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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海棠花 Music

[페친] 김정식 로제의 글

작성자海棠花 河京鎬|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김정식

 

2026년 5월24일.

용인 구성성당에서 성령강림 대축일 저녁미사에 초대되어 노래 2곡을 부르게 되었다.

 

<예수 내 작은 기쁨>, <호수>

 

큰 성당이라서 저녁미사인데도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는데, 성체를 모신 후 듣는 노래여서인지 교우분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전날부터 대구 소화성당에서 토요일 저녁마사, 주일 아침미사와 교중미사 까지 이틀 동안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던 중 받은 초대여서 기쁜 마음으로 응했지만, 70대가 소화해 내기엔 무리한 일정이어서 다소 힘들다고 여겨졌었다. 그런데 미사를 마친 후 교우분들이 건네는 덕담은 이틀간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내기에 충분했다. 미사중 묵상노래나 콘서트 그리고 음악피정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면 공통적으로 듣는 덕담이 있다.

 

1. 맑고 투명한 음색 때문에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2. 오랫동안 들어왔는데, 30~40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변함없는 목소리로 부르는 찬미를 들으니 영원하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담긴 ‘항상성’을 묵상하게 된다.

 

3. 00년 전 사는 것이 힘들어 죽고 싶었을 때, 형제님의 노래 Tape을 수없이 돌려 들으며 치유와 위로를 받았고, 그래서 힘든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었다.

 

4. 노래 안에 담긴 영성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잘 알아차리게 된다.

미사 집전을 하신 신부님들께서도 다양한 말씀을 해주시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씀 Best는

 

1. 지금 들으신 찬미 노래들을 부르는 이분들이 어떤 분들이신지 잘 모르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분들은 우리 가톨릭교회의 문화자산입니다. 이런 분들이 연세가 꽤 드셨는데도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위로와 회복의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오랫동안 대구 가톨릭대학교에서 교수로 계셨던 신부님의 말씀은 내가 살아온 이 길이 소명의 길임을 다시 한번 깊이 새기게 해 주셨다.)

 

2. 저희 본당의 주일미사가 토요일 2번, 일요일 5번, 그렇게 총 7번입니다. 주임신부님께서 4번을 집전하시고 보좌신부인 제가 3번을 맡았는데, 음원으로만 들어왔던 이분들의 생활성가를 직접 듣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 본당신부님께 부탁드려서 미사 담당을 바꿔서 제가 2번을 더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드리고 있는 일요 저녁미사 까지, 저는 이틀 동안 5번의 1열직관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젊디 젊은 신부님의 이 말씀을 듣고 울컥 했다. 교회 바깥세상에서는 별 관심도 없는 60-70대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미사 때 마다 복사들과 함께 회중석 맨 앞자리에 앉으셔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초집중을 하셨다.)

 

3. 제가 주일학교 시절과 교사시절, 신학생 시절 수없이 듣고 불러서 대부분 다 외우고 있는 노래들을 만들고 부르신 분을, 직접 뵙는 것은 처음입니다. 30~40년 전부터 들은 것 같은데 오늘 들어보니 조금도 변함없이 목소리가 짱짱하십니다. 제 생각으로는 앞으로도 30년은 거뜬히 하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건강을 잘 유지하셔서 꼭 그래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4. 오래전, 대구 신학교에 오셔서 노래가 나오게 된 배경과 그 노래를 부르면서 살아온 복음적 삶을 나누셨는데, 그날 그 자리에 함께했던 교수신부님들과 부제님들, 신학생들 모두 그 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종종 동기 모임에서도 그날 밤의 얘기를 하거든요.(실제로 그날 거기 계셨다가 서품되신 사제들께서 당신의 사목현장에 초대하셨을 때, 대부분 비슷한 얘기를 하셨다.)

 

5. 이 분의 노래로 인하여 사제 성소(혹은 수도성소)를 알아차리는 계기가 되었으니 한 사람의 삶에 직접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또 다른 사람들의 여러 성소에 수없이 많은 영향을 끼쳤을 터이니 신앙인들에게 이 노래들은 노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나를 따르라'와 '바람 속의 주'라는 곡이 많이 거론되었는데, 서울대교구 교구장님이셨던 추기경께서는 어느 행사장에서 내게 오셔서 '사제생활 24년을 지켜준 노래가 <나를 따르라>이기에 꼭 한 번 직접 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고 하셨고, 바티칸 서품식에 가시기 전, 서품 후 귀국하셔서 있게 될 서품 축하미사에서 들으실 축하곡으로 이 곡을 미리 주문하고 가셨었다.)

 

그날도 그랬다. 많은 교우들이 감사 인사와 함께 내 노래에 대한 당신의 체험을 들려주면서 오래전에 누렸던 위로와 치유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었다.

 

그중 한 자매께서 음반을 찾으시기에 주차장에 있는 내 차로 함께 가서 CD 몇 개를 골라드렸다. 마침 그 곁을 지나가다 그걸 보신 분께서도 오늘 들었던 노래들이 당신의 영혼을 깨워줬다면서 그 노래들이 담긴 음반을 포함하여 몇 개를 사셨다. 행복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고 있는데 그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와서 듣고 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영혼의 치유'를 느꼈습니다. 이런 노래들이 담긴 음반이 더 있나요? 있다면 전부 다 사고 싶네요."

 

"제 음반이 30개쯤 되는데 여러 장르의 음악이 담겨 있어요. 어떤 음악이 좋으실까요?"

 

"형제님의 음성과 음색이 내 영혼을 치유시켜 하느님께 잘 인도해준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니 형제님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이면 다 좋습니다.“

 

그래서 내 목소리가 담겼거나 내가 만든 연주곡, 그리고 내가 기획하고 만든 노래까지 다 리스트를 만들어보니 총 38개였다. 그중 28개를 드렸으니 이미 사가신 음반까지 모두 32개를 소장하신 셈이다. 그러면서 알게 된 그토록 많은 창작 작업의 결과에 스스로 놀라웠다. 중학교 교사로 은퇴하셨다는 75세 누나께 성당으로 찾아가 전해드리고 돌아서는데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30여 년 전. 안성시에서 주최한 시민 시낭송 대회에 초대되었다. 초등부, 중고등부, 대학부, 일반부 까지 잘 마쳤고,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집계하는 동안 '시노래 콘서트'를 진행했다. 행사를 마친 후, 심사워원 중 한 분과 오늘 불렀던 시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대학에서 시를 가르친다는 그분 또한 종교는 없지만, 오늘 들었던 내 노래에서 삶의 치유를 느꼈다고 했다.

 

"김 선생님께서 만드신 음반이 모두 몇 개인가요?"

 

"20여 개인데 확실한 건 집에 가서 확인해봐야 합니다."

 

"그 음반을 2개씩 다 사고 싶습니다."

 

"네? 왜 한 사람의 음반을 그렇게 많이 사시는지요? 그리고 왜 2개씩 사시는가요?

 

"오늘 들은 노래 5곡 모두 처음 들었는데 낯설지 않고 편안했습니다. 내 취향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노래들을 잡다하게 듣는 것보다 내가 들어서 좋았던 노래들을 계속 듣고 싶습니다. 2개씩 사는 건 집과 학교 연구실에 따로 놓고 듣고 싶을 때 언제든지 들으려구요.“

 

처음 들었는데도 그 노래들이 다 좋았다는 것도, 그래서 그 아티스트의 음반을 다 사고 싶다는 것도, 처음 겪는 일이지만 기분 좋은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음반은 모두 26개였기에 알려드렸고, 그분의 요청에 따라 송금 계좌번호를 드렸다. 미처 음반을 보내기도 전에 104만을 보내오셨다.

 

"음반은 1개에 만 원이고 5개 이상 사시면 20% 할인해 드리는데 너무 많이 보내셨는데요?"

 

"주말에 시내 음반가게에 가서 음반 가격을 살펴보니 12,000원~18,000원 사이로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어서 따로 주문한 거니 어떤 음반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내게 귀하고 소중한 음악에 합당한 가격을 내가 정하고 싶은 마음이니 그리 받아주셔요.“

 

자신에게 귀하고 소중한 것의 가치를 스스로 최고로 매기겠다는 마음이 감동이었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이름도 잊어버린 미국의 대중음악가가 벌인 신곡 출반 해프닝이 생각난다. 자신의 새로운 노래가 실린 음반 발매를 했는데 LP로 딱 1장을 만들었고, 가격은 당시 한화로 3억 원 정도였다.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던 팬들의 항의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림은 딱 1장이어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부르는 가격에 사면서, 내가 만든 내 노래 음반을 몇 장 만들어 얼마 받을 것인지를 내가 정했는데 뭐가 잘못되었느냐?'

 

바로 팔렸음은 물론이고, 그런 해프닝은 단 한 번이었다. 장자가 쓴 <제물론> '향암격죽' 편에 나오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깨달음은 일회적이다. '

 

다른 사람의 깨달음을 알고 내게도 그런 깨달음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깨달음의 현장으로 달려가 똑같은 상황을 직면한다고 해서 내게도 그런 깨달음이 올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뜻이다.

 

나도 언젠가 딱 한 번, 그 음악가 처럼 해보고 싶었지만, 아직 그러지 못했다. 대신 내 음반을 전부 다 구매하신 ‘지구인’ 이 두 분으로 늘어났으니 나는 축복 받은 예술창작인임에 틀림없다.

참으로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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