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만에 고향의 한 조각과 안식하다
- 하느님의 종 고 안토니오 신부 후손의 한국 방문기
글_엠마 오브라이언: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으로 하느님의 종 고 안토니오 신부의 조카 손녀이다. 현재 영화 감독으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으며, 2025년 한국을 방문하여 전쟁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순례한 기록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일곱을 기억하며"를 제작하였다.
증조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 할아버지와 그분 형제 자매는 앤서니 콜리어(이하 앤서니)의 무덤을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1950년, 아일랜드에서 시신 없이 앤서니를 위한 장례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그해 6월 27일, 한국전쟁 발발 이틀 만에 앤서니는 북한군에게 총살당하였습니다. 그가 숨진 춘천까지는 가족들에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먼 길이었습니다.
앤서니의 조카인 제 어머니 레이첼 콜리어는 앤서니의 가족 농장에 있는 흙을 한국, 삼촌 무덤에 가져다 놓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봄 그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미셸 윈트럽 주한 아일랜드 대사가 골롬반회 전쟁 순교자인 하느님의 종 7위 가족들을 이 잊을 수 없는 여정에 초대했습니다. 이 여정에 함께하기 위하여 저와 어머니, 이모 제럴딘, 하느님의 종 토마스 쿠삭 신부의 가족, 하느님의 종 프랜시스 캐너밴 신부의 가족도 함께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우리는 서울-광주-목포-대전-춘천-강릉-홍천-삼척까지 순교자들이 살았고 일했으며 죽임을 당하고, 묻힌 곳을 순례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광주대교구, 대전교구, 춘천교구 등 한국 교회가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하는 데 기울인 노력은 우리 가족들의 모든 기대를 뛰어넘었습니다. 특별히, 앤서니가 초대 주임으로 사목하셨던 춘천교구 소양로 본당에서 만난 어린이들과 신자들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앤서니는 그곳에서 "고 안토니오 신부님"이라고 불렸고, 아일랜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도 교회 곳곳에 앤서니의 사진과 이야기가 전시되어 그의 삶이 잘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앤서니의 무덤은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성당 뒤편 아름다운 정원에 자리 잡고 있었고, 매일 그를 위해 기도가 바쳐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앤서니의 부모와 형제자매가, 춘천에서 앤서니가 순교한 지 75년이 지난 지금도 얼마나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는지 직접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순교자의 가족들은 한국 교회가 일곱 분의 골롬반회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일랜드로 돌아와 이 용감한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일곱을 기억하며(Remembering the Seven) 』 라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한국 순례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춘천교구장 김주영 시몬 주교님과 광주대교구 옥현진 시몬 대주교님을 비롯하여 이 여정에서 만난 모든 분이 보여 주신 따뜻한 마음과 친절입니다. 이 지면을 빌려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어머니와 이모는 앤서니의 고향에서 가져온 한 줌 흙과 조개껍데기를 앤서니의 묘지에 두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비로소 고향의 작은 조각이 앤서니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종 고 안토니오 신부
1913년 6월 20일 아일랜드 클로거헤드 출생
1938년 12월 21일 사제서품
1939년 한국 도착. 강릉 임당동 본당, 횡성 본당에서 사목하던 중 일제에 의해 가택 연금
1950년 1월 소양로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
1950년 6월 27일 북한군 총에 맞아 순교
편집자: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에 속한 골롬반회 선교사이다. 본문에서는 80위 일람표의 표기를 따랐으며, 순교자의 한국 이름은 고 안토니오다. 전쟁 발발 이틀 만에 순교하면서 6·25 전쟁 첫 외국인 순교자가 됐다. 앤서니 콜리어 신부는 본당 복사 김경호 가브리엘 씨와 지목구장을 만나러 죽림동성당으로 가던 중 춘천 중앙로터리 부근에서 북한군에게 체포되었다. 두 사람은 묶인 채 끌려가다가 공지천변에서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았는데, 앤서니 콜리어 신부는 김경호 씨를 살리기 위해 그를 끌어안고 쓰러졌다. 훗날 김경호 씨는 앤서니 콜리어 신부가 순교한 당시를 교회에 증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