 계족산 왼쪽의 간문천을 경계로 구례군 간전면과 문척면이 나뉜다. 

 

파도(把道)마을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 파도마을이 아래에 자리하고 오른쪽에 드넓은 구만들이 펼쳐지며, 섬진강 건너편은 문척면 지역으로, 중앙에 오봉산, 왼쪽에 계족산, 오른쪽에 오산이 자리한다. 맨 오른쪽은 토지면 구산리 지역이다. 


토지면 파도리(把道里)는 1680년경 평강 채씨가 정착하여 개척하면서 취락이 형성되었으며 본동에 예속된 반곡촌이 먼저 생겼다고 한다. 본동과 반곡, 동방천 3개의 자연마을을 이루고 있으면 처음 정착했던 평강 채씨는 타지로 이거하고 그 후 입주한 전주 이씨, 제주 고씨 등이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이 형성되면서 바다리(봉교리蜂橋里), 소교(所橋), 해교(海橋)라 불려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파도리로 개칭하였다. - 구례군청 

 

파도마을 갈림길

송정 6.1km·오미 3.9km 지점, 파도마을로 내려가는 비탈밭에 고사리밭이 조성되어 있다. 

 

자귀나무 꽃

임도 길가에는 자귀나무 분홍색 꽃들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다. 

 

수로

왕시루봉 자락의 임도 오른쪽에 수로가 길게 조성되어 있다.

 

구산리 구만(九灣)마을

바로 아래에 토지면 파도리와 구산리를 경계하는 구산길이 지나고 아래에 토지면 면소재지 구산리의 구만마을이 자리한다.

 

구산리 구만(九灣)마을은 삼한시대 마한 고랍국의 중심지로 치소(治所)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개성 왕씨가 개척하였다. 김해 김씨, 전주 이씨가 산세와 수세가 좋다고 하여 입촌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토지 중앙경로당 앞에 보존되어 있는 입석(立石)과 고인돌을 근거한 자료에 의하면 삼한시대의 부족 국가의 터전과 들판, 논에서는 기와 조각과 질그릇 조각을 발견할 수 있는 점으로 보아 오래된 마을로 볼 수 있으며 구만 호가 살았다고 하여 구만이라 하고 아홉 물굽이가 모인 곳이라 하여 구만(九灣)이라 했다. 아홉 물굽이는 덕은천, 한수천, 칠의내, 머리내, 배우내, 서시내, 옥이내, 반내, 동구내이다. 그런데 문척면 화정(花亭)이 우리말로 ‘꽃징이’이다. 이 꽃징이가 강쪽으로 육지가 돌출된 부분을 뜻하고 반대편 구산리 쪽으로 섬진강이 굽어드는 곳이므로 구만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구만은 ‘구미+안’의 준말이다. 회관 마당에 있는 소나무의 수령을 약 300여 년 이상으로 추정한 것으로 보아도 오래된 마을의 근거가 되며 중앙경로당 앞 감옥이 있었는데 죄인을 가두는 옥으로 보아 삼한시대부터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한다. - 구례군청

 

13:55 구만마을 갈림길

송정 6.8km·오미 3.6km 지점, 토지면 파도리와 구산리의 경계를 이루는 구산길이 남북을 가로지른다.  

 

단산윗길

토지면 파도리에서 구산리로 넘어와 단산윗길을 따라 조릿대 터널을 지나간다.

 

생활체육시설

단산윗길을 따라 언덕에 오르면 체력단련장과 파고라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구례군에서 2000년에 건립한 생활체육시설이다.

 

14:02 단산(丹山)마을 갈림길

송정 7.3km·오미 3.1km 지점, 왼쪽 임도는 토지면 구산리 단산마을로 내려가는 길인 듯. 단산윗길을 따라 직진한다. 

 

구산리 단산(丹山)마을은 회관에 있는 괴목나무 수령이 약 400여 년으로 추정되지만 김해 김씨 김삼암(金三岩) 집안이 11대까지 살았다는 근거에 의하면 마을의 설촌 시기는 약 300여 년 전으로 보인다. 원래 토지면 구산리(구만-단산)와 같은 마을이었으나 구만마을에서 독립하여 행정구역으로는 단산, 신단산, 월곡, 사지묵, 중산 등 5개 마을을 합하여 운영되어 오다가 사지목(12가구) 중산리 2뜸(22가구)은 여수·순천 10·19사건 때 폐촌되었으며 월곡 8가구는 1980년대에 폐촌되어 지금은 4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고 있다. - 구례군청 

 

솔까끔마을 입구

단산윗길을 따라가면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주택들이 자리한 솔까끔마을이 나타난다. 

 

14:07 솔까끔마을

토지면 구산리 단산마을 위쪽 산중턱에 전원주택 단지 솔까끔마을이 자리한다.

 

단산윗길

구례군 토지면 구산리 군몽골 일대에 조성된 솔까끔마을의 축대가 이어지는 단산윗길을 따라간다.

 

14:11 토지천 갈림길

송정 8.2km·오미 2.2km 지점, 왼쪽은 토지천으로 이어지는 임도, 단산윗길을 따라 직진하며, 오른쪽 언덕에 마을 표석이 서 있다.

 

솔까금마을 표석

'까끔'은 전라도 사투리로, 마을의 나지막한 산을 이른다고 한다. 

 

주성윤(朱成允) '풀' 시비

1994년에 세워진, 주성윤(朱成允, 1939~1992)의 '풀' 시비가 단산윗길 오른쪽 풀숲에 우두커니 서 있다. 

 

"신기루처럼 어느 백일에/ 별안간 드높이 치솟아오른/ 세월의 망루 그 위서/ 날카로운 고양이 수염 하나/ 번뜩한 순간 어둠은/ 들쥐가 되어 달아나 버렸다"('풀' 전문). 주성윤(朱成允) 약력 : 1939년 11월 13일 일본 오사카 출생. 호는 草洞.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현대문학>에 '내부'(1962), '눈길 위에서'(1963), '황혼녘'(1964)이 천료되어 등단. '신년대', '한국시', '상황시' 동인으로 활약. 시집 <생의 악단>(3인 시집, 1958), <조선의 빛>(1965), <독설>(대표시집, 1979), <먼산에 진달래>(1981) 

 

걸어온 길

단산윗길을 따라 구산리 군몽골 솔까끔마을을 거쳐 단산윗길 62-55 출입문 앞을 지나 주성윤 시비 앞으로 왔다.

 

조릿대 터널

단산윗길을 따라 조릿대 터널을 지난다.

 

수로

단산윗길을 따라 수로가 길게 조성되어 있다.

 

14:19 문수제(文殊堤)

단산윗길에서 문수골 입구에 건립된 문수제를 살폈다. 지리산둘레길은 문수제 옆 단산윗길을 따라 내려간다.


지리산둘레길은 임도를 따라 새로 조성한 솔까끔마을을 지나면서, 노고단에서 흘러 내려온 문수골 맑은 물이 넓은 호수를 이룬 문수제를 만나게 된다. 문수골의 이름은 문수암 혹은 문수보살과 연관되어 있는데, 문수보살은 불교에서 복덕(福德)과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현재, 문수암은 노고단 아래 문수대로 유추하고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문수골은 1948년 10월 여순항쟁의 14연대 반란군들이 섬진강을 건너 지리산으로 들어와 주둔한 곳이다. 이때부터 1955년 5월까지 7여년 동안 총 맞아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고, 굶어 죽어야 하는 혹독한 운명의 지리산 빨치산의 역사적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 지리산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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