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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 오른뺨왼뺨, 속옷겉옷, 오리십리

작성자권순태|작성시간09.07.27|조회수417 목록 댓글 0

성경: 마태복음 5 : 38 - 42

제목: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일시: 2009. 7. 26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오늘 성경에는 억울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네 오른뺨을 치거든...” 맞을 만해서 맞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로 인해서 당하는 억울한 매인 것이다.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우리를 고소하며 법에 걸리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원치 않는 일을 시키는 것이다.  오리를 가게 하는 것은 그냥 가는 정도가 아니라, 짐을 지우는 것이다.  로마가 유대인들을 점령하고 있던 당시는 로마 군인이 길 가던 행인에게 물건을 들고 쫓아오라고 하면 가다가도 일을 해야 했다.  피지배국가로서 많은 불이익이 있었고 억울한 일이 있었다.

이 세상은 억울한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이다.  노력은 했는데 댓가가 없다.  진실을 말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  어떤 이는 잘사는 가정 잘 사는 나라에서 태어나 호강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못사는 가정 못사는 나라에서 태어나 고생하고 있다.  박지성 같은 사람은 재능이 있어서 한달에도 수억을 번다.  하는 것은 몸을 한 두 번 씩 휘젓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일을 해도 1달러밖에 벌지 못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일을 해도 어렵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더욱 속상한 것은 믿지도 않는 사람이 형통하고 왜 나는 기도하고 믿음대로 살려고 하는데도 억울한 일이 있는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고 불이익을 당하게 될 때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II. 모세의 법과 주님의 법

보통 우리의 즉각적인 반응은 모세의 법에 따라 나오게 된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38절)  이것은 모세의 법에 그렇게 나오는 것이다.  출애굽기 21장 23-25절을 보면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고 한다.  이게 바로 우리의 반응이다.  뺨을 맞으면 뺨을 때린다.  고소를 하면 우리도 맞고소를 한다.  내게 손해를 입히면 배상을 청구한다. 

그렇지만, 주님은 모세의 법 말고 새로운 법을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39절)  주님은 모세의 율법이 틀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모세의 법보다 더 성숙하고 더 높고 더 큰 법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법을 어긴다고 하지만, 어찌 보면 법 밖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지 법을 지킨다. 

예)도둑질을 했다.  남의 물건을 훔쳤기에 법을 어겼다고 한다.  그 도둑이 잡히게 되면 법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법에 따라 형이 주어지고 집행이 된다.  법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혹 잡히지 않는 도둑이 있다면 양심의 법이 그를 지배한다.  도난을 당한 자는 얼마나  가슴 아파 하겠는가?  물론 도둑질을 오래 해서 무감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중요한 것은 법을 지키느냐 아니 지키느냐가 아니라, 어느 법이 위의 법이냐 하는 것이다.

주님은 모세의 법을 넘어서 새로운 법을 주신다.  이전의 법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는 더 높고 성숙되고 완전한 법을 주신 것이다.  이전의 법은 모세의 법이다.  모세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이었다.  틀리면 벌 받고 죄의 삯인 사망이 우리의 결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던 법이었다.  사람들은 법을 지킨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로운 법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 법은 사랑의 법이고 용서의 법이요 관용의 법이다.  죄를 지었지만, 용서받고 생명을 얻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2).   주님은 우리에게 바로 이러한 법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주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이고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III. 쇄기를 박아야 한다.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이전의 법에 쇄기를 박을 수 있다.  이전의 법에 따라 살게 되는 사회는 영원히 보복의 순환을 끊을 수 없다.  이에는 이면 두 사람 다 이가 남아나지 못할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법의 순환에서 스톱을 시키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따라야 한다.   

예)어릴 때 누님과 다툰 일이 있는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누님이 더럽다하면서 침을 방에다가 뱉었다.  조금 튀는 수준이었다.  그러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저도 같이 뱉었다.  어? 침 뱉었어? 나도 뱉었다.  약간 더 많이...  다음은 누님, 다음은 나...  그러다가 누님이 정말 많이 뱉었다.  그리고 다음 나는 홈런을 때렸다. 많은 양이 누님의 얼굴에 맞은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님이 어어 하면서 화장실로 들어간 기억밖에 없다.


쇄기를 박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의 법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그 흐름을 단절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악순환을 막으려면 이제 내게 차례가 왔을 때 멈추게 해야 한다.  지는 자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기는 자이다.  감정 같아서는 저 녀석을 패주고 싶지만, 나를 절제하는 것이다.  무서운 인내와 절제를 하는 것은 큰 자이다.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내고 난 다음에 “또 내가 못 참았구나” 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게 못 참고 저지른 행동이나 언어는 계속 후회된다.  또한 실컷 보복을 해도 시원하지 않을 것이다.  쇄기를 박는 사람이 되라.  쇄기를 박는 사람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이다.  내가 예수님 때문에 참는다 라고 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이 땅에 살면서 “주님 그것은 이론이고 실제는 안 그렇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게 어디 먹힙니까!”  “주님이 말씀대로 하면 억울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또 그것을 이용해 먹습니다” 라고 한다.  그래도 하라!!!  하늘의 원리가 땅에서 적용이 되는가?  그러나 세상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하늘의 원리, 즉, 예수님의 원리가 우리가 사는 삶에도 통한다.  주님의 말씀을 보면 늘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왜 주님이 가르치시는 것은 반대일까?  하지만 그것은 역설의 진리이다.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방법이다.  높아지기 위해서 낮아져라.  으뜸이 되기 위해서는 겸손하라.  살기 위해서는 죽으라.  소유하기 위해서는 버리라.


나를 해하고자 하고 괴롭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는가?  이제 나의 차례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칼자루를 쥐고 있음을 알라.  나의 결단에 따라 일이 어떻게 반전되고 어떻게 흘러갈지가 결정이 된다.  세상이 전혀 생각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가라.  뺨을 치는 자에게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그에게 다른 뺨도 대어라.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오기로 때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속이 안 풀렸으면 그러겠어요 라고 하면서 갖다 대라는 것이다.  송사하고자 하여 나의 속옷을 가져가고자 하는 자에게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이 사람에게 겉옷도 주라는 것이다.  겉옷은 어떠한 것인가?  대물림할 수 있을 옷이다.  그것은 잘 때 이불도 된다.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는 사람에게 십리도 동행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억울한 일을 당하셨다.  그리고 억울하게 십자가의 길도 가셨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셨다.


IV. 이와 쇄기를 박을 때는 넉넉히 하라.

공통된 것이 넉넉이다.  오리를 가지고 한다.  억울한 일이다. 2킬로이다.  짐을 가지고 가야 한다.  그러나 십리를 가라!  겉옷을 달라고 한다.  안주려고 하지 말고 속옷도 주라.  줘도 안 갖고 싶은데...  오른뺨?  왼뺨도!  이왕 할 때 확실히 하라.  오른뺨 치면 그냥 내가 참지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이쪽도 들이대는 것이다.  결국 어쩌란 말이냐?  넉넉하란 말이다.  더 해 주란 말이다. 

무슨 일이든 하게 될 때 최선을 다하고 하는 일은 되게 하라.  못 먹는 감을 찔러본다고 한다.  놀부심보로 안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못쓸 것이라고 함부로 하지 말라.  일은 되게 하려는 사람이 있다.  되는 일도 안 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예)한번은 간디가 기차를 타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 그만 슬리퍼를 떨어뜨렸다.  기차는 서서히 떠나 간다.  그때 깐디는 자기의 한짝 더 있는 신발을 기차 밖으로 던졌다고 한다.  옆의 사람들이 묻는다.  왜 그 신발을 던지는가?  이래 저래 쓸모없게 된 신발을 던지면 누군가 짝을 맞추어 신을 것 아닌가라는 간디의 생각이었다.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었다. 

넉넉한 사람이 되라.  남을 위해 남겨두는 자가 되라.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기 위해 밭에 나가 이삭을 주을 때 보아스는 그 이방여인 룻을 위해 자신의 종들에게 밭에 이삭을 남겨놓으라고 했다.  그와 같이 우리에게 배려하는 남김이 있어야 한다.

방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시간이 있어서 해주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선교헌금을 한다.  그때 모든 교회가 넉넉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전화를 한다.  맘의 여유가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을 위한 마음의 공간을 확보하라.  여유를 가지라.  남겨두라.  내 코가 석자가 되고 내 마음에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상대방을 돌아보지 못한다.  감정의 여지도 남겨두라.  내 마음에 빈 공간이 있으면 처리가 된다.  시간 있을 때 비워두라.  혹은 나를 더 넓히라.  그래서 다른 이들을 위해 남겨둘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라.

예)몇일 전에는 순두부를 사서 먹는데, 경한이가 끓인다.  두개를 넣었다.  그때 마저 하나 더 넣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일이가 왔다.  그리고 함께 먹을 수 있었다.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익명의 초대자가 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보면 예기치 않았던 일로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기도 한다.  하게 될 때 넉넉히 하라.


V. 주님이 우리를 통치하신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법이 무엇인가?  세상의 법과 모세의 법이 아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하는 주님의 법이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억울한 것을 고소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람들은 주님의 법에 따르는 것이다.  쇄기를 박는 주체자요 넉넉한 주님의 모습을 갖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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