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트레일 제1부
홍성센터-남산-수리고개-맞고개-소사마을
하우고개-병오의병비-살포쟁이고개-백월산
20260521
1.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동서트레일 10구간을 역방향으로 탐방했다. 정방향으로 탐방하여야 순차적 지리 감각으로 탐방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데, 역방향으로 탐방하면 그 순차적 지리 감각이 뒤집혀 헷갈린다. 그렇지만 도보여행 안내팀에서 역방향 탐방으로 추진하니 따를 수밖에 없다.
동서트레일 10구간은 내포문화숲길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와 동행한다. 내포문화숲길에서는 이 코스를 이렇게 개략한다. "이응노생가기념관~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 9.7km. 대한민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암 이응노 화백의 생가와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는 이응노생가기념관에서 출발하여 홍성의 진산 백월산을 오르게 된다. 394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예로부터 홍성사람들이 신성시했다 하는데 정상에 올라 홍성 시내를 내려다 보면 그 느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백월산을 내려와 마을길을 거쳐 완만한 등산로의 남산을 만나게 되고 멋진 자태의 소나무 아래 홍성센터에 도달하게 된다."(안내판) 동서트레일 10구간 역방향 탐방을 백월산을 경계하여 2부로 정리한다.
제1부(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백월산) : 충남 홍성군 홍성읍 남장리(南長里) 남산산림욕장 나들목에 도착하여 동서트레일 10구간을 역방향으로 탐방한다. 남산산림욕장 나들목에 남산산림욕장 표석과 '남산도시자연공원-재너머 사래 긴 밭 가는 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고, 그 오른쪽에 동서트레일 10·11구간 시종점과 내포역사인물길 2·3코스 시종점이 있다. 시종점에는 이정목과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 맞은편에 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가 자리한다.
오늘은 24절기 중 여덟번째 소만(小滿) 절기, 온 산과 들이 짙푸르다. 소만 무렵 농촌에서는 모내기 준비에 바빠지며, 밭농사 김매기가 이어지고, 보리가 익어간다. 이 시기는 쌀이 떨어지고 보리 수확은 아직 멀어 식량이 바닥난 춘궁기로서 흔히 보릿고개라고 부르는 시기이다. 굶주리는 이 시기는 일손이 딸리는 바쁜 시기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학유(丁學游, 1786~1855)는 농가월령가 4월령에서 소만 시기를 이렇게 노래했다. “농사도 한창이요 누에치기 바쁘구나. 남녀노소 일이 바빠 집에 있을 틈이 없어,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는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이미 여름이 찾아왔다. 여름비가 가랑가랑 내린다. 우산을 받쳐들고 홍성센터 앞에서 출발하여 홍성 출신의 보훈유공자들을 기리는 충령사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남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해발 221.5m 남산은 홍성군 홍성읍 남장리와 옥암리, 구항면 마온리의 경계에 자리한다. 남산의 산줄기는 서쪽 보개산(寶蓋山)과 북쪽 백월산(白月山)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을 이루는데, 보개산 서쪽 구항면 내현리에 약천 남구만의 고향 거북이마을이 있다.
그래서 남산산림욕장 나들목과 남산 오름길에는 '남산도시자연공원-재너머 사래 긴 밭 가는 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여태 아니 일어났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학창 시절 배운 시조 권농가인 동창곡(東窓曲)을 누가 지었을까? 과연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일까? 아니면 이명한(李明漢, 1595∼1645)일까?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藥泉) 남구만은 외가인 충주에서 태어나 고향인 홍성에서 성장하다가 한양으로 올라갔고 용인에서 죽어 그곳에 무덤이 있다. 이 시조를 남구만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어디에서 창작하였을까? 창작지를 두고 유배지인 동해시 망상시 심곡마을과 남해군 남해마을, 말년에 은거했던 용인, 그리고 고향인 홍성 지역이 서로 다투고 있다.
동창곡(東窓曲)의 작자와 창작지 문제가 있지만 홍성에서는 남구만의 고향인 보개산 서쪽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 거북이마을을 내세워 '재너머사래긴밭가는숲길'을 개통하였다. 코스는 '남산산림욕장 나들목-남산-수리고개-맞고개-보개산-거북이마을'이다. 거북이마을은 마을 지형이 거북이의 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구항(龜項)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 고향 충주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고향 홍성 거북이마을에서 성장한 남구만 선생은 소박하고 부지런했다고 한다. 그 성품이 권농가 시조 '동창곡(東窓曲)'에 그대로 드러난다. 여름비가 내리는 소만 절기, 동창곡(東窓曲) 시조를 읊으며 '재너머사래긴밭가는숲길'을 따라간다.
동서트레일 10구간은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와 금북정맥, '재너머사래긴밭가는숲길'과 맞고개까지 동행한다. 맞고개에서 동서트레일 10구간은 동행한 세 탐방로와 헤어져 홀로 홍성읍 옥암리 지역으로 내려간다. 홍성읍 옥암리 지역은 홍성군청이 자리한 홍성읍 오관리와 이웃하고 있는데 홍성군청은 옥암리에 신청사를 완공하여 2027년 옥암리로 이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홍성군은 홍북읍 신경리 지역에 충남도청과 내포신도시, 홍성읍 옥암리에 새 홍성군청이 자리하여 충남의 새 거점도시로 비약하게 된다.
이번 탐방로는 동쪽의 홍성읍 지역과 서쪽의 구항면 지역이 맞붙어 경계를 이루는 경계선을 지나는데, 두 지역의 경계를 잇는 고개가 수리고개, 맞고개, 하우고개, 살포쟁이고개이다. 구항면 마온리와 마주한 맞고개에서 내포로293번길을 따라 홍성읍 옥암리 마을로 내려간다. 옥암리 들녘을 가르는 국도 제29호선 남부순환로도로 공중의 옥암육교를 건너 옥암리 소사마을로 내려간다. 동쪽에는 방금 지나온 남산 능선, 그 자락에 옥암리 마을들이 자리하고 그 앞에 들녘이 펼쳐진다. 그리고 멀리 여름비와 운무에 덮여 흐릿하지만, 홍주읍성과 홍성군청이 자리한 홍성읍 오관리 지역이 가늠된다.
때죽나무 흰꽃, 소리쟁이, 지칭개 분홍꽃들이 길손을 맞이해 주는 내포로293번길을 따라 한우축사, 그윽한 향나무, 호밀밭, 장향원 앞 토방에 전시한 농촌 생활용구들을 살피며 옥암리 소사마을을 지나면 국도 제29호선 내포로의 옥암교가 동서를 가로지른다. 옥암교 아래를 통과하여 농업법인(주) 홍성팜스토리를 지나 홍성읍 월산리로 넘어간다.
구항면 황곡리와 홍성읍 월산리를 잇는 구항길을 따라 구항생태통로 아래를 통과하여 구항면 황곡리로 넘어가면 하우고개이다. 하우고개에는 동서트레일 이정목과 금북정맥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고, 맞은편 백월산 나들목 언덕에 홍주병오의병 기념비가 서 있다. 이곳은 1906년 홍주의병들이 홍주성 공격을 위해 주둔했던 장소로 호서지방 의병들의 첫 주둔지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라고 한다. 정확한 명칭은 홍주병오의병 주둔 유지비(洪州丙午義兵 駐屯 遺址碑)이다.
홍성군 구항면 황곡리 하우고개 병오의병비를 살피고 2.8km 거리의 백월산 정상으로 오른다. 백월산 능선은 홍성읍 월산리 지역과 구항면 황곡리·오봉리 지역의 경계를 이룬다. 산길에서 홍성읍 월산리 지역으로 풍경이 열리는 곳이 있지만 운무에 싸여 있어서 홍성읍 지역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 홍성읍 월산리와 구항면 황곡리를 이어주는 살포쟁이고개를 가로질러 난간이 설치된 위험지대를 통과하면 구항면 오봉리 구항면사무소 2.4km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백월산 방향으로 내려가면 백월산 쉼터와 임도가 나오며, 이곳에서 백월산 정상은 0.3km 거리이다. 운무는 더욱 짙어지고, 백월산 정상 바로 아래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홍성읍 월산리 지역은 오리무중이다. 홍성읍 시가지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백월산 전망대에서 아쉬움 가득 품고 지척의 백월산으로 오른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0.1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28분
충남 홍성군 홍성읍 남장리 남산산림욕장 나들목에 도착하여 동서트레일 10구간 탐방을 역방향으로 출발한다.
남산산림욕장 나들목에 남산산림욕장 표석과 남산도시자연공원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남산산림욕장 나들목의 '남산도시자연공원-재너머 사래 긴 밭 가는 길' 안내도를 살폈다.
남산산림욕장 표석 오른쪽 동서트레일 10·11구간 시종점에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종합안내도와 이정목이 서 있다. 맞은편에 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가 있고, 동서트레일 10구간 역방향은 위쪽의 충령사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남산 정상 방향으로 올라간다.
동서트레일 10·11구간 시종점에서 10구간 역방향은 병오의병비 방향으로 이어가며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와 동행한다.
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 맞은편의 동서트레일 10·11구간 시종점은 내포역사인물길 2·3코스 시종점이기도 하다.
동서트레일 10·11구간 시종점&내포역사인물길 2·3코스 시종점 맞은편에 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가 자리한다.
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 위쪽에 독립운동가 이상만 선생 공적비가 세워져 있고, 그 뒤쪽에 공중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독립운동가 이상만(李象萬, 1884.1.5~1955.1.8)선생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고암리에서 1884년 1월 5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고향인 홍성에서 목회하던 중 1916년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졸업하였고 당진으로 전임하여 목회하던 중 1918년 감리교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1919년 3·1 독립운동이 발생하기 직전에 호서지방을 순회하며 3·1 독립운동 선전 활동을 하였으며, 3·1 독립운동 발생 직후에는 조국 독립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직후 북경에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인 신대한동맹회의 회장이었던 홍성 출신 박정래에게 영입되어 총무로 활동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표 자격으로 중국 각 성을 순방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과 지원을 요청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활동을 계속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기강에 자리하던 193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충청도 지역 의원으로 선임되어 의정활동에 참여한 가운데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이동한 이후 의원으로서 맹활약하였다.
한편으로 그는 1940년 한국 광복군이 창설될 때 총사령부 주계로 임명되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행정부에도 참여하여 1940년 내무부 산하에 생계위원회가 설치될 때에는 생계위원, 1943년 생활부가 설치될 때에는 생활위원, 1944년 생계설계위원회가 설치될 때에는 생계설계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고 1941년에는 회계검사원 검사원, 1942년에는 회계검사원 검사관, 1944년에는 회계검사원 검사원장 및 국무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그는 몸담고 있던 한국독립당에서도 1943년 5월 중앙감찰 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그는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거주지인 토교에 설립된 신한교회 담임목사로도 활동했으며, 1944년 여화한인기독교 연합회도 창립하였다. 1945년 조국 광복이 된 후에도 그는 중국에 남아 주화한교선무단의 화중구 한교선무단장으로 임명되어 우리 교포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안전 귀국 등의 제반 업무를 처리하다가 국공내전으로 대만에 건너가 1948년에는 대만한교협회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49년 귀국하여 김구 선생이 기거하던 경교장에 함께 거주하면서 한국독립당 중앙감찰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말년에는 칩거 생활을 하다가 1955년 1월 8일에 소천하였다. 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 요인묘역에 안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 충령사 출입구 계단 앞에 충령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뒤에 충령문과 충령사가 있다.
충령사는 6·25전쟁과 월남전에서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전투 중 산화하신 전몰군경과 국토방위를 위하여 헌신하신 순직군경 등 호국영령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1978년 홍성군에서 건립하였다. 이곳은 대지 10,456㎡, 본전 48.5㎡, 삼문 13.2㎡ 규모의 목조기와 형태의 건물로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는 이곳에서 기관 단체장, 보훈 가족, 주민 등이 모여 추념식을 거행한다.
오른쪽 바로 앞에 추모비, 그 뒤에 호국보훈문과 충령탑이 세워져 있다. 추모비 비문을 옮긴다.
동방에 솟아오르는 찬란한 이침 햇살에 밝아오는 유서 깊은 이 고장에서 나시고 크시고 조국의 수호신으로 산화하신 영령들이시어! 여기 새로이 산좋고 물맑고 드높은 터진에 옮기 모시오니 광활하고 아름다운 우리 산하를 영령들의 후손이 기름지게 가꾸고 영광되게 살아가는 모습을 한눈에 굽어보시며 길이길이 지켜주시고 고이고이 잠드소서. 1977년 6월 6일 홍성 군수
충령사 왼쪽에 호국보훈문과 충령탑이 서 있다. 충령탑 비문과 받침돌의 건립취지문을 옮긴다.
●충렵탑비 : 나라사랑의 고귀한 희생정신으로 이 한 목숨 불태워 태양보다 뜨겁고 찬란한 영혼으로 승화하신 님이시여! 호국의 길을 선택하신 그대는 진정 우리의 영웅이십니다. ●건립취지문 : 충절의 고장 홍성군은 이곳 충령사에 충령탑을 건립하여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추모하고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계승 발전시켜 나라사랑의 참뜻을 널리 알리고자 함.
동서트레일 10구간 남산산림욕장 대피소 표지판을 지나 오른쪽 남산 정상 방향으로 올라간다.
홍성군 홍성읍 남장리와 구항면 마온리의 경계를 이루는 남산 비탈 능선의 나무계단길을 따라 남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남산능선에서 홍성군 구항면 마온리 지역을 내려보았다. 국도 제29호선 남부순환로가 지난다.
마온리는 백제 때는 결기군(結己郡)에, 신라 때는 결성군(潔城郡)에, 고려때는 결성군(結城郡)에 속했었다. 조선 초엽엔 결성현(結城縣)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결성군(結城郡) 두암면(斗岩面)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요동(堯洞) 온동(溫洞) 마근동(麻根洞)을 병합하여 마근(麻根)과 온동(溫洞)의 이름을 따서 마온리(麻溫里)라 하여 홍성군(洪城郡) 구항면(龜項面)에 편입되었다. - 홍성군청
홍성군 홍성읍 남장리와 구항면 마온리의 경계를 이루는 남산능선의 그윽한 소나무숲으로 들어간다.
남산 정상 300m, 병오의병비 3.7km 지점의 단풍나무숲을 지난다.
오른쪽 위는 남산 정상 120m 방향, 왼쪽은 동서트레일 수리고개 방향이다.
'재너머사래긴밭가는숲길'은 거북이마을에서 태어나신 남구만 선생의 권농가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여태 아니 일어났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남산은 홍성군 홍성읍 남장리와 옥암리, 구항면 마온리의 경계를 이룬다.
남산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에서 남쪽으로 약 3km 지점에 있으며 높이는 해발 221.5m이다. 남산은『1872년 지방지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당시 홍주읍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홍동면 석삼봉의 한 줄기가 구항면 마온리 화현(꽃고개 또는 꽃조개고개)을 지나 홍성읍의 남장리 서쪽과 옥암리 동쪽 사이에서 솟아오른 산이다. 남산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이어져 구항면 황곡리와 내현리로 들어가면 보개산(寶蓋山)이 되고, 남쪽으로 돌아 이어지면 은하면의 지기산이 되며, 북쪽으로 이어지면 백월산(白月山)이 된다. 홍성읍과는 수리고개로 연결되기도 한다. 남산 아래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 동상이 건립되어 있으며, 홍성 출신의 보훈유공자들을 기리기 위한 충령사도 위치해 있다. 또한, 지역주민들에게 건강한 산림·휴양문화를 제공하는 삼림욕장이 위치해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로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 0.6km, 병오의병비 3.5km 지점의 남산 갈림길 이정목에서 병오의병비 방향으로 내려간다.
남산 갈림길에서 홍성군 홍성읍 옥암리와 구항면 마온리 경계를 이루는 풀밭 숲길은 비가 내려서 초록빛이 더욱 싱싱하다.
남산정 0.4km, 수리고개 0.5km 지점의 남산 능선길을 따라 내려간다.
국도 제29호선 남부순환로 마온터널 상단의 남산 능선길에서 북쪽으로 홍성군 홍성읍 옥암리 들녘을 내려본다. 동서트레일은 왼쪽 남부순환로 옥암육교를 건너 옥암리 지역을 지나간다.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옥암리(玉岩里)는 고려 때는 홍주 고을에 속했었다. 백제 때는 금주군(今州郡)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해풍현(海豊縣)에 속했었다. 조선 초엽에 홍주군(洪州郡)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홍주군 주북면(洪州郡 州北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정리(松亭里)·옥동(玉洞) 각 일부와 행정리(杏亭里), 상옥리(上玉里), 하옥리(下玉里), 동리(東里), 소사동(所沙洞), 서암리(西岩里), 옥계리(玉溪里) 및 평리 (坪里)를 병합, 옥계(玉溪)와 서암(西岩)의 이름을 따서 옥암리라 하여 홍양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 4월 1일 읍 승격에 따라 홍성읍 옥암리가 되었다. - 홍성군청
동쪽 홍성읍 옥암리와 서쪽 구항면 마온리를 이어주는 수리고개로 내려간다.
수리고개로 내려가며 서쪽으로 홍성군 구항면 마온리 들녘을 살펴본다.
홍성센터 1.4km, 병오의병비 2.7km 지점의 수리고개 오두막 앞에 이정목과 수리고개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충청남도 홍성군의 홍성읍 옥암리(玉岩里)와 구항면 마온리(麻溫里)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수리고개는 홍성읍의 남쪽에 있는 남산과 서쪽의 일월산을 가로지르는 고개이며, 홍성읍의 옥암리와 남장리에서 구항면 마온리의 수리 너머로 가는 고개라 하여 수리고개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국지명총람』에서는 서낭댕이고개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고개에 서낭당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서낭당고개라고도 부른다. 인근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동상이 있다. 홍성읍을 우회하는 홍성남부순환도로가 이 일대로 개통되면서 꽃조개고개에서부터 수리고개에 이르는 구간에는 마온터널이 생겨났다.
수리고개 바로 위의 넓은 풀밭을 지나 숲속으로 올라간다.
수리고개에서 올라가면 146.5m봉이며 오른쪽으로 금북정맥과 계속 동행한다.
보개산 정상 2.5km 지점의 이정목 기둥 위쪽에 누군가 '146.5m봉 금북정맥 →'이라고 표시해 놓았다.
금북정맥 146.5m봉에서 내려가면 큰 축사가 있으며, 동서트레일은 대형 한우축사 왼쪽으로 이어간다.
한우축사 위 언덕에서 동쪽 홍성읍 옥암리 지역과 중앙 뒤 홍성읍 오관리 홍주군청 방향을 조망하지만 흐릿하다.
축사 왼쪽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때죽나무 꽃들이 하얗게 피어 있고 언덕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홍성센터 1.9km, 병오의병비 2.2km 지점, 쉼터정자 언덕을 내려가면 맞고개 이정목과 내포문화숲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내포문화숲길은 내포불교순례길, 내포천주교순례길, 백제부흥군길, 내포역사인물길, 내포동학길 등 5개 테마로 구성돼 있으며 2021년 국가숲길로 지정돼 충남 대표 숲길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내포문화숲길은 가야산 주변 4개 시군(서산시, 당진시, 홍성군, 예산군)이 내포지역에 남아 있는 많은 불교성지들과 내포 천주교 성지, 내포지역의 동학, 역사인물 및 백제부흥운동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지점들을 옛길과 마을길, 숲길과 들길, 하천길을 따라서 연결한 충청남도 최초, 최대의 장거리 도보트레일로서 약 320km의 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포문화숲길은 내포지역이 지닌 역사·문화·생태적 가치를 바탕으로 지금의 우리네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고, 내포지역에서 살고 있는 또 앞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해 나가기 위한 나눔과 성찰의 순례길입니다. - 안내판
홍성읍 옥암리로 넘어와 맞고개 서쪽 구항면 마온리 방향을 돌아보았다. 오른쪽은 보개산 방향의 금북정맥 등산로이다.
맞고개에서 금북정맥과 작별하고 내포로293번길을 따라 대형 한우축사 옆을 지나간다.
내포로293번길에서 한우축사와, 수리고개를 넘어 맞고개에서 보개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 산줄기를 뒤돌아보았다.
국도 제29호선 남부순환로가 마온터널로 이어지고, 왼쪽 뒤에 남산이 흐릿하다.
내포로293번길을 따라 국도 제29호선 남부순환로 공중에 2008년 완공된 옥암육교를 건넌다.
홍성센터 2.4km, 병오의병비 1.7km 지점, 옥암육교 동단을 통과하여 옥암리 마을로 내려간다.
내포로293번길 풀밭에 지칭개 분홍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내포로293번길을 따라 홍성읍 옥암리 지역의 마을을 지나간다.
내포로293번길을 따라 옥암육교를 건너 옥암리 마을로 내려왔다. 왼쪽에 늘푸른교회가 있다.
홍성읍 옥암리 내포로293번길에서 오른쪽 앞의 늘푸른교회와 그 왼쪽 뒤의 남산을 확인한다.
내포로293번길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이어간다.
홍성센터 2.8km, 병오의병비 1.3km 지점, 뒤쪽 산자락에 마을이 자리하고 동서트레일은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내포로293번길을 따라 홍성읍 옥암리 소새울골 소사마을을 지나간다. 한우 축사들이 여럿 있다.
홍성읍 옥암리 소사마을을 대표하는 오랜 향나무가 한우축사 모퉁이에서 자라고 그 옆 안내판 내용은 지워져 있다.
소새울골 소사(所沙)마을 한우축사 맞은편 빈 터에 호밀을 재배하는데, 호밀밭 앞에 지칭개 분홍꽃이 피어 있다.
호밀밭 앞에서 걸어온 내포로293번길의 한우축사와 그윽한 향나무를 뒤돌아보았다.
내포로293번길은 왼쪽으로 굽이돌아 대규모 비닐하우스 농원을 지나간다.
내포로293번길 42호 민가 앞에 나무절구와 돌절구 등 농촌 여러 생활용구들을 줄지어 세워 놓았다.
내포로293번길 42호 민가를 지나와 뒤돌아보니 '아름다운 소세울 장향원 목향정원 뜰' 표지판이 울타리에 붙어 있다.
내포로293번길을 따라 창녕공업사 앞을 지나 국도 제29호선 내포로의 옥암교 아래로 이어간다.
홍성읍 옥암리 내포로293번길에서 국도 제29호선 내포로의 옥암교 아래를 통과한다.
내포로의 옥암교 아래를 통과하여 홍성읍 옥암1리 표석과 농업법인(주) 홍성팜스토리를 지나 홍성읍 월산리로 넘어간다.
홍성센터 3.3km, 병오의병비 0.8km 지점, 홍성읍 월산리 구항길 출입구의 동서트레일 이정목 앞에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홍성읍 옥암리에서 월산리로 넘어와 동서트레일 이정목 앞에서 구항길을 따라 병오의병비 방향으로 이어간다.
홍성읍 월산리 동서트레일 이정목 앞에서 구항길을 따라 고물상 (주)한국자원과 스카이모텔을 지나간다.
홍성읍 월산리 구항길을 따라 청로노인종합복지센터 앞을 지나 구항생태통로 아래로 이어간다.
재가노인복지시설 방문요양기관 청로노인종합복지센터는 2024년 국민건강보험공단 평가에서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홍성읍 월산리 구항길을 따라 구항생태통로 아래를 통과하여 홍성군 구항면 황곡리로 넘어간다.
홍성군 구항면 황곡리 구항길 하우고개에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오른쪽 백월산 방향으로 이어간다.
하고개는 옛날에 홍주목사(洪州牧使)가 홍주읍내(洪州邑內)를 바라보기 위해 자주 올랐던 고개이며 홍주를 지나 서산으로 가는 행인들이 쉬면서 말과 소에게 풀을 먹이고 사람은 한숨 돌리는 고개라고 하여 하고개 하우고개 황우고개라고 부른다. - 홍성군청
홍성센터 4.1km, 백월산 2.8km 지점의 하우고개 병오의병비 이정목 기둥 왼쪽에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응노생가기념관~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 9.7km. 대한민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암 이응노 화백의 생가와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는 이응노생가기념관에서 출발하여 홍성의 진산 백월산을 오르게 된다. 394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예로부터 홍성사람들이 신성시했다 하는데 정상에 올라 홍성 시내를 내려다 보면 그 느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백월산을 내려와 마을길을 거쳐 완만한 등산로의 남산을 만나게 되고 멋진 자태의 소나무 아래 홍성센터에 도달하게 된다. - 안내판
맞고개에서 헤어진 금북정맥을 하우고개에서 재회하여 동서트레일은 백월산 방향으로 금북정맥과 동행한다.
하우고개의 백월산 방향 언덕에 홍주병오의병 주둔유지비(洪州丙午義兵 駐屯 遺址碑)와 그 앞에 안내판이 서 있다.
이 기념비는 홍주의병들이 홍주성 공격을 앞두고 집결하여 주둔했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1986년 11월 14일 홍성군에서 건립했다. 홍주의병은 1906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다음해에 일어났으며 의병들은 홍산, 서천, 남포, 보령을 거쳐 광천에 이르러 대부대가 되었고 이 본진 부대는 구항 마온리를 지나 신당골을 거쳐 하우고개에 당도하였으며 또 다른 부대는 천북, 결성, 서부에서 궐기하여 서산도로로 우회해서 역시 하우고개에서 본진 부대와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홍주성 공격을 알리는 진군 나팔이 울려퍼지자 병오의병의 거사가 시작되었으며 이곳은 호서지방 의병들의 첫 주둔지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 안내판
홍주병오의병 주둔유지비(洪州丙午義兵 駐屯 遺址碑) 지대석 받침돌에 추모문이 적혀 있다. "여기 나라를 위해 왜구를 쳐부수려 홍주성으로 한 몸 바치려는 배달의 의용들 죽엄의 북소리에 발 맞추어 부모처자 뒤에 두고 한곳에 모였네 그 이름 거룩할 손 9백의 의사"
홍주병오의병 주둔 유지비 앞에서 구항길이 지나는 구항면 황곡리 하우고개의 동서트레일 이정목을 내려보았다.
구항면 황곡리(篁谷里)는 백제 때는 결기군(結己郡)에, 신라 때는 결성군(潔城郡)에, 고려 때는 결성군(結城郡)에 속했었다. 조선 초엽엔 결성현(結城縣)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결성군(結城郡) 화산면(花山面)의 지역이었다. 큰 골짜기가 되므로 한골, 황골 또는 대동 황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대동(上大洞) 중대동(中大洞) 하대동(下大洞) 묵동(墨洞) 독리(纛里) 일부를 병합하여 황곡리(篁谷里)라해서 홍성군(洪城郡) 구항면(龜項面)에 편입되었다. - 홍성군청
하우고개의 홍주병오의병 주둔 유지비에서 백월산 방향으로 오르막 나무계단길을 오른다.
병오의병비 0.1km, 백월산 정상 2.7km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어 올라간다.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136.3m 산봉을 올라선 뒤 곧바로 내려간다.
병오의병비 0.6km, 백월산 정상 2.2km 지점의 송전탑을 지나간다.
백월산 가는 산길에서 동쪽으로 홍성읍 월산리 지역을 살피지만 운무 때문에 흐릿하다.
고려 때는 홍주고을에 속했었다. 백제 때는 금주군(今州郡)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해풍현(海豊縣)에 속했었다. 조선 초엽에 홍주군(洪州郡)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홍주군 주북면(洪州郡 州北面)의 지역으로서 일월산(日月山) 아래가 됨으로 월산(月山)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하리(下里), 감계리(甘係里) 및 월산리(月山里)·월계리(月係里)·서문리(西門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월산리라 해서 홍성군 홍양면(洪城郡 洪陽面)에 편입되었다. 1940년 10월 1일 읍승격에 따라, 홍성읍 월산리가 되었다. - 홍성군청
언덕의 쉼터를 올라 병오의병비 1.1km, 백월산 정상 1.7km 지점을 통과한다.
병오의병비 1.2km, 백월산 정상 1.6km 지점,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는 언덕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언덕의 갈림길을 지나와서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는 갈림길을 뒤돌아보았다.
살포쟁이고개의 임도를 가로질러 백월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충청남도 홍성군의 구항면 황곡리(篁谷里)와 홍성읍 월산리(月山里) 부근에 위치한 고개 이름으로, 일월산 줄기의 남쪽을 가로지른다. 옛날에 이 고개에서 죄인 또는 가축을 죽였다고 하여 살포쟁이고개 또는 살포티(殺捕峙)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대의 일부 지형도에서는 구전되는 과정에서 변화가 발생하여 삼포쟁이고개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 안내판
병오의병비 1.5km, 백월산 1.3km 지점, 살포쟁이고개 백월산 등산 나들목에 이정목이 서 있다.
노란세이버님이 '금북정맥 280.4m' 표지판을 나무줄기에 묶어둔 해발 280.4m봉을 넘어간다.
해발 280.4m봉을 넘어 미끄러운 바위지대를 왼쪽으로 돌아 올라간다.
바위지대를 돌아 홍성소방소 월산-29 국가지점번호 표지목을 지나면 곧바로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위험구간이 나온다.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위험지대를 올라간다.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위험구간을 올라 위험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는 언덕을 넘어 내려간다.
위험표지판에서 내려서면 갈림길, 왼쪽은 구항면사무소 2.4km 방향, 동서트레일은 오른쪽 백월산 정상 0.5km 방향으로 이어간다.
구항면사무소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임도 안쪽에 의자와 평상들이 설치되어 있는 쉼터가 나온다.
병오의병비 2.5km, 백월산 정상 0.3km 지점의 백월산 쉼터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임도에서 백월산 쉼터를 뒤돌아보았다.
임도에서 오른쪽 백월산 정상 오르는 길로 올라간다.
백월산 전망대는 백월산 정상 바로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
운무가 더욱 짙어져 백월산 전망대에서 조망할 수가 없다. 백월산 전망대에서 백월산 정상을 올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