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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지리산둘레길 2구간 비전마을-인월안내센터 : 달오름마을의 달맞이, 내가 걸은 그 길이 아름다워라

작성자대모산|작성시간25.12.26|조회수150 목록 댓글 0

지리산둘레길 2구간 제2부
비전마을-군화동-흥부골자연휴양림-

달오름마을-영월정-인월안내센터
20251202


1.달오름마을의 달맞이, 내가 걸은 그 길이 아름다워라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서 람천 둑방의 동편제길을 따라 군화마을로 향한다. 정면에는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이 왜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들을 물리치고 황산대첩을 이룬 황산(荒山)이 솟아 있고, 그 산자락에 군화마을이 자리한다. 군화마을? 화수리 군화동은 1961년 7월 남원 지역 대홍수 때 군인들이 이재민들을 위해 주택 13가구를 건립하여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그래서 ‘군인들이 만든 화수마을’이라는 뜻에서 '군화동(軍花洞)'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의 부대장을 칭송하는 '오덕준장군공적기념비(吳德俊將軍功績記念碑)'가 군화마을 입구 느티나무 쉼터정자 앞에 세워져 있다.

 

동편제길은 군화동 버스정류소 앞에서 끝나고 군화동길로 이어진다. 그런데 지난해 이 길이 명예도로 '송흥록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명예도로명은 실제 주소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지역사회와 관련된 인물의 사회 공헌도와 공익성, 상징성 등을 고려해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정할 수 있다고 하며, '송흥록길'은 전촌마을, 비전마을, 국악의 성지, 군화마을로 연결되는 약 2.2㎞에 이른다. '송흥록길'은, 동편제 소리를 창시하고 가왕(歌王)의 성취를 이루기까지 소리꾼으로서 끈기 있는 삶을 산 송흥록의 예술적 삶을 생각하며 각자의 삶을 성찰하며 걷는 의미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전마을에서 군화마을로 이어지는 두 갈래의 길, 동편제길과 송흥록길은 그 각각으로 빛난다. 이번에 동편제길을 걸었으니 어느 날, 군화마을에서 국악의 성지를 거쳐 황산(荒山)으로 올라가 정봉(鼎峰)으로 내려오는 산행을 맛보고 싶다.

 

지리산둘레길에서 잠시 벗어나 군화마을로 들어가서 군화동경로당 옥상에 올라가 서쪽을 살폈다. 고남산에서 여원재를 거쳐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동쪽에 운봉의 주산인 성산(城山, 잿뫼산)이 운봉고원 분지 중앙에 아담하게 솟아 있다. 그 동북쪽으로는 방금 살피고 온 황산대첩비지가 자리한 화수산이 나즈막하게 엎드려 있고, 그 동쪽 자락에 가왕 송흥록의 생가가 자리한 비전마을에서 힘찬 동편제 소리가 솟아오르고 애절한 진양조 가락 귀곡성(鬼哭聲)을 울려온다. 그 맞은편 남쪽에는 지리산서북능선의 바래봉에서 가지친 산줄기 자락 잔등평전에 소석마을이 자리하고, 이웃한 화신마을이 서쪽에, 그 북쪽 평지에 전촌마을이 자리하여, 동쪽의 황산 자락에 자리한 군화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군화동경로당 옥상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람천 십승지길과 운봉읍 화수리 지역의 마을을 살펴본 뒤 경로당 안으로 들어가 일을 보았다. 일회용 커피를 권하신다. 송구스럽다. 어르신들의 선한 얼굴과 고운 마음이 지금도 떠오른다. 

 

지리산둘레길로 되돌아와 람천 둑방의 군화동길을 따라 국도 제24호선 황산로의 화수교 동단으로 나갔다. 화수교는 람천 위를 남북으로 가르며 동쪽의 인월면 서무리와 서쪽의 운봉읍 화수리를 이어주는 다리로서 운봉읍과 일월면의 경계를 이룬다. 람천은 운봉읍에서 인월면으로 넘어가 남쪽의 인월리와 북쪽의 서무리를 가르며 흘러 남쪽 산내면 지역으로 흘러간다. 

 

지리산둘레길은 국도 제24호선 황산로를 따라 동쪽의 인월면 서무리와 인월리로 이어가지 않고 화수교를 건너 서쪽 운봉읍 화수리 지역의 지리산힐링치유센터 입구로 이어간다. 지리산힐링치유센터는 폐업하였는지 고요하며 그 위쪽의 GNKC리조트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역의 쇠락한 모습에 길손의 마음이 쓸쓸하다. 초췌한 건물들을 지나 옥계저수지로 올라간다. 이곳에도 화수리 옥계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옥계저수지가 조성되었다. 옥계저수지는 튼튼하고 높은 제방에 막혀 있고, 수로는 서쪽 끝에 설치되어 있어 옥계호 물을 람천으로 흘려 보낸다. 옥계저수지 제방 아래를 통과하여 숲을 돌아 옥계저수지 제방 출입문으로 올라갔다. 제방으로 나가 옥계골짜기의 물을 모은 옥계호와 옥계동을 살피고 싶지만 출입문이 잠겨 있어 제방으로 나가지 못하고 쇠창살문으로 옥계호를 살짝 바라만 보았다.

 

옥계저수지 제방에서 임도를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산양삼 지리산동자삼'과 옥계호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나가면 옥계호를 감상할 수 있겠지만, 임도를 따라 직진하여 운봉읍 화수리와 작별하고 인월면 인월리로 넘어가 구인월길을 따라간다. 인월면은 남원시 동면에서 1998년 5월 1일 인월면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고 한다. "1380년(고려 우왕 6)에 삼도도순찰사 이성계 장군은 왜장 아지발도를 토벌하기 위해 황산에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었다. 치열한 전투에서 승기를 잡아가던 중 해가 서산에 기울면서 왜적의 행동을 탐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때 이성계 장군은 하늘을 우러러 달뜨기를 기원하였다. 이윽고 동쪽 하늘에서 밝은 달이 떠올라 적의 움직임을 한눈에 감지할 수 있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이두란과 협공하여 두목 아지발도의 목을 쏘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 황산대첩에서 달을 끌어 승전하였다는 유래가 있어 인월(引月)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문헌상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역원(驛院)이 설치되어 남원부(南原府) 운봉현(雲峰縣) 인월역(引月驛)이라 하였다고 한다.

 

인월면 인월리 구인월길은 첩첩산중의 느낌을 주며 숲속 길은 이리 꼬불 저리 꼬불 이어진다. 길에서는 북쪽으로 풍경이 열리는 몇 곳이 있어, 황산 능선과 인월면 면소재지 서무리와 취암리 지역을 살피는 즐거움이 있다. 홍수 피해 복구지역과 물웅덩이를 지나 구인월길의 마지막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흥부골자연휴양림이 내려다보인다. 흥부골자연휴양림은 지리산서북능선 끝봉우리 해발 1,150m 덕두산 자락에 4년에 걸쳐 조성하여 2002년 7월 4일 개장하였으며, 숙박시설은 전통한옥 너와집으로 지었고, 남부 지역 최대 잣나무숲(약55년생)이 있다고 한다. 

 

임도의 구인월길은 흥부골자연휴양림에서부터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이어진다. 지리산둘레길은 흥부골자연휴양림 입구 바로 아래서 오른쪽 골짜기 덕두봉길로 들어가 숲길을 돌아나와 구인월길을 가로질러 다시 숲길 덕두봉길로 이어간다. 지리산둘레길 방향 표시 날개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여 첫 번째 숲길 덕두봉길을 따르지 못하고 구인월길을 따라가다가 구인월길의 덕두교를 건너서 헤어졌던 덕두봉길과 재회한다. 덕두봉길은 인월리 달오름마을까지 이어지며 두 번째 숲길에서는 북쪽으로 황산 능선과 인월면 서무리 지역, 동쪽으로 인월면 인월리 달오름마을, 인월면 상우리 지역의 지리산인월산업단지 CJ제일제당 남원공장, 인월면 중군리 지역의 지리산구룡관광호텔, 수청봉과 서룡산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구인월길 숲길을 내려가 인월리 달오름마을 달오름길을 따라 민박집, 카페, 음식점 골목을 지난다. 달오름길 골목의 벽에는 여러 형상의 벽화들이 조성되어 있다.

 

인월리 달오름마을은 원래 마을 이름이 월평(月坪) 마을이었다고 한다. 마을 뒤 주산(主山)이 반달형이고, 마을 앞에는 넓은 관당들녘이 펼쳐져 있어 월평(月坪)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2003년 월평마을이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면서 달과 지리산의 청정한 기가 함께 올라가는 곳이라는 뜻의 달오름마을로 불렸으며, 2010년 7월 15일 월평마을을 달오름마을로 마을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구인월길을 따라오면서 인월리 마을 이름이 궁금하였다. 구인월길이 있다면 신인월이 있겠지? "황산대첩에서 달을 끌어 앞당겨 뜨게 했다는 유래가 전하여져 마을 이름을 끌 인(引)자와 달 월(月)자를 써서 ‘인월(引月)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1956년 구인월, 신인월, 인월의 세 구역으로 분리되었다. 구인월(舊引月)은 인월역(引月驛)이 위치하여 ‘역(驛)말’로 불리다가 구인월마을로, ‘신인월(新引月)'은 인월리에서 새로이 날로 발전되어가는 새로운 마을이라고 하여 ‘신인월(新引月)로 불리게 되었다." (일원면행정복지센터) 그렇다면 구인월, 신인월, 인월(引月)마을의 위치는 어디일까? 구인월은 달오름마을 남쪽 영원사가 있는 곳, 신인월은 람천 북쪽 인월파출소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지리산둘레길 2구간 종점인 람천교 남단에서 람천 남쪽 둑방에 자리한 달을 맞이하는 영월정으로 나가보았다. 동쪽 서룡산 너머에서 달이 떠오르면 달빛이 인월리 관당들녘에 비치고 달오름마을은 달빛처럼 빛날 것이다. 달을 끌어 올려 달빛 화살로 아지발도를 쏘아 죽이고 황산대첩을 이끌었다는 이성계 장군의 전설이 황산과 정봉에서 람천으로 흘러내려 영월대를 지나 관당들녘을 동쪽으로 돌아 남쪽으로 내려간다. 황산정에서 '지리산둘레길' 2구간 운봉-인월 탐방의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걷지 않은 모든 길은 관념이다. 걸은 길만이 내 삶의 체험으로 빛나며 삶을 성찰하게 한다. 길 밖으로 나가 결국은 내 자신으로 돌아오는 성찰의 길이 길의 진정한 의미이다. 걸은 그 길이 아름답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들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 신경림(申庚林, 1936~2024)의 '길' 전문 

 


2.탐방 과정

탐방 거리 : 15.5km
탐방 소요 시간 : 4시간 46분

12:32 동편제길

황산교 북단에서부터 동편제길을 따라 앞의 양촌양수장을 지나 황산 자락의 화수리 군화마을로 이어간다.

황산(荒山)이란 이름은 고려 후기 이성계가 왜장 아지발도를 활로 쏘아 죽이고, 왜구를 크게 물리쳐 황산대첩의 승리를 거둔 데서 비롯되었다. 황산과 화수산을 동일한 산으로 아는 경우가 있으나, 두 산은 별개의 산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황산과 군화동

동편제길을 따라 황산 자락의 운봉읍 화수리 군화동 마을로 이어간다. "1961년 대홍수 때 소멸된 화수리 이재민들의 가옥 13채를 군인들이  건립하였는데, 이주 후 '군인들이 지은 화수리'란 뜻으로 마을 이름을 군화동(軍花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운봉읍행정복지센터) 

 

군화동 버스정류소

왼쪽 람천 둑방길은 '동편제길', 오른쪽 군화동 버스정류소가 있는 도로는 명예도로 '송흥록길'이다.

 

2024.11.5. (남원=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전북 남원시는 판소리 동편제 창시자인 송흥록 명창의 생가 일대 도로를 명예도로 '송흥록길'로 지정했다고 5일 밝혔다. 송흥록길은 운봉읍 전촌마을, 비전마을, 국악의 성지, 군화동마을을 잇는 2.2㎞ 구간이다. 시는 송흥록이 판소리계의 최고 호칭인 가왕(歌王)으로 불릴 만큼 국악계에 큰 영향을 미친 점을 고려해 송흥록길을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송흥록은 1800년 남원 운봉에서 태어나 판소리 다섯마당을 집대성하고 계면조, 진양조장단을 완성해 가왕 칭호를 받았다. 김민주 민원과장은 "남원을 국악의 성지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데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았다"면서 "국악인들에게도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doin100@yna.co.kr  

 

12:38 황산과 군화(軍花)마을

황산 서쪽 자락에 운봉읍 화수리 군화마을이 자리하며, '군화마을 싱싱생생 건강교실' 알림막 뒤에 군화동 경로당이 있다. 군화동 경로당 옥상으로 올라가 풍경을 조망하고 경로당 안으로 들어가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보았다.

 

12:47 황산정 입구

군화동 경로당 앞에서 군화동길을 따라 국궁수련장 황산정 입구를 지나 느티나무 쉼터정자 앞으로 나간다.

 

돌아본 군화동마을

황산정 입구에서 군화동마을과 걸어온 군화동길, 오른쪽 황산정 궁도장 오르는 길을 뒤돌아본다.

 

느티나무 쉼터정자 앞에 오덕준장군공적기념비(吳德俊將軍功績記念碑)가 서 있는데, 비문을 읽기가 힘들다. 오덕준(吳德俊)은 1921년 부산에서 태어나, 일본 오사카(大阪) 간사이대학(關西大學)을 수료하였고, 제3 군단장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1961년 7월 대홍수 때 오덕준은 남원 수해지구 긴급 대책본부장으로 파견되었고, 이때 군인들이 이재민들을 위해 주택 13가구를 건립하여 형성된 마을이 군화동(軍花洞)이다. 이를 기념하여 군화마을 입구 느티나무 쉼터정자 앞에 이 공적비를 세운 것 같다. 

 

걸어온 군화동길

군화동 버스정류소에서 군화마을로 들어가 군화동경로당, 황산정 입구와 느티나무 쉼터정자 앞을 거쳐 군화동길을 따라왔다.

 

군화동길

람천이 황산 남쪽을 돌아 동쪽 인월 방향으로 흘러가고, 람천 북쪽 둑방 군화동길 보도를 따라간다.

 

황산정 궁도장

군화동길을 따라가며 황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황산정 궁도장을 확인한다.

 

람천과 화수교

국도 제24호선 황산로의 화수교가 람천 위를 가로지른다. 화수교는 2004년 8월~2007년 4월에 걸쳐 완공된 100m 길이의 다리이다. 화수교를 경계로 서쪽은 운봉읍 화수리, 동쪽은 인월면 서무리 지역이다.

 

원명당종범대선사부도탑

군화동 버스정류소로 나가는 군화동길 북쪽에 '원명당종범대선사부도탑(圓明堂終範大禪師浮屠塔)'과 그 오른쪽에 '남무대각세존석가모니불비(南無大覺世尊釋迦牟尼佛碑)'가 서 있다.

 

12:55 군화동 버스정류소

군화동길이 국도 제24호선 황산로와 만나는 곳에 군화동 버스정류소가 있다.

 

화수교 동단

황산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화수교 동단의 보도로 넘어왔다. 건너편은 인월면 서무리 지역이다.

 

화수교 보도

국도 제24호선 황산로의 화수교 보도를 따라 서쪽 운봉읍 화수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화수교 보도 서단 출입구

화수교 보도 서단 출입구에 지리산힐링치유센터 대형 표지판이 서 있으며, 화수교 서쪽은 운봉읍 화수리 지역이다.

 

화수교 보도 서단 출입구

화수교 보도 서단 출입구에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서 있고,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힐링치유센터 방향으로 이어진다.

 

황산과 국도 제24호선 황산로

황산 능선이 동서로 길게 이어지며, 그 남쪽 아래에 람천이 동쪽으로 흘러가고 국도 제24호선 황산로가 화수교를 건넌다.

 

지리산힐링치유센터

운봉읍 화수리 지리산힐링치유센터 앞에서 오른쪽 옥계저수지 방향으로 올라간다.

 

걸어온 길

GNKC리조트 위쪽에서 지리산힐링치유센터 앞을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맨 왼쪽 뒤에 황산정 궁도장이 보인다.

 

13:01 동지양봉장 갈림길

왼쪽은 둥지양봉장 가는 길이며 입구에 옥계호(玉溪湖) 표석이 서 있다. 오른쪽 길로 올라가며 위쪽에 옥계저수지 제방이 보인다.

 

옥계호(玉溪湖) 표석

옥계저수지(玉溪貯水池) 제방 아래 둥지양봉장 입구에 옥계호(玉溪湖) 표석이 서 있다. 옥계저수지는 1991년 11월~1997년 12월에 걸쳐 완공되었고 옥계저수지가 준공됨으로써 화수리 옥계동에 옥계호(玉溪湖)가 조성되었다.

 

둥지양봉장

옥계호(玉溪湖) 표석 동쪽의 옥계호에서 흘러내리는 수로 건너편에 자리한 둥지양봉장의 소나무 한 그루가 멋지다.

 

전북삼천리길 이정목

옥계저수지 제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달오름마을 2.8km 지점을 알리는 전북삼천리길 이정목이 서 있다.

 

수로의 다리

옥계저수지에서 흘러내리는 수로의 다리를 건너 옥계저수지 제방 아랫길을 따라간다.

 

황산 능선

옥계저수지 제방 아랫길에서 황산 능선을 바라본다. 바로 아래 둥지양봉장과 소나무, 그 뒤의 GNKC리조트를 확인한다.

 

옥계저수지 제방 아랫길

옥계저수지 제방 아랫길을 따라가다 숲길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옥계저수지 제방 출입구로 올라간다.

 

돌아본 고남산

중앙 뒤에 백두대간 고남산이 보이고 바로 앞 GNKC리조트와 그 뒤 황산정 국궁장이 보인다.

 

돌아본 옥계저수지 제방

옥계저수지 제방 아랫길을 따라와 숲길로 들어가며 옥계저수지 제방을 뒤돌아보았다.

 

옥계저수지 제방 출입구 가는 길

숲길을 오른쪽으로 돌아 직진하면 옥계저수지 제방 출입구가 나온다.

 

13:10 옥계저수지(玉溪貯水池) 제방

옥계저수지(玉溪貯水池) 제방 출입문은 잠겨 있다. 제방으로 나가보아야 하는데, 출입문 앞에서 옥계호를 바라만 보았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에 있는 옥계저수지는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한 농업용 저수지로 1997년 1월 1일 준공되었다. 사업 시행은 남원농지개량조합에서 맡았으며, 조사 측량 설계는 농업기반공사에서 맡았고 공사 감독은 농어촌진흥공사에서 맡았다. 2003년 옥계저수지 바닥에 있는 모래와 암석을 파내는 준설 작업을 시행하였다. 옥계저수지는 24번 도로에 인접하여 있으며, 저수지 인근에는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를 비롯하여 피바위, 용소바위 등이 있다. 수계는 낙동강이며 유로 연장 2.9㎞, 제체 형식은 Zone형이다. 제당 연장 261m, 제당 체적 14,802㎥, 제당 높이 41.8m, 제정 폭 7m 규모이다. 여수토(餘水吐) 형식은 측수로이며 언체 높이 1m, 언체 길이는 50m이다. 관리는 한국농어촌공사 남원지사에서 맡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옥계저수지 제방 출입문을 지나 오른쪽에 옥계저수지 철망울타리가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간다.

 

산양삼 지리산동자삼 갈림길

운봉읍 화수리에서 인월면 인월리로 넘어가 왼쪽 구인월길을 따라간다. 오른쪽은 '산양삼 지리산동자삼'과 옥계호 가는 길이다.  

 

남원시 인월면 지역

인월면 인월리 구인월길 임도에서 북쪽을 바라본다. 바로 아래 황산~정봉 능선 자락에 국도 제24호선 황산로가 동서로 이어지고 람천이 흐른다. 그 북쪽 남원시 인월면 서무리 지역과 그 뒤쪽 취암리 지역을 어림한다.

 

13:15 쉼터정자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숲속의 임도 구인월길을 따라 쉼터정자를 지나간다.

 

13:19 전북삼천리길 이정목

구인월길을 따라 산돌쌓기 등 피해복구 공사 완료 안내판과 달오름마을 1.7km 지점을 알리는 전북삼천리길 이정목을 지나간다.

 

13:26 물웅덩이

토사 흘러내림을 방지하는 산돌쌓기 구간과 무덤 1기가 있는 곳을 지나 꼬불꼬불 돌아가면 물이 고인 웅덩이가 나온다.

 

인월면 서무리(西茂里)

구인월길에서 인월면 면소재지 서무리 지역을 내려본다. 오른쪽은 뱀등산, 왼쪽 뒤는 인월면 취암리(就岩里) 지역이다.

 

고려 말 왜구가 인월(引月)에 본거지를 두고 약탈, 살인, 방화 등 무도한 만행을 저지르자 조정에서는 이성계(李成桂) 장군을 급파하였다. 이성계는 황산(黃山)에서 왜구의 두목 아지발도를 쏘아 죽이고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왜구를 공격할 때 인월 서쪽에 군사를 숨겨둘 만한 요지가 있어 그곳에 군사를 매복시켰다고 하는데 인월의 서쪽에 있었으므로 마을 이름을 서무(西茂)라 부르게 되었다. 1350년(충정왕 2) 해주오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한 후, 1352년(공민왕 원년) 동복오씨(同福吳氏)와 함양박씨가 옮겨왔으며 1399년(정종 원년) 동래정씨가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번성해졌다. 본래 운봉군 동면(東面) 서무리 지역이었는데, 1995년 남원시·남원군 통합으로 남원시 동면에 속하였다가 1998년 5월 1일 동면이 인월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 뒤로는 험준한 황산이 펼쳐져 있으며 아래쪽은 평전들로 경작지가 많고 마을 앞쪽은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광주·대구 고속도로에서 지리산 인터체인지를 지나 지리산 뱀사골로 가는 중간에 인월리로 오는 길목에 면사무소가 위치한 마을이다. 서무리 인근에는 이성계 장군이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할 때 군사들의 밥을 짓기 위하여 솥을 걸었다는 정산(鼎山)이 위치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마지막 굽잇길

운봉읍 화수리 옥계저수지 제방 아랫길에서부터 구인월길 임도를 따라 꼬불꼬불 굽이돌아 마지막 고개를 넘는다.

 

흥부골자연휴양림

마지막 고개의 굽잇길을 돌아가면 아래에 흥부골자연휴양림이 보이며 뒤쪽에 지리산서북능선 덕두산 능선이 이어진다.

 

흥부골자연휴양림은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덕두봉[1,150m] 자락에 있으며 지리산 국립공원과 연계된다. 수령 55년생 내외의 잣나무가 집단 군락을 형성하고 있어 삼림욕의 최적 경관을 갖고 있다. 각종 시설을 토속적인 멋을 느끼도록 현대화하고, 자연생태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흥부전>과 부합된 테마 시설을 갖추었다. 숙박시설을 한옥 너와집으로 하여 향토 민속놀이 마당으로 조성하였다. 바래봉 철쭉 군락지와 연계되는 등산로를 배치하여 자연 휴식 공간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주변에 실상사, 흥부마을, 뱀사골 등 명승 유적지가 많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13:31 흥부골자연휴양림 입구

흥부골자연휴양림 입구에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碑, 지리산둘레길 이정목과 안내도 등이 설치되어 있다.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수필가·문학평론가 김한호(1952~)의 수필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이 적힌 빗돌이 휴양림 입구에 세워져 있다.

 
아름다운 삶이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들에 핀 풀꽃처럼,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초록빛 들녘의 아름다운 풍경을 좋아하고, 숲 속의 싱그러운 향기를 그리워한다. 또한 자연에서 들리는 새소리, 풀벌레소리, 시냇물소리는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아름다운 소리들이다. 

 

흥부골자연휴양림 안내도

흥부골자연휴양림 안내도와 설명안내판 등이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碑 옆에 세워져 있다.

 

위치 : 전북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산53-1번지외 4필지/ 자연휴양림 지정일 : 1996. 08. 20./ 자연휴양림 지정면적 : 100ha/ 조성기간 : 1998~2002년(2002.07.04.개장) 흥부골자연휴양림은 지리산태극종주구간 시작점으로 주봉인 덕두봉(해발 1,150m) 자락에 위치하고, 남부지역 최대 잣나무숲(약55년생)이 있다. 각종 시설을 토속적이면서도 현대적으로 조성하여 이용 편의를 도모하고 자연생태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입지규모를 최소화하였다. 숙박시설(숲속의 집)을 전통한옥 너와집으로 조성하였고, 흥부전과 부합된 테마시설 및 남원 향토 민속놀이 마당을 함께 조성하였다. 바래봉 철쭉군락지와 연계되는 등산로를 구비하고 있으며 여러 관광지들이 휴양림 인근에 있다.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친 것을 기리는 황산대첩비, 왜구의 피로 냇물이 피바다를 이루었다는 전설이 깃들인 피바위, 동편제 창시자 가왕 송흥록 생가와 국악의 성지, 다양한 허브식물과 지리산 야생화 압화 전시실 등 볼거리가 많은 남원허브밸리, 백두대간생태교육장·전시관, 흥부전의 발상지 및 발복지가 6km 이내에 있고, 광한루원, 혼불문학관 등 시내권 관광지가 25km 이내의 권역에 있다. 

 

흥부골자연휴양림

오른쪽에 흥부골자연휴양림 표석, 왼쪽에 남원시 관광안내도, 건너편에 카페 놀부와 자연휴양림관리사무소가 있다.

 

남원시 관광안내도

남원시 관광안내도의 오른쪽에 소개된 주요관광지를 옮겨온다.


●광한루원 : 명승 제33호. 하늘나라 월궁을 광한루라 하였고, 그 아래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를 놓았으며,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을 연못 가운데 조성하여 전체적인 구성이 천체우주를 상징한다. 이외에도 완월정, 춘향사당, 춘향관, 월매집, 그네, 전통놀이 체험장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곳이다. ●춘향테마파크 : 설레는 만남, 아름다운 사랑, 고난·시련 등의 주제가 있는 곳이다. 향토박물관, 맹약의 단, 옥사정, 동헌 등이 있다. 전통문화체험관에서 도자기 공예체험도 즐길 수 있으며,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과 2005년의 KBS 드라마 '쾌걸춘향'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만인의총 : 사적 제272호.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년)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관·군 1만여 의사들의 호국의 일이 서려 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국악의 성지 : 판소리 동편제의 발상지로, 국악선인들의 맥을 이어가는 국악의 성지는 지리산 운봉에 위지하고 있다. 국악 전시체험관, 독공실, 야외공연장, 국악인묘역, 사당 등이 있다. ●실상사 : 사적 제309호. 신라(828년) 구산선문 중 최초의 선종 사찰이다. 우리나라 단일 사찰 중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교룡산성 : 전북기념물 제9호. 백제시대 신라와 대적하기 위해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며 현존하는 산성 중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황산대첩비지 : 사적 제104호. 고려 말(1380) 이성계 장군이 삼남을 휩쓸고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을 크게 소탕하여 섬멸하였던 곳으로 1577(선조 10년)에 세워졌다. ●혼불문학관 : 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이곳은, 소설을 형상화한 디오라마와 작가 故최명희의 손때 묻은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고, 마을엔 종갓집, 청호저수지, 노적봉 등이 있다. 

 

돌아본 흥부골자연휴양림 입구

관리사무소 앞에서 흥부골자연휴양림 입구를 뒤돌아보았다. 휴양림 표석 왼쪽은 주차장이며, 왼쪽 뒤 산봉 뒤쪽에 덕두산이 있다.

 

덕두봉길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 이정목 옆 골짜기 덕두봉길로 이어지는데 방향 표시를 보지 않고 곧바로 구인월길을 따라갔다.

 

13:37 갈림길

왼쪽은 인월서길, 오른쪽은 구인월길이며, 오른쪽 구인월길을 따라간다.

 

덕두교

인월서길과 구인월길 갈림길에서 오른쪽 구인월길을 따라 2003년 9월에 준공된 덕두교를 건넌다.

 

덕두봉길

구인월길의 덕두교를 건너와 헤어졌던 덕두봉길과 재회한다. 덕두봉길 출입구에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서 있다.

 

갈림길

달오름사과농장 맞은편 쉼터정자 앞에서 지리산둘레길은 구인월길과 헤어져 왼쪽 덕두봉길로 이어간다. 중앙의 전신주 뒤에 수청봉, 그 뒤에 서룡산이 가늠된다.

 

13:41 지리산둘레길 이정목

쉼터정자 앞에 덕두봉길41 표지판과 운봉 8.2km, 인월 1.7km 표지판이 기둥에 붙은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서 있다.

 

돌아본 지리산둘레길

지리산둘레길은 정면 뒤 낮은 숲길을 거쳐 오른쪽 뒤 무덤 앞 구인월길로 나와 왼쪽 쉼터정자로 이어진다.

 

나무다리

쉼터정자를 지나 나무다리를 건너 덕두봉길 숲으로 이어간다.

 

덕두봉길

숲속으로 이어지는 덕두봉길을 따라간다. 맨 왼쪽 능선은 황산(荒山)~정봉(鼎峰) 능선이고 맨 뒤쪽의 산봉 이름이 무엇일까?

 

황산(荒山) 능선

운봉읍 인월리 덕두봉길에서 서북쪽의 황산(荒山)에서 정봉(鼎峰)으로 이어지는 황산 능선을 바라본다.

 

13:45 국가지점번호 표지목

덕두봉길을 따라 국가지점번호 표지목과 방문자센터 500m 표지판을 지나간다.

 

수청봉과 서룡산

덕두봉길 숲에서 동쪽으로 지리산인월산업단지 CJ제일제당 남원공장, 그 오른쪽 수청봉, 그 왼쪽 뒤 서룡산과 투구봉을 바라보았다. 

 

13:50 백운산과 영취산?

인월면 인월리 덕두봉길 숲의 물탱크가 있는 곳에서 북쪽을 살폈다. 물탱크 아래 람천 북쪽은 인월면 서무리, 오른쪽은 인월명 상우리 뱀등산, 중앙 맨 뒤는 백두대간 백운산과 영취산이 아닐까 어림한다.

 

인월리 달오름마을

인월면 인월리 달오름마을이 자리하고 그 앞쪽에 관당들녘이 펼쳐진다. 왼쪽 뒤 인월면 상우리 지역의 지리산인월산업단지 CJ제일제당 남원공장, 중앙 정면의 인월면 중군리 지역의 지리산구룡관광호텔, 그 뒤 수청봉, 그 왼쪽 뒤 서룡산과 투구봉을 어림한다.

 

인월리와 상우리

아래에는 인월면 인월리 달오름마을이 자리하고, 마을 앞 관당들녘을 람천이 동쪽에서 남쪽으로 에돌아 흐른다. 람천 건너편은 인월면 상우리 지역으로 맨 오른쪽에 지리산인월산업단지 CJ제일제당 남원공장이 보인다.

 

13:53 달오름마을

예전 월평(月坪)마을이었는데 지금은 개명한 달오름마을로 내려간다. 벽화의 글자는 지리산둘레길 2구간으로 고쳐야 할 듯. 오른쪽 전신주 뒤로 수청봉과 그 왼쪽 뒤 서룡산과 투구봉이 보인다.

 

지리산나물밥

'산을 밥에, 몸에 담다'는 문구가 적힌 지리산나물밥집 앞을 지난다. 맨 왼쪽 뒤 수청봉이 보인다.

 

걸어온 길

뒤쪽 숲길에서 내려와 '가자 하얀집' 민박, '마당너른집' 민박, '다다갤러리' 카페를 지나 '지리산나물밥'집 앞으로 왔다.

 

달오름길

인월면 인월리 달오름마을의 벽화골목 달오름길을 따라간다. 골목 맨 끝 오른쪽에 달오름마을회관이 자리한다.

 

13:55 지리산둘레길 이정목

골목 달오름길을 따라 나오면 달오름길 볼록거울 옆에 종점 700m 거리를 알리는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서 있다.

 

달오름마을회관&월평경로당

지리산둘레길 이정목 맞은편 달오름길 골목 입구에 달오름마을회관&월평경로당이 자리한다.

 

달오름 월평마을회관 건립기념비

달오름마을회관의 태극기 게양대 옆에 달오름 월평마을회관 건립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月坪마을 유래 : 뒤에는 主山이 반달형이요 달이 빨리 뜨고 앞에는 넓은 들이 놓였으니 月坪이라 하였음이라."

 

달오름길

달오름마을회관 앞에서 달오름마을 바깥쪽 달오름길을 따라 달오름마을 느티나무 아래의 쉼터정자를 지나간다.

 

인월중군길

달오름길에서 인월중군길로 나오면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서 있고, 앞쪽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돌아본 인월중군길

버스 오른쪽 달오름길에서 인월중군길로 나와 오른쪽 공중화장실을 지나왔다. 오른쪽 뒤에 덕두산, 왼쪽 뒤에 삼정산이 보인다.

 

영월정(迎月亭)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달오름마을 북쪽 끝 람천 남쪽 언덕 느티나무 아래에 영월정이 자리한다.

 

람천의 구인월교

람천의 구인월교 북쪽은 신인월, 그 남쪽은 구인월 달오름마을이다. 구인월교 남단 왼쪽길은 영월정 가는 길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引月里)는 동쪽으로 풍천이 휘돌아 흐르고 남쪽으로는 남천이 흘러 합류하는 안쪽 모퉁이에 위치한다. 1380년(우왕 6)에 삼도도순찰사 이성계 장군이 이곳 인월에서 왜장 아지발도를 토벌하기 위해 황산에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치열한 전투에서 승기를 잡아가던 중 해가 서산에 기울면서 왜적의 행동을 탐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때 이성계 장군은 하늘을 우러러 달뜨기를 기원하였다. 이윽고 동쪽 하늘에서 밝은 달이 떠올라 적의 움직임을 한눈에 감지할 수 있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이두란과 협공하여 두목 아지발도의 목을 쏘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 황산대첩에서 달을 끌어 승전하였다는 유래가 있어 인월(引月)이라 부르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영월정(迎月亭) 입구

영월정 입구 표석 옆에 달오름마을 표석, 달오름마을유래비, 중추원의관 박중길 송덕불망비가 세워져 있다. 

 

달오름마을의 유래 : 본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인월리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인월과 구인월이 발달하면서 두 마을 사이에 몇 집이 모여 살게 되었고, 조선시대 말(1800년경) 부농인 박씨가 이주하여 살면서 새로운 마을 형태를 이루게 되면서 새동네라고 하였다가 마을의 모양이 반월형이라 월평이라 불렀다는 설과 마을터가 동쪽을 향하고 있어 달이 뜨면 정면으로 달빛을 받는다고 하여 월평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2003년 월평마을이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면서 달과 지리산의 청정한 기가 함께 올라가는 곳이라는 뜻의 달오름마을로 불려오다가 2010년 7월 15일 월평마을을 달오름마을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3:59 구인월교 남단

2002년 완공된 구인월교 남단에서 람천 남안(南岸)에 자리한 영월정(迎月亭)에 다녀온다.

 

영월정(迎月亭)

달을 맞이한다는 뜻의 고려 후기의 정자 영월정(迎月亭)은 사라지고, 현 정자는 1960년 정월에 중건하였다고 한다. 

 

전북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월평마을 람천변 구인월교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영월정(迎月亭)은 팔작지붕으로 겹처마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동향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이 정자를 짓게 된 유래는 1380년(우왕 6)에 당시 3도 도원수 이성계가 황산(荒山)에서 왜구를 섬멸할 때, 어느 날 밤 너무 어두워 적을 탐지하기 어렵자 하늘을 우러러 달뜨기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밝은 달이 떠올라 적을 물리칠 수 있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이 정자를 지었다고 전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영월정(迎月亭) 앞의 비석

영월정 앞에 '영월정 기적비(迎月亭記蹟碑)'와 '정은 박봉민 기적비(靜隱朴翁琫玟紀蹟碑)' 등 3기의 비석이 서 있다.

 

영월대(迎月臺)

영월정 앞 둑방에서 람천을 바라보니 영월대(迎月臺)라고 적힌 바위가 있다. 건너편 위쪽은 인월면 서무리 지역이다.

 

달오름마을(월평月坪)

구인월교 남단 영월정 입구로 나가면서 달오름마을과 맨 뒤 중앙의 덕두산을 바라보았다.

 

마을 터가 동쪽을 향하고 있어 달이 뜨면 정면으로 달빛을 받는다고 하여 ‘달이 뜨면 바로 보이는 언덕’이란 뜻으로 월평(月坪)이라 했다고 한다. 마을 앞이 넓은 평지인 관당들이 있어 인월에서 제일 넓은 들이라 하여 월평이라고 불렀다는 설 등 유래가 분분하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1800년경에 인월 부근에서 제일 부자인 박씨가 인월 남쪽 남천(藍川)을 넘어 현재의 월평마을에 이주하면서 소작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박씨 집 부근에 터를 잡고 살아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운봉군의 동면 구인월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구인월·신인월·신우리·용계리 일부를 병합하여 인월리라 하여 동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폐합함에 따라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에 속하였다. 1998년 5월 1일 동면이 인월면으로 개칭되었다. 인월과 구인월 사이에 관당들이 마을 앞에 있고, 뒤는 언덕이 받쳐주어 앞이 확트인 마을로 인월과의 경계로 남천이 흐르고 있다. 남쪽으로 덕두산의 지맥이 흘러내려와 인월 남천에서 멈춰 낮은 반월형의 언덕을 형성한다. 문화유적으로는 영월정이 마을 북쪽 남천변에 세워져 있어 매년 인월제를 지내고 있다. 북쪽으로 국도 24번 도로가 지나며, 아래로는 이 도로와 연결된 도로가 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영월정(迎月亭) 입구

영월정을 살피고 구인월교 남단의 영월정 입구로 되돌아간다. 뒤쪽 중앙에 수청봉, 중앙 왼쪽에 서룡산과 투구봉이 확인된다.

 

지리산둘레길 제3구간 시작점 표지판

구인월교 남단 동쪽에 지리산둘레길 제3구간 시작점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지리산둘레길 제2구간 운봉-인월 구간을 마치고, 구인월교를 건너 2구간·3구간 시종점 안내판이 있는 지리산둘레길 남원 인월안내센터를 찾아간다.

 

구인월교

인월면 인월리 달오름마을에서 구인월교를 건너 인월리 신인월마을의 원불교운봉교당과 인월원광어린이집 앞으로 람천 북쪽 둑방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오른쪽 뒤에 인월면 상우리 지역의 해발 456.4m 뱀등이 보인다. 

 

람천 상류 방향

구인월교에서 람천 상류 방향을 올려보면, 남쪽 둑방에 영월정, 람천 냇물에 영월대, 중앙 뒤에 552.8m 정봉(鼎峰)이 보인다.

 

람천 하류 방향

구인월교에서 람천 하류 방향을 살피면 아래 중앙에서 풍천(楓川)이 람천(藍川)에 합수하고, 그 뒤쪽 인월면 상우리(上牛里) 지역에 지리산인월산업단지 CJ제일제당 남원공장, 중앙 오른쪽에 수청봉, 중앙 왼쪽에 서룡산과 투구봉이 보인다.

 

인월마을 동쪽에서 람천(藍川)은 풍천(楓川)을 합수하여 남쪽의 산내면을 지나 함양의 임천, 진주 남강, 창녕에서 낙동강으로 흘러 남해로 유입된다. 주농산물은 쌀과 보리이며, 이외에도 고랭지 채소와 잦·목공예품·토종꿀, 그리고 곶감 등이 생산되고 있다. 상업이 발달되어 있어서 여행객을 위한 민박을 비롯한 숙박 시설과 유흥 시설이 많이 있다. 유래가 깊은 인월장에는 아영면·산내면과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의 산중 특산물의 집산지가 형성되어 장날이면 곡식을 비롯하여 생활용품·산나물·약초 등 여러 가지 종류가 거래된다. 인월장은 고려 말부터 개설된 5일장으로 원래 인월교 동쪽 풍천과 팔량치 개천과 합류하는 삼각지에 위치하였으나 1936년 대홍수 때 소멸되었다. 그 뒤 현 인월면 파출소 서편으로 옮겨갔다가 옛 인월초등학교 자리로 이전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돌아본 달오름마을

구인월교에서 인월중군길과 달오름마을을 뒤돌아보았다. 오른쪽 맨 뒤에 덕두산, 왼쪽 맨 뒤에 삼정산이 보인다.

 

영월정과 달오름마을

구인월교에서 서남쪽을 바라보았다. 오른쪽 앞 람천 둑방에 영월정, 그 남쪽에 달오름마을이 있고, 맨 왼쪽 뒤에 덕두산이 보인다.

 

14:04 인월2길

구인월교를 건너 람천 북쪽 둑방의 인월2길을 따라간다. 원불교운봉교당과 인월원광어린이집 앞에 전북삼천리길 이정목이 서 있고, 뒤쪽 중앙에 수청봉, 그 왼쪽 전신주 뒤쪽에 서룡산과 투구봉을 다시 확인한다. 

 

인월마을회관

인월면 인월리 람천 둑방의 인월2길에 인월마을회관이 자리하며, 중앙 뒤쪽에 해발 456.4m 뱀등 봉우리가 보인다.

 

체력단련장과 어머니경로당

인월2길 람천 둑방에 체력단련장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앞에 '인월이야기' 설명안내판, 그 아래쪽에 어머니경로당 건물이 있다. 오른쪽 나뭇가지들 뒤쪽의 수청봉, 어머니경로당 맨 뒤쪽의 서룡산(西龍山)과 투구봉을 확인한다.

 

'인월이야기' 설명안내판

체력단련장 앞에 설치된 '인월이야기' 설명안내판을 읽으면 인월의 상세한 것들을 알 수 있다.

 

◆지리산 달빛고원 : 지리산 자락 삼봉산을 넘어 해가 뜨고, 산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달빛에 물들기 시작하는 인월고원은 예로부터 역참에서 말을 갈아타던 묵객들이 소회를 남기는 원고지였다. 인월 사람들에게 달은 할아버지, 아버지를 이어 온 소망이자 기다림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이면 연을 날리고 마음에 달을 하나씩 품으니 모여 인월의 인심이 되었다. ◆인월의 지정학적 위상 변화 : 인월은 삼한시대 진한에 속하였고, 고려 태조 23년(940)에 역원(驛院)이 설치되며 운봉현 인월역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인월역은 서쪽의 운봉·남원 방면과 동쪽의 함양 방면을 연결하는 교통로였는데 서쪽으로는 남원 응령역, 동쪽으로는 함양 제한역과 연결되었다. 인월역은 고려시대에는 남원도(南原道)의 소속 역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오수도(獒樹道)의 소속 역으로 편제되기도 하였으며 역노 15명, 역비 13명, 역마 4마리가 배속되어 있었다. 갑오개혁으로 인월역은 폐지되었다. 문헌상 기록으로 미루어 인월이란 이름이 지명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940년경부터로 추정된다. ◆흥부전의 시작 : 인월은 우리나라 판소리의 효시이자 고전소설의 백미인 흥부전이 태어난 곳이다. 함양과 경계한 인월 성산마을에서 태어난 흥부가 많은 질곡을 이겨내고 오봉산을 넘어 봉화산 아래 복덕촌을 찾아가는 역전의 인생역정이 흥부대박길(14km)로 남아있다. 


◆인월 속 가야와 삼국시대 : 유곡리 성내마을에는 가야고분군이 있는데 이는 우리 인월이 당시 운봉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기문가야의 영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 인월은 신라와 백제의 접경 지역으로서 아영 성리에서 시작된 성리산성의 동북쪽 토성이 있었던 성내마을이나 합미성(속칭 할미성)의 북쪽에 있었던 성산마을의 지명은 삼국시대의 흔적을 말해준다. ◆마을이 품고 있는 역사의 흔적 ●중군(中軍) : 임진왜란 때 전,중, 후, 선봉대 중 규모가 큰 중군 주둔지 ●서무(西茂) : 고려말 왜적 퇴치를 위한 이성계 부대의 서쪽 매복지, 피바위(람천)  ●동무(東茂) : 고려말 왜적퇴치를 위한 이성계 부대의 동쪽 매복지 ●사창(社倉) : 구휼미를 비축하던 관리청이자 창고이면서 이성계 부대의 군량미 창고 ●유곡(酉谷) : 대장군석이 있음(과거 사찰의 유물로 추정) ●성내(城內) : 신라, 백제의 접경지대로서 신라에 속했음 ●상우(上牛) : 조선시대 군사 주둔지 ●성산(城山) : 팔랑재(513m, 임진왜란시 조경남 장군 등 8명의 장수가 왜적 퇴치) ◆달빛으로 이긴 싸움, 이성계의 황산대첩 : 1380년(고려 우왕 6년) 영남을 거쳐 북진을 하던 왜장 아지발도를 황산(荒山)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성계 장군이 하늘을 우러러 "이 나라 백성을 굽어 살피시어 달을 뜨게 해 주소서." 하고 간구하니 칠흑 같은 그믐밤 하늘에 어디서 솟았는지 보름달이 천지를 밝혀주었다. 이때를 노려 이성계 장군의 화살이 적장의 목을 꿰뚫었다. 이에 기세가 오른 아군이 왜군을 섬멸하니 람천에는 적들이 흘린 피가 흥건하였는데 그 핏자국이 피바위에 남아 있다. 이 승리를 기념하여 황산대첩비가 세워졌는데 이는 우리 역사상 보기 드문 승전이었다. 이성계 장군이 달을 끌어 올렸다 하여 이곳을 인월(引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인월의 걷고 싶은 길 ●흥부대박길 : 흥부놀부의 출생지인 인월 성산마을에서 윗까막재골 옆 산림도로를 넘어가면 흥부가 박을 타서 부자가 된 마을인 봉화산 아래 아영 성리로 연결된다. 흥부의 인생역정을 말해주는 고난길-희망길-고진감래길이 이어지는데 총 연장 14km이다.

●지리산둘레길 :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두른 산길과 마을들을 만날 수 있다. 살아온 날들을 성찰하고 살아갈 날들에 대한 명상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지리산 둘레길은 인월에서 출발한다. ●달 벚꽃길 : 람천 둑방길을 따라 걸으면서 삼정산을 넘어오는 달을 보면 하늘의 세계를 옮겨놓은 듯한 황홀경에 빠진다. 노인요양시설인 경애원 뒤에서부터 선인들이 달맞이를 하며 음풍농월하던 영월정까지 2km 벚꽃길은 비록 거리는 짧지만 달과 함께 하는 감동은 길다. ◆구수한 사람들의 풍물장터 : 예로부터 인월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풍물 장터였다. 지리산에서 나온 약초와 산나물을 비롯하여 경상도에서 올라온 수산물들과 소금들이 거래되는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운봉과 함께 판소리 광대들의 굿마당이 벌어졌는데 5일장의 풍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전통시장 장날 3일, 8일) 지리산으로 가는 관문이자 경상도로 넘어가는 길목인 인월은 할머니가 담근 된장처럼 구수한 고을이다. ◆토속먹거리, 그 별미 : 3일과 8일에 장이 서는 전통시장에는 계절마다 다른 산나물들과 약초들이 팔린다. 투박한 인월 말씨가 오가며 에누리의 정을 주고 받는 전통시장은 조선시대 역참(인월역)이 있었던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지역주민들이 애써 가꾼 농산물이 직거래되며 걸쭉한 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목로주점도 남아 있다. 흑돼지, 염소탕, 자라탕, 순대국밥, 어죽, 순두부, 청국장, 추어탕은 인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라고 하겠다.

 

인월정(引月亭)

람천 북쪽 둑방의 어머니경로당 옆에 인월정(引月亭)이 세워져 있는데 안전에 문제가 있는지 누마루에 들어갈 수 없다.

 

지리산둘레길 남원 인월센터 주차장

인월정(引月亭)을 지나면 지리산둘레길 남원 인월센터 맞은편 주차장공원에 소나무들과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14:09 지리산둘레길 남원 인월센터

주차장공원 맞은편에 지리산둘레길 남원 인월센터가 자리하고, 건물 기둥 앞에 지리산둘레길 상징 조형물 '벅수'가 서 있다.

 

지리산둘레길 상징 조형물

지리산둘레길 상징 조형물 '벅수'와 지리산둘레길 2·3구간 시종점 안내판이 남원 인월센터 현관 앞에 서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2008년에 시범 구간이 열리고, 2012년에 지리산 5개 시군을 잇는 전체 구간이 개통되었다고 한다.

 

지리산둘레길 남원센터 현관

지리산둘레길 남원 인월센터 현관 왼쪽에 지리산둘레길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지리산둘레길 스탬프함

지리산둘레길 남원 인월센터 현관 왼쪽에 설치된 지리산둘레길 스탬프함에서 스탬프를 꺼내 찍었다.

 

지리산길

남원 인월센터 실내로 들어갔다. 벽면에 지리산길 사진에 '지리산 둘레길 8백리' 소개글을 적은 벽보가 붙어 있다.

지리산 둘레 8백리길/ 곧장 오르지 않고 에둘러 가는 길/ 숲속 오솔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마을과 사람을 만나는 길/ 들녘을 따라 삶을 배우고/ 강건너 물결에 일렁이는 바람을 따라/ 자기를 만나고 돌아오는 순례의 길// 국내 첫 장거리 도보트레일, 지리산길

 

그 길은 아름답다

안쪽 벽면에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하늘길 사진과 함께 신경림의 '그 길은 아름답다' 시를 적은 벽보가 붙어 있다.

 

산벚꽃이 하얀 길을 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담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리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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