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has been forcefully advancing, and forceful men lay hold of it. (Matthew 11:12, NIV)
Als der Taufer Johannes auftrat, hat Gott angefangen, seine Herrschaft aufzurichten; aber bis heute stellen sich ihr Feinde in den Weg. Sie hindern andere mit Gewalt daran, sich dieser Herrschaft zu unterstellen. (Matthaus 11:12)
역: 세례 요한이 나타났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통치(나라)를 세우시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지금까지 악한 세력이 길에 서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려는 것을 방해해왔다.
예전 섬겼던 교회에서 이 구절에 관한 설교를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주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주제로 설교가 이루어졌던 것 같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 빼앗는 자의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신앙으로 천국을 쟁취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역사적 스토리와 자주 연관되어 이야기 되었던 것 같다. 당시 목사님의 신앙철학과 교회 문화가 굉장히 적극적인 신앙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 말씀은 교회 내에서 마치 하나의 슬로건처럼 사용되었다.
이처럼 이 말씀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한다거나, ‚야베스의 기도‘ ‚긍정의 힘‘과 같은 책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적극적으로 구하고 얻어야 한다는 내용, 또는 교회에서 신앙적 열심을 강조하는 말씀의 근거로 인용되기에 딱 알맞다.
한데 나는 이 구절을 근거로 한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뭔가 먹은 게 소화되지 않아 속이 답답한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 구절이 갖는 그런 의미가 앞뒤 구절과 내용상 전혀 맥락이 맞지 않아서였고, 다른 한편으론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 밝히고 있는 천국의 속성 또는 원리와는 왠지 맞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도 설교의 내용이 한편으로는 타당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받아들였지만, 최근까지 이 성경구절은 내게 구름에 가려진 듯 그렇게 분명치 않은 의미로 남아있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정말 기가 차게도, 최근 독일어로 읽으며 이 구절은 그런 앞서의 의미를 전혀 갖지 않는 전혀 다른 의미의 말씀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구절이 포함된 마태복음 11장은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해 제자들에게 그가 누구인지, 하나님의 구원사역 속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하신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이 구절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사역, 그리고 그 나라를 세우시는 큰 역사를 시작하셨으며, 사단의 세력이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와 이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받는 것을 계속해서 방해했음을 밝히는 말씀인 것이다.
그와 함께 그러한 방해 속에서도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가시며 종국에는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와 능력을 이 구절 속에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이 말씀은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이들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와 역할을 지니는 구절이 오역으로 인해 빛이 바랜다면 이는 너무나 큰 과실이자 손실이지 않을까? 아니 빛이 바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오해케 하는, 잘못된 신앙관을 갖게 하는, 비진리가 진리로 둔갑하는 엄청난 문제가 아닐까? 다시 한번 말씀을 제대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경험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