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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과부와 재판관

작성자권순태|작성시간09.06.29|조회수324 목록 댓글 0
성경: 누가복음 18 : 1-8
제목: 과부와 재판관
일시: 2009. 6. 28
장소: 라이프찌히교회

I. 기도는 생각할수록 신나는 우리의 특권이다. 기도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새벽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철야와 같은 밤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기도한다. 기도는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다. 골방도 좋고 기도원도 좋고 공원도 좋고 트램 안도 좋다. 기도는 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즉각적으로 할 수 있다. 저는 누가 기도부탁을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한다. 일단 기도를 해 놓고 시작한다. 기도 하는데는 예산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비밀스러운 것을 말할 수 있어서 좋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의 제목을 다 말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는 말할 수 있다. 골방에서 해도 하나님은 알아듣고, 영어로 해도 알아듣고, 문장이 안 맞아도 알아듣고, 졸아도 알아 듣고... 우리는 통성기도를 하다가도 옆의 사람이 들어도 상관없는 것은 정확 정확한 문장으로 기도하기도 하지만, 옆의 사람이 듣기에 의식이 되는 부분에서는 얼버무린다. 어차피 하나님은 나의 속마음을 아시니까 말이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시면서 과부의 기도의 비유를 주신다. 그 특징이 무엇인가?

II. 과부의 기도는 벼랑 끝 기도였다.
과부의 처지는 어떠한가? 과부는 그를 보호해줄 남편이 없는 사람이다. 사회적 약자이다.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받는 사람이다. 과부에게는 아무 곳에서도 자발적인 도움의 손길이 없다. 오늘 본문에 그러한 과부가 나온다. 그는 원한에 사무쳐 있다. 아무도 그것에 관심을 갖고 풀어주지를 못했다. 과부는 오직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해야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실권을 쥐고 있는 그 도시의 재판관이다. 비록 재판관은 최악의 악명 높은 사람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면승부를 거는 것이다. 과부가 찾아가는 그 재판관을 보라.
“...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다. 오죽하면 이런 재판관을 찾아가겠는가! 과부의 기도는 벼랑 끝의 기도인 것이다. 벼랑 끝의 기도가 최선의 기도이다. 그 기도는 과부와 같이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믿을 만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의지하고 붙잡고 있을 것이다. 만일 억울한 일을 당해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이 과부가 아니었고 돈 있는 재력가였다면 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에게 뇌물을 썼을 것이다. 권력가였다면 자신의 힘을 사용했을 것이다. 인맥이 있고 발이 넓은 사람이었다면 학연, 지연, 혈연을 사용했을 것이다. 아니 그러한 사람들은 애초부터 무시를 받거나 억울한 원한도 사지 아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부에게는 물질도 권력도 가진 게 없었다. 아는 사람이 없었다. 과부는 갈 곳이 없었다. 과부는 자신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줄 실권자에게 승부를 걸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는가? 어떻게 기도를 하는가? 응답의 기도를 원하는가? 과부의 기도를 드려라! 벼랑 끝에 선 기도이다. 믿을 만한 어떤 구석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모든 것에 절망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의 끝에서 손을 내미신다. 아니, 우리가 아직 절망하지 않기에 우리가 주님께 못가는 것이다. 아직 믿을 구석이 있기에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우리가 끝이라고 그 지점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우리가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하나님이 작업을 시작하시는 때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외에 믿을 것이 없어야 한다. 아무것도 기댈 곳이 없을 때가 바로 주님이 슬슬 일을 시작할 때이다.
예) 만일 아브라함과 사라가 20대에 아이를 낳았다면 약속의 자녀인지 젊음의 소산인지 혼돈할 수 있다.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임을 말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나이가 들때까지 기다렸다
만일 우리가 의지할 것이 있고 그것을 함께 믿어버린다면 일이 되고 난 다음에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인지 자기가 잘난 것인지 혼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부의 기도는 절박한 기도였다. 도움은 재판관 밖에 없는 외통수의 방법이었다.

III. 과부의 기도는 인내의 기도이다.
과부의 기도의 특징은 끝까지 인내하고 승부를 건 기도라는 것이다. 주님이 이 과부의 기도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위해서였다. 과부는 자기의 문제를 가지고 어떤 사람에게 요청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에게 요청하고 있다. 사람을 무시하더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괜찮다. 하나님을 아니 두려워해도 사람을 존중하면 그래도 좀 낫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존중하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이 재판관은 도무지 소망이 보이지 않는 재판관이다.
그러나 과부는 그에게 힘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재판관에게 가야만 일이 해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과부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는 이도 없고 가진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기도는 특권이다. 자꾸 부탁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저도 잘 부탁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함께 하자고 부탁을 하는 것이 가장 일을 잘하는 것이다.
한 아이가 마당에서 돌을 굴리고 있다. 낑낑거리고... 아버지가 말한다. 얘야 왜 너의 가진 힘을 사용하지 않느냐? “아빠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걸요?” 그렇다. 최선을 다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빠가 있다. 아빠에게 구하면 되는 것이다. 돈이 있는 아빠가 있는가? 돈 있을 때 부지런히 달라고 해라.
예) 설주와 혜주는 한국에 방문을 한다. 그들은 동대문시장에서 무엇을 사려고 지금 아주 작정 중에 있다. 돈이 있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그러면 무엇을 살 수 있겠는가를 반문하니 설주는 할머니랑 같이 나가면 된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같이 가면 되는 것이다.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다. 무슨 청구서처럼 드린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기도이다. 우리는 우아하게 감출 필요가 없다. 이미 다 알고 계신데, 무슨 예의가 필요한가? 주님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좀 채워주세요! 좀 고쳐주세요! 좀 합격시켜 주세요. 좀 낳게 해 주세요! 좀 잘 되게 해 주세요! 우리는 기도하면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들어 주시는가 아닌가는 하나님의 권한이시다. 자녀로서 아비에게 구하는 것은 자녀로서의 특권이다. 그 권한을 너무 생각해 줄 필요가 없다. 너무나 세게 말씀드렸는가? 너무나 무리한 부탁을 드렸는가? 내가 너무 염치가 없는 것 아닌가! 돌아가신 할머님의 기도 속에는 그런 표현이 있기도 했다. “하나님 염치 없지만...” 우리는 염치 불구하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과부도 재판관에게 말할 때 그가 들어주든지 안 들어주든지 그것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고 일단 재판관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재판장의 재량에 따라서 그 과부의 요구에 응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된다. 과부의 기도는 인내의 기도였다. 누가 이기는가? 끝까지 싸우는 사람이다. 끝까지 해보는 것이다.
예)중학교 때 싸움이 붙은 것을 봤다. 한 아이는 키가 크고 싸움을 잘한다. 하나는 똥똥하고 작다. 다부지게는 생겼다. 그런데, 아침에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쉬는 시간마다 싸운다. 계속 터진다. 그러면서 수업이 끝나면 다시 큰 아이에게 가서 싸우자고 한다. 오후가 되니 그만하자 내가 잘못했다고 하더라.
그 재판관을 보라.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4-5절) 그 재판관은 과부에게 손을 든 것이다. 하나님을 기도로 꽤 피곤하게 하라. 합심하여 중보의 기도로 하나님을 번거롭게 하라.

IV. 과부의 기도는 가장 가능성이 낮은 바닥의 기도였다.
재력이나 인맥이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있는 사람의 요청도 아니다. 요청을 받는 재판관도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다. 과부의 기도는 바늘구멍을 찾는 기도였다. 응답의 가능성이 낮았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과부의 기도의 비유를 들면서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 중요한 단어가 “하물며”이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7절)고 하신다. 과부의 기도를 그 최악의 재판관이 응답하실 판인데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기도에는 당연히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재판관이 과부의 요청에 응하고 그의 억울함을 풀어준 것은 과부로부터 뭔가 뇌물을 먹었기 때문도 아니고 재판의 공정성을 보고 원한을 풀어준 것도 아니고 “나를 번거럽게” 하고 “나를 괴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에게 겨우 귀찮고 괴로워서 기도에 응답하고 원한을 풀어주시겠는가! 하나님은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를 살피실 것이다.
성경에 3대 “하물며”가 나온다. 하나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며 또 하나는 마태복음 6장25절 이하에 나온다. 사람들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라고 걱정과 염려를 하지만, 주님은 하늘을 나는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시면서 그들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고 하신다. 들의 백합화를 보면서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6:29절)고 하면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0절)라고 말씀하신다. 새도 풀도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말씀이 있다. 7-11절 말씀이다. 주님께서 간구하는 기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 : 7-11). 육신의 아버지도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데 하물며 하늘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이 좋을 것으로 주신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IV.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고 있는가! 과부의 기도를 기억하라. 그는 과부만이 할 수 있는 벼랑끝 기도를 했다. 과부의 기도를 기억하라. 끝까지 인내하면서 주님의 보좌를 흔드는 기도이다. 과부의 기도를 기억하라. 그의 기도의 대상자는 교만한 재판관이었다. 하물며 우리의 재판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신 자요 자녀요 하나님의 권속으로 우리를 삼으셨는데 응답하시지 않겠는가!
새벽에 기도하라. 수요예배에서 함께 하라. 구역모임에서 기도하라.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기도하라. 기도의 기쁨으로 살라. 기도는 우리의 호흡이다. 바쁠수록 기도하라. 모든 것으로 준비되어도 기도로 준비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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