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잠언 16: 1-3
제목: 여호와께 맡기라
일시: 2007. 12. 30.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오늘은 2007년도 마지막 주일이다. 마지막이 되면 좀 더 숙연해지고 진지해지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게 된다.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생각해본다. 한해를 시작하는 년 초에 바램과 목표가 있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표어도 정했었다. 그 표어를 쉽게 정한 것이 아니다. 기도하면서 깊이 생각하고 지은 것이다. 올 한해의 표어가 무엇이었는가? “2007년! 주여 책임지소서” 라는 표어로 시작했다. 올해의 첫 주 메시지도 바로 오늘의 말씀이었다.
II. 자기 보기를 조심하라.
2007년도를 시작하면서 각자 무엇인가 계획한 것이 있었다. 올해 무엇을 계획했는가? 그 계획한 일이 잘 되기도 했지만, 잘 안되기도 했을 것이다. 여기서 “잘 되었다” “잘 되지 아니했다”는 평가는 나의 관점에서 나온 평가이지 사실, 잘 안된 것이 잘 된 일일 수 있고 잘 된 일이 사실은 해가 되는 일일 수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16: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16:25).
우리는 “자기 보기”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필요가 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러면 보는 각도가 달라지게 된다. 가족이라도 아내의 입장과 남편의 입장이 다르다. 남편은 시집살이에 대해 모른다.
아내가 시집 와서 일년 동안 저희부모님들과 같이 살았다. 일년 후 아내의 고백은 시집살이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나 좋은 시부모인데... 하지만, 제가 장모님의 회갑잔치에 갔을 때 모든 처가 어른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예의를 갖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것을 일년 내내 경험해야 하는 아내는 시집에 있는 자체가 시집살이였던 것이다. 아내의 입장에 있어보니 알겠다.
부모와 자녀의 입장이 다르다. 요즘 아이들에게 교훈도 하고 야단도 치고 마음속에 안타까움도 갖는다. 그러면서 보이는 것이 아이들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보인다. 내가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부모의 입장에서 이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무엇인가 잘해오면 부모님은 얼마나 기뻐했을까 못해오면 얼마나 속상했을까가 생각이 난다. 목사님들이 와서 설주가 아가씨가 다 됐네하면서 며느리삼자고 말한다. 물론 농담인지 안다. 그때 저는 한번 생각해 봐야지 생각한다. 왜 아버님이 저의 배우자에 대해 그리 생각했는지 이해된다. 왜 나의 아내될 사람에게 그렇게 관심이 있으신가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느껴지는 것은 아버님의 시각이다. 아내는 내게 아내이지만, 아버님에게는 며느리였던 것이다.
자기 보기를 조심해야 한다. 나의 계획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지만,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나의 보기는 그러해도 실상은 얼마나 허점투성이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계획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 계획이 생각한 대로 되려면 그때 가봐야 안다. 왜냐하면 변수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의 계획이 잘 세워져도 중간에 엉뚱한 변수가 생기기도 한다. 그 변수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다. 엉뚱하게 일이 터지기도 한다. 갑작스레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 끼어든다. 시험에 합격하니, 가족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 아기가 생기니 어떠한가? 엉뚱한 일이 벌어졌나? 엑시던트인가? 나의 계획은 아기를 졸업 후에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안가지면 두 배나 늘어난다고 한다. 변수를 어떻게 막을 것이고 그것을 억지로 인위적으로 막고 조작한다고 해도 그것이 꼭 잘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있는 대로 출발하라. 우리의 인생은 레벤디쉬한 것이기에 타이밍을 보아야 한다. 삶은 역동적인 것이기에 고정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놓치는 것이 많다.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오늘 우리가 철저히 계획해도 그것이 틀려질 수 있다. 내일 가 보면 우리가 계산에 넣지 않은 것도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재료도 자꾸 변한다. 삶은 라이브이지 녹화방송이 아니다. 우리는 미래를 스케치할 뿐이지, 거기에 모든 것을 지금 채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시작하는 그때 그때마다 다시 거기서부터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있는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우리가 하는 것은 바로 내가 선 거기서부터 하는 것이다. 있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가지고 있는 것이 물고기 2마리고 보리떡 5개면 거기서 시작하라.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맹세하지 말라고 한다. 내일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데 어찌 맹세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얘의 목숨을 두고 맹세할께라고 하면 되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자꾸 그분을 두고 맹세를 하니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예)크리스마스 축하예배를 드릴 때 아이들이 순서를 가졌다. 그때 인규가 이곳 무대에 온다. 그때 아비가 와서 “목사님이 이놈 한다”고 하면서 나의 이름을 팔고 있다. 인규는 약간 긴장한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인상을 풀었다. 그리고 최성민집사에게 왜 내 이름을 팔아서 나쁜 인상을 주느냐고 했다.
계획을 세우더라도 그것이 완전하다고 생각지는 말아야 한다. 아직 성숙되지 못한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예)가끔 학교에 아우스발이 있다. 설주는 계획을 세우라고 했더니 잘만큼 자고 일어나면 시작한다는 것이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계획을 그렇게 세우지는 않는가! 계획을 세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계획을 스스로 짤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이다. 나의 죄된 생각에서 나온 불순한 동기의 계획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심지어 나는 옳게 보았어도 사망의 길일 수 있다.
III. 하나님께 맡기라
계획은 우리가 할 수 있지만,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응답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걸음을 인도하신다. 플랜은 플랜일 뿐이지 플랜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응답과 걸음 걸음은 하나님이 인도하셔야 한다. 왜 다 준비해 놓고도 불안한가? 우리의 경험 상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 것을 기적으로 알 것이 아니라,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을 기적으로 보아야 한다.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기적과도 같다. 계획이 아무리 철저해도 일이 틀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 된 것을 보라. 신기하지 않는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야 한다.
예)왜 시내에서 만나면 놀라냐? 화들짝 놀란다. 이유는 약속도 안하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만난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과 함께 브라질 이과수에서 만나면 얼마나 반가우랴. 케냐의 사파리 여행버스에서 만난다면 정말 놀랄 것이다. 지난 여름 장모님을 모시고 빠리로 가서 수련회를 했다. 거기에 찬양인도자가 있었는데, 많이 보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리는 불편한 목사님이고... 성도 비슷하고... 보니 조카인 것이다. 그에게 이야기 하니 얼마나 놀라는지 모른다. 한사람은 미국에 있다가 동유럽선교사 수련회를 위해 빠리로 오고 다른 한 사람은 한국에 있다가 딸을 보기 위해 왔고... 그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어디를 가든지 숙모를 만났다는 간증이다. 신기하다고... 여기서 우리는 기적이 일상생활인 것을 보게 된다.
2006년도 표어가 무엇이었는가? 기적이 일상생활인 2006년이었다. 믿는 사람들은 기적을 경험해야 한다. 없던 아이도 생기고 되지 않던 일도 되고 불치의 병에서 치료도 받고... 그것이 일상생활처럼 느껴야 한다.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니 그분의 역사를 보아야 한다. 그러한 기적을 우리는 일상생활처럼 느껴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늘 그러니 감사와 감격이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일상생활이 기적인 한해를 선포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일상생활 속에서 자그마한 일도 기적임을 알고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양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나님은 걸음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계획하지만, 응답은 하나님께로서 온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다.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일을 잘 이루고 지혜롭게 하는 것인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고 한다.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액션이다. 루터는 행위가 아닌 믿음을 강조했다. 그가 한 말에서 재미난 것은 가장 좋은 행위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바로 맡기는 행위이다.
믿음이 크다 작다는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맡기고 사느냐이다. 여러 바로메타가 있을 수 있다. 주일 성수나 십일조, 교회봉사와 전도 등등... 그런데 또 다른 중요한 믿음의 바로메타는 바로 맡기는 것이다. 나의 계획을 맡기고 나의 소망을 맡기고 나의 삶을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믿음의 행위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조상들이 언급된다. 그들의 공통된 것은 계획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을 스스로 계획할 수 없었다. 사라도 자녀를 계획할 수 없었다. 모세도 이스라엘을 이끌고 애굽으로 나올 때 광야생활을 계획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백성도 가나안 땅에 들어오면서 여리고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는지 스스로는 계획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들이 한 최고의 행위는 바로 믿음의 행위였다. 즉,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이다.
맡기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맡기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맡길 때까지 기다리신다. 하나님이 축복을 하시려고 해도 맡길 때까지 기다리신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해도 맡길 때까지 사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먼저 나서지 않으신다.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님은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것을 맡길 때까지 기다리신다. 주님은 과부의 두렙돈을 사용하시지 많은 돈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헌신된 자를 통해서 일하시지 아쉬워서 끌여 들여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구걸하는 자로 만들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내어 맡기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예) 절인 배추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잘 절여져서 맛이 나고 고분고분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수영을 할 때 몸이 물에 뜨기 위해서 몸에서 힘을 빼야 하듯이 하나님께 나를 던지라.
맡기는 것은 이익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 물질, 재능과 은사, 계획과 나의 미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존심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생각하기에 손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것이 우리에게는 흑자경영이다. 우리는 우리의 염려거리들도 맡겨야 하고 걱정을 맡기고 힘든 짐을 맡기고 골칫거리들을 맡겨야 한다. 내 자신을 맡길 때 하나님은 나의 인생 속에서 역사하신다. 책임만 지라고 하면 되겠는가? 나의 것을 관리하실 수 있는 권한도 드리라. 실컷 내가 할 것 다해 놓고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되겠는가? 맡길 때 일이 되는 것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시를 쓰고 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편127:1)
IV.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말씀을 정리한다.
첫째, 계획을 세워라. 오늘 말씀은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2008년도의 계획을 세우고 소망을 가지라.
둘째, 계획은 틀릴 수 있기에 거기에 목매달지 말라. 2007년도도 뒤돌아보라.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보라. 어차피 계획대로 된 것은 없다. 계획대로 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흘러왔지. 2008년도도 계획을 세우지만, 틀리기 위해 세우는 계획과도 같다. 너무 계획세우지 말라. 어차피 계획은 또 바뀐다. 따라서 계획이 좀 안되었다고 슬퍼하거나 초조할 필요도 없다. 내가 계획을 위해 있는가? 아니다. 계획이 나를 위해 있는 것이다. 계획에 목매면 나의 인생을 거기에 목매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인생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 목매라. 맡기라. 경영을 하고 계획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맡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의 말씀이다.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우리 인생의 터가 그것이다. 우리가 맡길 때 하나님은 비로소 책임을 지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신다. 맡겨지지는 않고 책임만 지라면 되는가?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맡기지 않는데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는가!
9절도 보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제목: 여호와께 맡기라
일시: 2007. 12. 30.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오늘은 2007년도 마지막 주일이다. 마지막이 되면 좀 더 숙연해지고 진지해지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게 된다.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생각해본다. 한해를 시작하는 년 초에 바램과 목표가 있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표어도 정했었다. 그 표어를 쉽게 정한 것이 아니다. 기도하면서 깊이 생각하고 지은 것이다. 올 한해의 표어가 무엇이었는가? “2007년! 주여 책임지소서” 라는 표어로 시작했다. 올해의 첫 주 메시지도 바로 오늘의 말씀이었다.
II. 자기 보기를 조심하라.
2007년도를 시작하면서 각자 무엇인가 계획한 것이 있었다. 올해 무엇을 계획했는가? 그 계획한 일이 잘 되기도 했지만, 잘 안되기도 했을 것이다. 여기서 “잘 되었다” “잘 되지 아니했다”는 평가는 나의 관점에서 나온 평가이지 사실, 잘 안된 것이 잘 된 일일 수 있고 잘 된 일이 사실은 해가 되는 일일 수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16: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16:25).
우리는 “자기 보기”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필요가 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러면 보는 각도가 달라지게 된다. 가족이라도 아내의 입장과 남편의 입장이 다르다. 남편은 시집살이에 대해 모른다.
아내가 시집 와서 일년 동안 저희부모님들과 같이 살았다. 일년 후 아내의 고백은 시집살이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나 좋은 시부모인데... 하지만, 제가 장모님의 회갑잔치에 갔을 때 모든 처가 어른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예의를 갖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것을 일년 내내 경험해야 하는 아내는 시집에 있는 자체가 시집살이였던 것이다. 아내의 입장에 있어보니 알겠다.
부모와 자녀의 입장이 다르다. 요즘 아이들에게 교훈도 하고 야단도 치고 마음속에 안타까움도 갖는다. 그러면서 보이는 것이 아이들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보인다. 내가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부모의 입장에서 이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무엇인가 잘해오면 부모님은 얼마나 기뻐했을까 못해오면 얼마나 속상했을까가 생각이 난다. 목사님들이 와서 설주가 아가씨가 다 됐네하면서 며느리삼자고 말한다. 물론 농담인지 안다. 그때 저는 한번 생각해 봐야지 생각한다. 왜 아버님이 저의 배우자에 대해 그리 생각했는지 이해된다. 왜 나의 아내될 사람에게 그렇게 관심이 있으신가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느껴지는 것은 아버님의 시각이다. 아내는 내게 아내이지만, 아버님에게는 며느리였던 것이다.
자기 보기를 조심해야 한다. 나의 계획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지만,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나의 보기는 그러해도 실상은 얼마나 허점투성이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계획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 계획이 생각한 대로 되려면 그때 가봐야 안다. 왜냐하면 변수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의 계획이 잘 세워져도 중간에 엉뚱한 변수가 생기기도 한다. 그 변수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다. 엉뚱하게 일이 터지기도 한다. 갑작스레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 끼어든다. 시험에 합격하니, 가족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 아기가 생기니 어떠한가? 엉뚱한 일이 벌어졌나? 엑시던트인가? 나의 계획은 아기를 졸업 후에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안가지면 두 배나 늘어난다고 한다. 변수를 어떻게 막을 것이고 그것을 억지로 인위적으로 막고 조작한다고 해도 그것이 꼭 잘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있는 대로 출발하라. 우리의 인생은 레벤디쉬한 것이기에 타이밍을 보아야 한다. 삶은 역동적인 것이기에 고정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놓치는 것이 많다.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오늘 우리가 철저히 계획해도 그것이 틀려질 수 있다. 내일 가 보면 우리가 계산에 넣지 않은 것도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재료도 자꾸 변한다. 삶은 라이브이지 녹화방송이 아니다. 우리는 미래를 스케치할 뿐이지, 거기에 모든 것을 지금 채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시작하는 그때 그때마다 다시 거기서부터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있는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우리가 하는 것은 바로 내가 선 거기서부터 하는 것이다. 있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가지고 있는 것이 물고기 2마리고 보리떡 5개면 거기서 시작하라.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맹세하지 말라고 한다. 내일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데 어찌 맹세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얘의 목숨을 두고 맹세할께라고 하면 되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자꾸 그분을 두고 맹세를 하니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예)크리스마스 축하예배를 드릴 때 아이들이 순서를 가졌다. 그때 인규가 이곳 무대에 온다. 그때 아비가 와서 “목사님이 이놈 한다”고 하면서 나의 이름을 팔고 있다. 인규는 약간 긴장한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인상을 풀었다. 그리고 최성민집사에게 왜 내 이름을 팔아서 나쁜 인상을 주느냐고 했다.
계획을 세우더라도 그것이 완전하다고 생각지는 말아야 한다. 아직 성숙되지 못한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예)가끔 학교에 아우스발이 있다. 설주는 계획을 세우라고 했더니 잘만큼 자고 일어나면 시작한다는 것이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계획을 그렇게 세우지는 않는가! 계획을 세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계획을 스스로 짤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이다. 나의 죄된 생각에서 나온 불순한 동기의 계획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심지어 나는 옳게 보았어도 사망의 길일 수 있다.
III. 하나님께 맡기라
계획은 우리가 할 수 있지만,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응답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걸음을 인도하신다. 플랜은 플랜일 뿐이지 플랜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응답과 걸음 걸음은 하나님이 인도하셔야 한다. 왜 다 준비해 놓고도 불안한가? 우리의 경험 상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 것을 기적으로 알 것이 아니라,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을 기적으로 보아야 한다.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기적과도 같다. 계획이 아무리 철저해도 일이 틀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 된 것을 보라. 신기하지 않는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야 한다.
예)왜 시내에서 만나면 놀라냐? 화들짝 놀란다. 이유는 약속도 안하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만난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과 함께 브라질 이과수에서 만나면 얼마나 반가우랴. 케냐의 사파리 여행버스에서 만난다면 정말 놀랄 것이다. 지난 여름 장모님을 모시고 빠리로 가서 수련회를 했다. 거기에 찬양인도자가 있었는데, 많이 보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리는 불편한 목사님이고... 성도 비슷하고... 보니 조카인 것이다. 그에게 이야기 하니 얼마나 놀라는지 모른다. 한사람은 미국에 있다가 동유럽선교사 수련회를 위해 빠리로 오고 다른 한 사람은 한국에 있다가 딸을 보기 위해 왔고... 그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어디를 가든지 숙모를 만났다는 간증이다. 신기하다고... 여기서 우리는 기적이 일상생활인 것을 보게 된다.
2006년도 표어가 무엇이었는가? 기적이 일상생활인 2006년이었다. 믿는 사람들은 기적을 경험해야 한다. 없던 아이도 생기고 되지 않던 일도 되고 불치의 병에서 치료도 받고... 그것이 일상생활처럼 느껴야 한다.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니 그분의 역사를 보아야 한다. 그러한 기적을 우리는 일상생활처럼 느껴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늘 그러니 감사와 감격이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일상생활이 기적인 한해를 선포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일상생활 속에서 자그마한 일도 기적임을 알고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양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나님은 걸음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계획하지만, 응답은 하나님께로서 온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다.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일을 잘 이루고 지혜롭게 하는 것인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고 한다.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액션이다. 루터는 행위가 아닌 믿음을 강조했다. 그가 한 말에서 재미난 것은 가장 좋은 행위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바로 맡기는 행위이다.
믿음이 크다 작다는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맡기고 사느냐이다. 여러 바로메타가 있을 수 있다. 주일 성수나 십일조, 교회봉사와 전도 등등... 그런데 또 다른 중요한 믿음의 바로메타는 바로 맡기는 것이다. 나의 계획을 맡기고 나의 소망을 맡기고 나의 삶을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믿음의 행위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조상들이 언급된다. 그들의 공통된 것은 계획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을 스스로 계획할 수 없었다. 사라도 자녀를 계획할 수 없었다. 모세도 이스라엘을 이끌고 애굽으로 나올 때 광야생활을 계획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백성도 가나안 땅에 들어오면서 여리고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는지 스스로는 계획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들이 한 최고의 행위는 바로 믿음의 행위였다. 즉,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이다.
맡기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맡기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맡길 때까지 기다리신다. 하나님이 축복을 하시려고 해도 맡길 때까지 기다리신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해도 맡길 때까지 사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먼저 나서지 않으신다.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님은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것을 맡길 때까지 기다리신다. 주님은 과부의 두렙돈을 사용하시지 많은 돈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헌신된 자를 통해서 일하시지 아쉬워서 끌여 들여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구걸하는 자로 만들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내어 맡기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예) 절인 배추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잘 절여져서 맛이 나고 고분고분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수영을 할 때 몸이 물에 뜨기 위해서 몸에서 힘을 빼야 하듯이 하나님께 나를 던지라.
맡기는 것은 이익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 물질, 재능과 은사, 계획과 나의 미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존심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생각하기에 손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것이 우리에게는 흑자경영이다. 우리는 우리의 염려거리들도 맡겨야 하고 걱정을 맡기고 힘든 짐을 맡기고 골칫거리들을 맡겨야 한다. 내 자신을 맡길 때 하나님은 나의 인생 속에서 역사하신다. 책임만 지라고 하면 되겠는가? 나의 것을 관리하실 수 있는 권한도 드리라. 실컷 내가 할 것 다해 놓고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되겠는가? 맡길 때 일이 되는 것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시를 쓰고 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편127:1)
IV.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말씀을 정리한다.
첫째, 계획을 세워라. 오늘 말씀은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2008년도의 계획을 세우고 소망을 가지라.
둘째, 계획은 틀릴 수 있기에 거기에 목매달지 말라. 2007년도도 뒤돌아보라.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보라. 어차피 계획대로 된 것은 없다. 계획대로 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흘러왔지. 2008년도도 계획을 세우지만, 틀리기 위해 세우는 계획과도 같다. 너무 계획세우지 말라. 어차피 계획은 또 바뀐다. 따라서 계획이 좀 안되었다고 슬퍼하거나 초조할 필요도 없다. 내가 계획을 위해 있는가? 아니다. 계획이 나를 위해 있는 것이다. 계획에 목매면 나의 인생을 거기에 목매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인생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 목매라. 맡기라. 경영을 하고 계획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맡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의 말씀이다.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우리 인생의 터가 그것이다. 우리가 맡길 때 하나님은 비로소 책임을 지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신다. 맡겨지지는 않고 책임만 지라면 되는가?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맡기지 않는데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는가!
9절도 보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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