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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10구간 2부 백월산-이응노생가기념관 : 백월산, 그 신성성과 이응노, 뜨거운 평화의 울림

작성자대모산|작성시간26.06.21|조회수73 목록 댓글 0

동서트레일 제2부
백월산-홍후만전묘-백월산고천제단-

홍천문화마을-이응노생가기념관
20260521


1.백월산, 그 신성성과 이응노, 뜨거운 평화의 울림

 

동서트레일 10구간을 역방향으로 탐방했다. 정방향으로 탐방하여야 순차적 지리 감각으로 탐방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데, 역방향으로 탐방하면 그 순차적 지리 감각이 뒤집혀 헷갈린다. 그렇지만 도보여행 안내팀에서 역방향 탐방으로 추진하니 따를 수밖에 없다. 동서트레일 10구간은 내포문화숲길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와 동행한다. 내포문화숲길에서는 이 코스를 이렇게 개략한다.

 

"이응노생가기념관~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 9.7km. 대한민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암 이응노 화백의 생가와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는 이응노생가기념관에서 출발하여 홍성의 진산 백월산을 오르게 된다. 394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예로부터 홍성사람들이 신성시했다 하는데 정상에 올라 홍성 시내를 내려다 보면 그 느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백월산을 내려와 마을길을 거쳐 완만한 등산로의 남산을 만나게 되고 멋진 자태의 소나무 아래 홍성센터에 도달하게 된다." 동서트레일 10구간 역방향 탐방을 2부로 정리한다.

 

제2부(백월산~이응노생가기념관) : 백월산 정상에 오르니 운무는 더욱 짙어져 사방은 운무에 에워싸여서 조망을 즐길 수 없다. 정상에는 홍성산우회에서 설치한 白月山(日月山) 394.3m 정상표석이 누워있고, 그 옆에 삼각점이 있다. 그런데 정상에 내포문화숲길에서 설치한 백월산 설명안내판에는 "백월산은 충청남도 홍성읍 월산리, 구항면 오봉리, 홍북읍 중계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높이는 394.3m이다. 정상에는 기암괴석에 '누어백월산기암벽상(樓於白月山奇岩壁上)'이라고 새겨 놓은 정상비가 있다. 상봉에는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한 홍주목사 홍가신(洪可臣)을 기리기 위해 세운 홍가신 사당이 있고, 중턱에는 삼국시대에 창건한 석련사(石蓮寺)와 용암사(龍岩寺)가 있다."라고 백월산을 소개한다. 이 내용 때문에 잠시 헷갈렸다.

 

이 설명안내판 내용 중에서 "정상에는 기암괴석에 '누어백월산기암벽상(樓於白月山奇岩壁上)'이라고 새겨 놓은 정상비가 있다."는 내용에 현혹되어 백월산 정상비를 찾아 정상 여기저기를 살폈지만 홍성산우회 정상표석밖에 없다. 어디에 정상비가 있을까? 짙은 운무 때문에 보이지 않고 찾을 수 없는 것일까?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 정상을 내려간다. 백월산 정상에서 이응노생가기념관까지는 2.8km 거리, 하산길이니 목적지까지 1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쌀이 나오는 전설이 깃든 코끼리바위를 지나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한 홍주목사 홍가신(洪可臣)을 기리기 위해 세운 홍가신 사당으로 올라갔다. 사당 문이 잠겨 있어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살피니 백월산신과 홍가신, 최호, 박명현, 임득의, 신경행 등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백월산신 위패 왼쪽으로 홍가신의 가족으로 알려진 다섯 명의 목각상이 서 있다. 이 홍가신당(洪可臣堂)의 정식 명칭은 '홍후만전묘(洪侯晚全廟)'이고, 홍주청난사(洪州清難祠)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그래서 사당 옆에 이 사우(祠宇)를 1974년에 중수한 홍주청난사(洪州清難祠) 중수비(重修碑)가 세워져 있다.

 

'홍후만전묘(洪侯晚全廟)' 뒤쪽으로 가보았다. 암봉에 비석이 서 있다. 바로 백월산 정상비였다. 드디어 이곳에서 백월산 정상비 의문을 풀게 되었다. 밧줄을 잡고 백월산 정상 암봉으로 올라가 정상비를 확인하고, 정상비 오른쪽 나뭇가지에 노란세이버님이 달아놓은 '금북정맥 일월산 397.0m' 표지판도 확인하였다. 정상비를 살피니 정상비 네 면에 한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그 중 한 면에는 '옥황상제 전상서(玉皇上帝前上書)', 다른 면에는 '누어백월산기암벽상(樓於白月山奇岩壁上)'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이 백월산 기암절벽 위에 백옥루를 짓고, 자미궁에 거처하는 옥황상제에게 편지를 올렸을까?

 

백월산에 대한 길손의 생각을 정리한다. 백월산은 홍성에서 신성시하는 진산이다. 홍가신 사당은 무속 신당이었을 것이며 백월산 정상 바위에는 백옥루 누각이 세워져 있었을 것이다. 현재 일월산과 월산으로도 불리는 백월산의 주봉은 홍성산우회의 정상표석이 있는 394.3m 산봉이고, 백월산 상봉은 '누어백월산기암벽상(樓於白月山奇岩壁上)'이 새겨진 정상비가 있는 397.0m산봉일 것이다. 그래서 백월산을 주봉, 일월산을 상봉으로 각각 표기하기도 하는 것 같다.

 

홍후만전묘의 일월산 정상에서 내려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백월산고천제단(白月山告天祭壇)을 지난다. 그 뒤쪽에 누각이 보여서 올라가 보니 영월정(迎月亭)이다. 신령스러운 정기를 이어받은 홍성의 주산(主山) 백월산(白月山) 중턱에 2022년 10월에 조성한 영월정은 홍성군민과 충남도민의 안위(安危)를 염원하고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영월정에서는 코뿔소바위만이 내려다 보이고, 홍성군 구항면 지역은 짙은 운무에 에워싸여 보이지 않는다. 영월정 자리에서 금북정맥과 동서트레일은 작별하여, 금북정맥은 구항면 지역으로 벋어가고, 동서트레일은 홍성읍 월산리 지역으로 이어간다.

 

급경사 비탈길에 가파르게 조성한 나무계단길을 내려간다. 이 계단길을 구름다리라 이른다고 하는데, 맑은날 이 계단길을 내려가 보아야, 구름다리 명칭이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에 합당한 명칭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구름다리를 내려가면 투석봉, 백월산 장수 전설 안내판에 용봉산이 정면에 보인다고 하는데, 이 역시 짙은 운무 때문에 아무것도 살필 수 없다. 산혜암과 송전탑을 지나서 갈림길 두 곳에서 갈라진다. 첫째로 홍성읍 월산리와 홍복읍 중계리 갈림길에서 홍북읍 중계리 지역으로 내려간다. 둘째로 용화사와 이응노생가기념관 갈림길에서 이응노생가기념관 방향으로 내려간다.

 

홍북읍 중계리 백월산 나들목으로 내려가면 중계리 홍천마을, 그중에서도 홍천문화마을이다. 문화마을은 고급 전원주택들이 들어선 지역으로 부유한 자산가들이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동서트레일은 홍천문화1길을 따라 홍천문화마을 중앙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문화마을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홍덕서로'로 나가 문화마을 북쪽 출입구 홍천고개 삼거리로 올라간다. 아, 문화특권을 누리는 자산가들이로다.

 

홍성군 홍성읍과 예산군 덕산면을 잇는 '홍덕서로'의 홍천고개 삼거리에서 홍덕서로는 서북쪽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 방향으로 이어가고, 이응노로는 동북쪽 홍북읍 중계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최종판결 식당을 지나 이응노로에서 용봉천 둑방길로 나가야 하는데, 이응노로를 그대로 따라 이응노생가기념관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게 그거지만, 동서트레일 9·10구간 시종점에서 위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걸어왔어야 할 동서트레일 10구간 탐방로 방향을 살폈다.

 

2주 전 동서트레일 9구간을 탐방한 뒤 이응노생가기념관을 살폈는데, 이번 10구간 역방향을 탐방한 뒤에도 다시 한 번 기념관을 관람했다. 평화에의 염원을 담아낸 그의 작품들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스쳐간다. 그 스침 속에서도 평화의 물결이 가슴에 철철 넘쳐 흐른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0.1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28분

12:12 올려본 백월산 정상

백월산 전망대에서 백월산 정상을 올려보았다. 더욱 짙어진 운무 때문에 백월산 전망대에서 홍주읍 시가지는 보이지 않는다.

 

돌아본 백월산 전망대

백월산 정상으로 올라가며 백월산 전망대를 돌아보았다.

 

백월산 통신탑

백월산 정상에 삼각점과 정상표석이 세워져 있고, 통신탑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앞에 쉼터 의자들이 설치되어 있다.

 

백월산 정상 표석

홍성산우회에서 설치한 白月山(日月山) 394.3m 정상표석이 누워있고, 그 옆에 삼각점이 있다.

 

백월산 정상 모습

백월산 정상과 그 아래쪽 백월산 전망대를 뒤돌아보았다.

 

12:39 백월산 정상 이정목

백월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코끼리바위로 내려간다. 오른쪽에 백월산 설명안내판이 서 있다.

 

충청남도 홍성읍 월산리, 구항면 오봉리, 홍북읍 중계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높이는 394.3m이다. 정상에는 기암괴석에 '누어백월산기암벽상(樓於白月山奇岩壁上)'이라고 새겨 놓은 정상비가 있다. 상봉에는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한 홍주목사 홍가신(洪可臣)을 기리기 위해 세운 홍가신 사당이 있고, 중턱에는 삼국시대에 창건한 석련사(石蓮寺)와 용암사(龍岩寺)가 있다. - 안내판

 

코끼리바위

코끼리바위 오른쪽  떨기나무 앞에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옛날에 코끼리바위 밑에서 쌀이 나왔다고 한다. 매일 한 끼 분량의 쌀이 쏟아졌는데 오랜 세월 바위 주변에 사는 할머니만이 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쌀을 받기 위해 찾아왔지만 여전히 할머니만이 쌀을 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백월산 산신령님께 선택받은 분이잖아요. 간절하게 원하면 들어주실 것 아니겠어요? 쌀을 한꺼번에 많이 달라고 해보세요.”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씩 건네곤 했다. 한 끼의 쌀만으로도 감사하며 만족했던 할머니는 점점 욕심이 생기며 쌀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쌀을 더 받기 위해 할머니는 목욕재계를 하고 바위 구멍 밑에 바가지를 대고 산신령에게 정성껏 기도를 했지만 한 끼 분량의 쌀만 나왔다. 화가 난 할머니는 들고 있던 부지깽이로 쌀이 나오는 구멍을 마구 쑤셨고 구멍은 점점 메워졌다. 완전히 메워진 구멍을 계속 쑤시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코끼리바위는 분수에 넘치는 욕심은 파멸을 낳는다는 과유불급의 교훈을 전해주며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 안내판  

 

코끼리바위 아래

쌀이 나왔다고 하는 코끼리바위 밑에 동자승 모형물들이 놓여 있다.

 

돌아본 코끼리바위

코끼리바위를 지나와서 코끼리바위를 뒤돌아보았다. 

 

멋진 소나무

멋진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 왼쪽 홍가신당(洪可臣堂) 방향으로 이어간다.

 

홍가신당(洪可臣堂) 오르는 길

홍가신당(洪可臣堂) 오르는 길에 공깃돌 모양의 큰 바위들이 있다.

 

12:48 홍후만전묘(洪侯晚全廟)

홍가신(洪可臣, 1541~1615) 등 청난공신(清難功臣) 위패를 모신 홍가신당(洪可臣堂) 현판은 '홍후만전묘(洪侯晚全廟)'이다.

 

홍가신당(洪可臣堂)은 조선시대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홍주목사 홍가신을 비롯한 청난공신*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 공식적인 명칭은 '홍후만전묘(洪侯晚全廟)'이고, 홍주청난사(洪州清難祠)라고도 한다. *청난공신(清難功臣) :1595년(선조 29년)에 일어난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사람에게 주어진 훈호(勳號). 공에 따라 3등급으로 구분하였는데 홍주목사 홍가신은 1등 공신, 최호, 박명현은 2등 공신, 신경행, 임득의는 3등 공신에 책록됨. 사당 내부에는 백월산신과 다섯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그 옆으로 홍가신의 가족으로 알려진 다섯 명의 목각상이 있다. 특히, 선반 바로 아래에 있는 '맷돌바위'는 정초에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비는 바위로 유명하다. 새해 소원을 말하며 작은 돌을 맷돌 돌리듯 돌려 달라붙으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신호라고 한다. - 설명안내판

 

홍주청난사(洪州清難祠) 중수비(重修碑)

'홍후만전묘(洪侯晚全廟)' 옆에 이 사우(祠宇)를 1974년에 중수한 홍주청난사(洪州清難祠) 중수비(重修碑)가 서 있다.

 

위패

사당 내부에는 백월산신과 홍가신, 최호, 박명현, 임득의, 신경행 등 다섯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홍가신 가족 목가상

백월산신 위패 왼쪽으로 홍가신의 가족으로 알려진 다섯 명의 목각상이 서 있다. 

 

정상표석

'홍후만전묘(洪侯晚全廟)' 뒤쪽 바위 위에 백월산 정상표석이 서 있다. 정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玉皇上帝前上書

정상표석 네 면에 한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그 중 한 면에는 '옥황상제 전상서(玉皇上帝前上書)'가 새겨져 있다.

 

樓於白月山奇岩壁上

다른 면에는 '누어백월산기암벽상(樓於白月山奇岩壁上)'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정상에 누각이 있었다는 것일까?

 

일월산 정상 표지판

정상표석 오른쪽 나뭇가지에 노란세이버님이 '금북정맥 일월산 397.0m' 표지판을 달아놓았다. 

 

12:55 하산길

일월산에서 내려와 이응노생가기념관 방향으로 산길을 따라간다.

 

선녀가 내려온 자리

'선녀가 내려온 자리'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바위 앞을 지나간다. "옛날에 하늘에서 선녀가 백월산에 내려와 놀았는데 그 내려 앉은 자리가 지금까지 풀이 나지 않고 선녀가 다시 내려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곳은 예쁜 딸을 낳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곳에 올라 선녀같이 예쁜 딸을 낳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 설명안내판 

 

백월산고천제단(白月山告天祭壇) 앞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넓은 터 앞에 '백월산고천제단(白月山告天祭壇)'이 설치되어 있다.

 

백월산고천제단(白月山告天祭壇)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백월산고천제단(白月山告天祭壇) 뒤에는 영월정(迎月亭)이 조성되어 있다. 

 

영월정(迎月亭)

영월정(迎月亭)으로 올라가 보았다. 영월정 현판의 제자(題字)는 우촌 박상현님이 썼다고 한다.

 

迎月亭 호칭 및 설치 경위 기(記)

영월정(迎月亭)에 오르니 영월정(迎月亭) 호칭 및 설치 경위 안내판이 붙어 있다.

 

백월산(白月山)은 금북정맥의 신령스러운 정기를 이어받은 홍성의 주산(主山)으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 정자에 예부터 우리 백의민족이 숭배해온 만월(滿月)의 소망을 담습니다. "달을 맞이하는 정자라는 迎月亭(영월정)"이라 이름 지으며, 홍성군민과 충남도민의 안위(安危)를 염원하고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바라는 뜻을 담아 함께 나눔으로써 이곳을 찾는 지역주민과 등산객들에게 백월산의 소중함을 알리고 그 뜻이 영원히 전승되기를 바랍니다. 2022. 10. 28. 호명 및 제자 :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장 우촌 박상현 / 설치 및 관리 : 충청남도 홍성군 산림녹지과 

 

코뿔소바위

영월정(迎月亭) 뒤쪽에 코뿔소바위가 있으며 금북정맥은 코뿔소바위 뒤쪽으로 이어진다.

 

13:01 이정목

금북정맥과 작별하고, 백월산고천제단 이정목과 '용봉산과 백월산의 두 장사' 설명안내판을 지나간다. 

 

홍성읍 소향리를 두고 양 옆에 있는 용봉산과 백월산 두 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산에는 각각 장수가 살고 있었고, 그 사이에는 소향이라는 아주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이 두 장수는 소향 아가씨를 짝사랑하여, 서로 눈에 원수로 여기고 눈치만 살피다가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기 쪽 산에 있는 돌을 집어 상대편 산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두 장수는 상대편 장수를 쓰러뜨리기 위해 쉬지 않고 돌을 던졌고, 싸움은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두 산에서 던지는 돌이 용봉산 쪽에 더 쌓이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백월산 장수의 승리로 싸움이 끝나게 되었다. 그 덕분에 백월산의 돌은 얼마 남지 않게 되었고, 용봉산은 돌이 많이 쌓여 지금처럼 기암괴석이 많은 산이 되었다. 결국 소향 아가씨는 백월산 장수가 차지하게 되었고, 홍성군 홍성읍과 홍북읍의 가운데 위치한 소향리도 백월산이 있는 홍성읍 차지가 되었다. 용봉산 장수는 싸움에서 지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용봉산에 돌이 많이 쌓여서 용봉산을 유명한 관광지로 만들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설명안내판 

 

구름다리

경사가 가파른 나무계단을 내려간다. 이 나무계단길을 구름다리라고 이르는 듯.

 

13:09 국가지점번호 표지목

국가지점번호표지목에 산혜암-20이 적혀 있다. 앞의 투석봉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투석봉?

이 산봉이 투석봉일까? 운무 때문에 용봉산과 내포신도시 방향을 조망할 수 없다.

 

백월산 설명안내판

투석봉에 백월산과 백월산 장수이야기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백월산(白月山, 해발 394m, 홍성군 홍성읍 월산리) : 백월산의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산(月山)으로 되어있는데 '본주 서쪽 3리 지점에 있는 진산'이라 적고 있다. 1750년에 만들어진 광여지도에는 백월산(白月山)으로 나타나 있었으나 그 후에 나온 대동지지에는 월산(月山)이라 되어 있다. 백월산은 황해도 구월산, 전남 영암의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서부 지역의 세월산(三月山)의 하나로 꼽혀왔다. 충남 서북부에 자리한 우리 고을의 진산 백월산은 거의 평정봉으로 높이가 낮지만 경관이 아름답고 산행하기에 매우 좋은 산이다. 길게 뻗어 올라가는 하늘사다리, 절골의 바위 협곡을 건너는 구름다리 등 산행시설이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코끼리바위, 바위턱 조망대 등 산비탈 곳곳에 기암괴석이 펼쳐져 있다. 또 백월산은 민속신앙이 성해 곳곳에 기도터가 많아 제물이 차려져 있는 모습이나 굿판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해마다 단군제와 고천대제(제단이 마련되어 있음)도 열리고 있다. 백월산은 충절의 산으로 산머리 거대한 바위를 등지고 벼랑 위에 홍주청난사중수비와 단칸으로 된 청난사가 있다. 청난사는 임진왜란 중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홍가신 등 다섯 충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산 머리에 충신의 사당이 있는 곳은 여기 백월산 뿐 일 것이다. 경술국치(한일합방) 전후 많은 의병들이 이 산으로 들어와 장열한 최우를 마쳤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산혜암 내려가는 길

돌계단 비탈길을 따라 산혜암 앞으로 내려간다.

 

13:17 산혜암 앞

산비탈길을 따라 백월산 등산 안내도 앞으로 내려왔다. 왼쪽 뒤에 산혜암이 자리한 듯.

 

쉼터

백월산 정상 0.9km, 이응노생가기념관 1.8km 지점의 쉼터를 지나간다.

 

13:21 송전탑

쉼터를 지나서 송전탑 아래로 통과한다.

 

월산리 갈림길

백월산 정상 1.1km, 이응노생가기념관 1.6km 지점, 홍성읍 월산리 갈림길에서 왼쪽 홍북읍 중계리로 내려간다. 

 

13:26 용화사 갈림길

백월산 정상 1.2km, 이응노생가기념관 1.7km 지점, 홍북읍 중계리 지역에서 왼쪽 이응노생가기념관 방향으로 내려간다.

 

나무다리

비가 내리면 물이 흐르는 골짜기의 나무다리를 건너 내려간다.

 

13:32 백월산 등산로 나들목

백월산 정상 1.7km, 이응노생가기념관 1.0km 지점, 백월산 등산로 나들목에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 안내도

백월산 등산로 나들목에서 홍북읍 중계리 홍천문화마을로 내려간다.

 

홍천문화1길

홍성군 홍북읍 중계리 홍천문화1길을 따라 홍천문화마을로 내려간다.

 

홍천문화마을

동서트레일은 곧바로 '홍덕서로'로 내려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홍천문화마을을 돌아서 홍덕서로로 내려간다. 

 

갈림길

백월산 정상 1.8km, 이응노생가기념관 0.9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에서 왼쪽으로 꺾어 '홍덕서로'로 내려간다. 

 

홍천문화1길

홍천문화1길을 따라 '홍덕서로'로 내려가 왼쪽으로 이어간다.

 

13:35 홍덕서로

홍천문화1길에서 홍성군 홍성읍과 예산군 덕산면을 잇는 '홍덕서로'로 나와 홍천고개 삼거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홍천고개 삼거리

백월산 정상 2.2km, 이응노생가기념관 0.5km 지점, 홍덕서로와 이응노로가 만나는 홍천고개 삼거리에서 홍덕서로를 건너 오른쪽 아래 이응노로로 건너간다.

 

예술조형 이정목

홍천고개 삼거리의 이응노로 보도에 홍천문화마을답게 예술조형 이정목이 서 있다. 

 

돌아본 홍천문화마을

이응노로의 보도에서 걸어온 홍덕서로와 언덕의 홍천문화마을을 뒤돌아보았다. 왼쪽에 예술 조형 이정목이 서 있다. 

 

13:39 이응노로

이응노로 보도를 따라 홍천고개 삼거리 버스정류소를 지나 내려간다.

 

뒤돌아본 홍천고개 삼거리

홍천고개 버스정류소에서 홍덕서로의 홍천고개 삼거리를 뒤돌아보았다.

 

이응노로

이응노로를 따라 이응노생가기념관으로 내려간다. 왼쪽에 식당이 있다.

 

최종판결 식당

이응노로 서쪽에 홍성법원 앞에 있다가 이전한 최종판결 식당과 그 왼쪽에 한우전문식당 '味佳한우'가 자리한다.

 

이응노로

백월산 정상 2.5km, 이응노생가기념관 0.2km 지점에서 이응노로를 횡단하여 용봉천 둑방으로 이어가야 하는데 앞에 가는 사람들을 보고 무작정 이응노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13:44 이응노생가기념관 주차장

이응노생가기념관 주차장에서 동서트레일 9·10구간 시종점과 기념관 출입구를 지나 10구간 정코스 위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동서트레일 방향

동서트레일 9·10구간 시종점에서 위쪽으로 올라와 10구간 정코스 동서트레일 방향을 살폈다. 오른쪽에 이응노 소개글이 적혀 있다.

 

고암 이응노, 1904 홍성→ 1989 파리

"나는 그래도 고독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했을 뿐. 나는 남몰래 가벼운 마음으로 줄곧 그리고 또 그렸다. 땅 위에, 담벼락에, 눈 위에, 검게 그을린 내 살갗에.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로 혹은 조약돌로." - 1971년 고암 이응노.

 

돌아본 백월산

동서트레일 9·10구간 시종점으로 내려가며 10구간 방향을 다시 돌아보았다. 왼쪽 뒤에 백월산이 솟아 있다. 

 

이응노생가기념관 출입구

이응노생가기념관 출입구 옆에 동서트레일 9·10구간 시종점 안내판들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 주차장이 있다.

 

13:47 동서트레일 9·10구간 시종점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출입구 옆 동서트레일 9·10구간 시종점에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탐방지와 동서트레일 이정목,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설명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은 이응노가 탄생하고 유년을 보냈다는 충남 홍성군 홍북읍 증계리의 낮은 산자락 끝에 자리잡고 있다.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은 대지 면적 2만여㎡, 건축 면적 1천여㎡로 전시 홀, 북 카페, 다목적실 등 전시 시설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과 초가로 지은 생가, 연밭, 산책로 등을 갖춘 기념관이자 미술관이다. 이응노 개인을 기리고자 마련된 이 생가기념관은 그 자신이 미술가였기에 기능면에서 전시와 수장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 미술관의 성격이 한층 더 강하다. 이런 의미에서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은 기념관은 물론, 미술관의 측면에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 출입구

동서트레일 9·10구간 시종점에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탐방지와 이정목,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설명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은 이응노가 탄생하고 유년을 보냈다는 충남 홍성군 홍북읍 증계리의 낮은 산자락 끝에 자리잡고 있다.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은 대지 면적 2만여㎡, 건축 면적 1천여㎡로 전시 홀, 북 카페, 다목적실 등 전시 시설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과 초가로 지은 생가, 연밭, 산책로 등을 갖춘 기념관이자 미술관이다. 이응노 개인을 기리고자 마련된 이 생가기념관은 그 자신이 미술가였기에 기능면에서 전시와 수장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 미술관의 성격이 한층 더 강하다. 이런 의미에서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은 기념관은 물론, 미술관의 측면에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종합안내판

동서트레일 9·10구간 시종점에 역사인물길 1코스와 2코스, 동서트레일 9구간과 10구간의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 관람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출입구

상설전시 알림막과 기획전시 알림막이 펼쳐져 있고, 관람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응노생가기념관 소장품 기획전시 <확장되는 선>은 2025년 12월 22일~2026년 7월 12일, 2~4전시실에서 전시되고, 교육전시 <같이, 다르게>는 2026년 4월 28일~2026년 7월 12일, 기획전시실에서 전시된다.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과 고암 안내글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이응노의 집)은 오랜 준비 끝에 2011년에 개관했습니다. 1904년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미술가 고암 이응노는 우리 근현대사가 지닌 굴절과 비극을 자신의 삶 속에서 고스란히 겪어낸 인물이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상경한 이후 도쿄, 서울, 파리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이동 속에서 그는 낯선 환경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융합하는 독자적인 화법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은 예술가 이응노를 기리는 기념관이자 미술관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이후 7,000여 권의 전문 서적을 소장한 예술문화 자료실과 입주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창작스튜디오 등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확장시키며, 새로운 예술을 품은 마을, 마을과 소통하는 예술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2013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은 굽이치고 비탈진 옛 마을 길의 선형을 따라 걸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공간을 거닐며 고암 이응노가 살아낸 치열한 20세기의 시간과 예술가의 정신을 함께 사유해보시기 바랍니다.  

◆홍성 땅에 깃든 이용노의 켜 : 고암 이응노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홍성의 땅에는 그의 예술혼이 켜처럼 깊이 스며 있습니다. 선생의 생가 터에 '고양이음노생가기념관'을 새로 짓는 과정은, 이 땅에 남아 있던 그 켜를 찾아 다시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였습니다. ◆되살린 고향의 길과 풍경 : 이곳을 찾는 이들은 예부터 쌍바위골 사람들이 아침저녁 오가던 다리를 건너 시골길을 따라 자연스레 이 집에 이르게 됩니다. 숲 자락에 조용히 자리한 건물이 농촌 풍경과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오래된 지도에 나온대로 구불구불 되돌려 놓은 길을 따라 연발과 발두렁을 거닐 수도 있습니다. 선생의 고향집 그림대로 지은 초가 곁으로 대숲과 채마밭을 두어 원래 그렇게 있었던 듯 되살렸습니다. 고암 선생이 늘 보던 그 고향 풍경을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그 풍경은 우리 마음속 자리한 고향 풍경이기도 합니다. ◆빛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전시의 결 : 전시 공간은 산기슭의 완만한 경사를 따라 길게 배치된 홀과, 그 안에 서로 다른 성격의 네 개 전시실이 이어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시실 사이의 열린 틈으로 햇빛과 풍경이 드나들며 종일 전시홀의 곁을 드리옵니다. 기념관 외관의 부드러운 황토 질감과는 달리 내부 전시 홀에서는 절제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이는 단순히 예술을 향해 걷는 길이 아니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근현대사의 굴곡 위를 따라 걷는 길이며, 그 속에서 균질된 삶을 견뎌야 했던 한 사람 고양 이응노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이 펼쳐지는 순간 : 고암 선생이 그리던 고향 마을과 그가 걸어갔던 이 길을 따라 오늘 이곳을 걷는 여러분의 마음이 서로 어우러져, 새로운 예술의 키와 새로운 역사의 키가 이 땅에서 다시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 조성룡, 2011년   

 

금강산 보덕굴

회랑 벽에 '금강산 보덕굴'(한지에 수묵, 1950년대, 170.8x119cm, 기증자 :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작품이 걸려 있다.

 

홍성군은 지난 16일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초대 운영위원장을 역임한 유홍준 전(前) 문화재청장으로부터 고암이응노(顧庵 李應魯, 1904~1989)의 1950년대 작인 <금강산 보덕굴> 작품을 기증받았다. 유홍준 전(前)문화재청장은 심향 박승무作 <천첩운산도>와 고암 이응노作 <대나무문양 도배지>를 기증한데 이어, 세 번째로 고암 이응노의 1950년대 작품인 <금강산보덕굴>를 홍성군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에 기증하게 된 것이다. 기증작품은 1950년 중·후반 작품으로 실경(實景)을 추상적 흥취로 쾌활하게 그려내 반추상이 잘 표현된 수묵담채 작품이라고 전문가 평가위원단은 말했다. 유홍준 전(前)문화재청장은 16일 홍성군을 직접 찾아 홍주성역사관을 돌아보고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에서 이용록 군수와 기증식을 진행했다. 출처 : 홍주포커스(https://www.hjfocus.com) 2023.06.16 

회랑

전시실1 출입구에서 전시실2~4와 기획전시실 방향을 살폈다. 회랑 벽면에 수덕사 암각화 탁본이 걸려 있다. 

수덕사 암각화 탁본

전시실 앞 회랑 벽면에 수덕사 암각화 탁본(한지에 탁본, 93X223cm, 1969년)이 걸려 있고, 그 아래 수덕여관 암각화와 수덕사 기슭에 메아리치는 '민족애' 등의 신문기사가 전시된다.

 

이응노 화백 전시도록과 관련 사진들

회랑 오른쪽 전시대에는 이응노 화백의 전시도록과 회고전(2017년), 파리 고암서방과 이응노의 파리 자택 풍경 사진들이 전시된다.

 

고암 이응노 상설전

'전시실1'은 고암 이응노 상설전시장으로 '톺아보기' 제목이 붙어 있다.

문자추상

'전시실1' 정면 벽에 '문자추상'(한지에 수묵담채, 141X76cm, 1970년) 작품이 전시된다. 

 

고암 이응노 연보

'전시실1' 오른쪽 벽면에 고암 이응노(1904~1989) 화가의 생애를 도표화한 연대기가 붙어 있다.

 

영차영차

'전시실1' 왼쪽 벽면에 '영차영차', '추상', '콜라주', '군상' 등의 작품들, 그 아래에 이응노 화가 관련 사진과 편지 등이 전시된다.

군상, 1982년, 한지에 수묵담채, 45.5X60.7cm

「군상群像」연작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화면 가득 채워져 있는 작품들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일정한 띠를 형성하여 한 방향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서로 뒤엉켜 환희의 몸짓을 하기도 하고 격렬한 동작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등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림 속의 인물 표현은 전통적인 인물화의 재현방법에서 벗어나 수묵화의 자유로운 필치와 생동하는 기운을 보여준다. 붓으로 글씨를 쓰듯 추상으로 그려진 인물 형상에서 서예적 필력이 느껴진다. - 다음백과  

 

'문자추상'과 '군조(群鳥)'

'전시실1' 출입구를 바라보면 왼쪽에 '문자판각'과 <동중유정(動中有情)> 화첩 작품, 오른쪽 벽면에 '문자추상'(종이에 솜, 연도미상) 작품과 '군조(群鳥)'(한지에 수묵, 연도미상)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문자판각'과 <동중유정(動中有情)>

'전시실1' 출입구 왼쪽 벽면에 '문자판각'(나무, 32x145x4.5cm, 1969년) 작품과 그 아래에 <동중유정(動中有情)>(한지에 수묵, 1969년) 화첩 작품들이 전시된다.

 

전시실1 출입구

'전시실1' 출입구의 전시 작품을 살피고 '전시실1'을 나간다. 

 

소장품 기획전시《확장되는 선》

《확장되는 선》을 주제로 2025년 12월 22일~2026년 7월 12일, 전시실2와 3, 4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고암 이응노의 작품을 '선'이라는 조형 요소를 통해 바라보는 소장품 기획전시이다. 고암의 여정을 '확장되는 선'을 주제로 하여 ‘사유하는 선 - 변화하는 선 - 이루는 선’이라는 흐름으로, 각 시기 작품에 드러나는 선의 다양한 면모와 조형적 변화를 살펴보는 자리라고 한다.   

확장되는 선 : 고암 이응노의 예술세계는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 시대와 사유를 관통하는 ‘선(線)’의 여정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선은 그에게 단순한 출발점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었으며 삶과 예술을 잇는 하나의 정신이었습니다. 이번 전시《확장되는 선》은 고암의 작업이 전통에서 현대로, 개인의 표현에서 공동의 움직임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예술가가 탐구한 선의 의미를 다시 마주하는 자리입니다. 초기 작업은 전통 회화의 재료인 종이와 먹, 붓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시기의 핵심은 재료 자체보다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선'을 익혀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연필을 사용한 드로잉 또한 이러한 조형 감각을 다져가는 기초적 연습으로 이후 수묵화에서 문자 형태의 변형으로 이어지는 실험을 준비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 안내문   

 

전시실2

전시실2, 사유하는 선 : 이번 공간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대상의 형태를 충실히 관찰하면서도 그 속의 움직임과 리듬을 함께 담아내려는 작가의 시도를 보여줍니다. 반복되는 선의 흐름 속에서 고암은 형태를 단순화하고 여백을 사유하며, 자신만의 시선과 호흡을 구축해 갔습니다. 초기는 고암 예술세계의 기초가 다져지는 시기이자, 선이 단순한 묘시에서 벗어나 작가의 정신과 감각을 드러내는 표현의 주체가 되는 순간입니다. 담백한 선의 결을 따라가며 한 예술가의 조형세계가 어떻게 처음 열리기 시작했는지 느긋하게 마주하시길 바랍니다. - 안내문   

 

전시실2 작품들

고암 예술세계의 기초가 다져지는 초기의 '닭', '소', '장터 여인' 작품들이 오른쪽 벽면에 전시된다.

 

'변화하는 선'과 '이루는 선'

'전시실3'과 '전시실4'에서는 '변화하는 선'과 '이루는 선'을 주제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문자추상과 문자구성

'전시실3' 왼쪽 벽면에 '문자추상' 작품 2편, 오른쪽 벽면에 '문자구성' 작품이 전시된다.

 

전시실3, 변화하는 선. 1950년대 이후 고암 이응노의 작업은 전통적 표현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조형적 가능성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선이 더 이상 대상을 따라가는 윤곽선에 머물지 않고, 면과 질감, 문자 형태가 조형적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화면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문자 형태를 단순화하고 변형하는 시도, 서로 다른 종이를 겹쳐 붙이는 실험적 작업은 고암이 화면의 구성과 표현 방식을 새롭게 탐구하던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 안내문 

 

문자추상

문자 추상의 세계를 열다 :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이응노는 한자나 한글, 세계 곳곳의 여러 고대 문자 형상을 재구성한 작품[서예적 추상]을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문자 추상’ 으로 알려진 이 양식은 이응노가 가장 어려서 접한 서예에서 출발한 것이었으며, 평생 추구했던 동·서양의 결합이었습니다. 이응노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다양한 재료들로 실험하면서도 서화, 수묵, 풍경, 인물, 사군자 등 자신을 이끌고 깨우치게 했던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창작이라는 흐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 이응노생가기념관  

 

문자추상

'전시실3'의 '문자추상' 작품들을 살핀다. 고암 이응노 화가는 1950년대 이후 문자 형태를 단순화하고 변형하는 등, 화면의 구성과 표현 방식을 새롭게 탐구하였다고 한다.

 

전시실4

전시실4, 이루는 선. 시간이 흐르며 응축된 형태로 발전하게 된 작품을 보여줍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하는 <군상(群像)>은 무수한 선들이 모여 인간의 몸짓과 움직임을 이루는, 고암 예술세계의 중요한 정점입니다. 반복되고 흐르는 선들은 서로 연결되고 흩어지며, 한 사람의 형상을 넘어 여러 존재가 함께 만들어내는 리듬과 관계를 드러냅니다. 군상은 고암이 오랫동안 탐구해 온 선의 가능성이 집약된 결과이자 개인의 표현에서 출발한 조형 언어가 공동의 움직임으로 확장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선이 화면의 구성 요소를 넘어 삶의 움직임과 인간의 연대까지 포착하는 표현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고암의 선은 조용하면서도 끊임없이 흐르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세계를 그려냅니다. 작품과 함께 선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흐름과 조형적 울림을 천천히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 안내문   

 

군상(群像)

1960년대 후반 이후의 <군상(群像)> 작품은 무수한 선들이 모여 인간의 몸짓과 움직임을 이루는, 고암 예술세계의 중요한 정점이다. 

 

군상(群像)

나의 그림은 평화 : 말년에 이응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그리고, 만들고 새겼습니 다. 화폭 안의 사람들은 인종, 민족, 빈부, 취향, 남녀, 노소, 표정을 도무지 구별할 필요조차 없는, 그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서 있거나 뛰고 걷거나 춤추고 행진합니다. 모여 큰 형상을 만들었다가, 화폭 밖으로 퍼집니다. 사람인가 했더니 잎이거나 획인 듯도 하고, 바위에 새긴 고대의 형상인 듯, 추상 미술인 듯도 합니다. 그의 붓은 댓잎에서 시작하여 풍경으로, 서체로, 추상으로, 그리고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긴 여정을 돌았습니다. 그가 이승에서 이룬 예술 세계의 대단원입니다. 마침내 한국 땅에서도 이응노를 찾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9년 1월, 그가 애타게 그리던 고국에서의 전시회가 기획되었습니다. 고암은 혼신을 다해 화해와 용서의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살아 국경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응노는 유해로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파리 시립 페르 라 세즈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 이응노생가기념관 

 

군상(群像)

군상(群像)(한지에 판화, 119x45cm, 연도미상) 판화 작품을 가까이서 살펴보았다. 

 

기획전시실 출입구

'전시실4'를 관람한 뒤 기획전시실로 들어와 출입구를 돌아보았다. 기획전시실 전시 주제는 '같이, 다르게'이다.

 

우리는 같은 작품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보았나요? "나는 이 작품을 ------------------ 감상했어요. 멀리서 오래-가까이서 자세히, 제목을 상상하며-재료를 생각하며, 함께 이야기하며-작품을 검색하며.

 

기획전시실 <같이, 다르게>

기획전시실에서 2026년 4월 28일~2026년 7월 12일,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탐구하는《같이, 다르게》전시를 하고 있다. 

우리는 작품 앞에 서서 작품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누군가는 색을 먼저보고, 누군가는 형태를 따라가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안에서 이야기를 떠올립니다.《같이, 다르게》는 작품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을 탐구해보는 전시입니다. 작품을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먼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바라보는 위치와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감상의 경험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멀리서 바라보거나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작품의 한 부분에 집중해 보는 과정 속에서 작품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여러분은 하나의 작품을 여러 방법으로 감상하고, 그 경험을 기록하며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됩니다. 같은 작품 앞에 서 있지만 우리가 발견한 장면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술관은 정답을 찾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선과 생각을 발견하는 공간입니다. 이제, 당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바라보아 주세요. - 안내문  

 

제목을 무엇으로 정할까?

예술 작품을 <같이 다르게> 감상해 보기를 권유하여 제목을 가린 작품이 정면 벽면에 전시된다.  

 

기러기 떼

작품의 제목을 가리고 <같이 다르게> 감상해 보기를 권유한다. '기러기 떼'(134x57.5cm, 한지에 수묵담채, 1982년) 작품이다.  

기념관 매표소

이응노생가기념관 전시실들을 살피고 출입구로 나가며 기념관 매표소를 내려보았다. 

 

전시회 알림막과 기념관 안내도

이응노생가기념관 관람을 마치고 용봉천을 건너 주차장으로 나왔다. 전시회 알림막과 기념관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14:05 이응노생가기념관 안내도

이응노의 집,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은 지역과 함께 꾸준히 발전하는 공간입니다. ‘이응노의 집’은 고암 이응노가 태어난 충남 홍성군 홍북읍 중계리 홍천마을에 자리합니다. 고암이 열아홉 살 때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그림에 뜻을 품었던 이 땅은 수려한 용봉산과 백월산, 옛 마을과 논 사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지 면적 2만596㎡, 건축 면적 1,002㎡로 전시 홀, 북 카페, 다목적실 등 전시 시설을 중심으로 하는 기념 공간과 초가로 지은 생가, 야외 전시장, 연밭, 산책로 등을 갖추어 2011년 11월에 개관했습니다. 이응노라는 한 예술가를 기리는 기념관이자 미술관으로 시작해, 차츰 예술 문화 자료실과 입주 작가 스튜디오, 한옥 스튜디오 등 시설과 프로그램을 꾸준히 확장하며 새로운 예술을 품은 마을, 마을과 소통하는 예술 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 이응노생가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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