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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작성자권순태|작성시간09.08.10|조회수1,003 목록 댓글 0

성경: 요한일서 5 : 11 - 13

제목: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일시: 2009. 8. 9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요즘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파리가 극성이다.  웽웽거리는 게 사람을 대단히 피곤하게 한다.  보통 한 두 마리 일 때는 손으로 잡는다.  파리를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삭삭 빌고 있는 파리를 앞에서 채면 된다.  파리는 이륙을 하면서 45도 각도로 날기에 손에 잡히는 것이다.  손에 닿게 되는 것이 더러워서 움찔거려 못 잡지 작정만 하면 100프로이다.  어제는 밤에 25마리 정도는 잡았다.  이렇게 많이 잡을 때는 방법이 있다.  진공청소기이다.  창가에서 웽웽거리며 어설프게 붙어 있는 녀석들을 모두 진공청소기로 다 빨아들였다.  그 파리를 잡아 죽이는데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고 쓰레기 안에서 기어 다니겠지 하면서 잘 처리했다고 생각했다.  잠 좀 편안히 자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리 목숨이라고 하는가보다.  하지만, 화성에 파리 한마리가 있다는 것이 보고 된다면 그 파리는 귀한 파리가 될 것이다.  학계에서는 대단한 연구거리가 될 것이다.  왜 그런가?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생명체가 더럽던지 징그럽든지 해롭든지 혐오스럽든지 상관없다.  오직 생명이라는 것 때문에 그 자체는 귀한 것이다.   


II. 생명은 고귀하다

생명은 성경의 테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생명을 주신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하셨다.  그 타락으로 죽음에 처한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 구속의 역사는 생명을 주시기 위한 역사였다.  생명은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우리 존재의 기본이 된다.  천하를 다 얻고도 얻는 주체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생명은 주체가 되는 존재이다.  그래서 고귀하다.  결혼하고 일년이 지날 쯤에 아내가 아무래도 아기가 생긴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때 무척 기뻤다.  그 이유는 생명이 생겼기 때문이다.  생명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 가정에 새로운 존재가 생긴 것이고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대한 기쁨의 본능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 생명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장난감을 갖게 된다.  아이들도 장난감을 좋아하지만, 생명을 더욱 좋아한다.  장난감 강아지 수 만 마리보다 진짜 강아지 한 마리가 더 좋다.  더 좋아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이유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장난감 강아지를 보면 정말처럼 만들 수 있다.  차안에 있는 장난감, 베네치아에서 본 장난감은 잠자고 있는 강아지인데, 속에 무엇을 넣었는지 새근 새근 숨쉬는 것과 같다.  신기한 듯이 보았는데, 장난감이다.  인간이 다 흉내를 내지만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 생명이다.   

생명은 파워이다.  교회주차장의 나무를 보라.  잘라내어도 또 싹이 나오고 있다.  불에 탄 산도 수년이 지나면 생명으로 뒤덮힌다.  생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강철이라도 암석이라도 생명은 그것을 뚫어버린다.  생명은 아름다움이다.  어느 날 여유가 있다면 들에 핀 꽃을 보라.  집 옆에 새롭게 나는 풀을 보라.  하나 하나 귀하다.  왜냐하면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웽웽거리면서 나를 피곤하게 했던 그 파리도 자세히 보면 참 아름다운 색상을 가지고 있다.  파랗게 생긴 것이 그 날개를 펴면서 나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이다.

음악을 하더라도 생명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파워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혼이 담긴 연주를 한다고 한다.  종종 우리는 테크닉은 있는데 아무런 철학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한 음악은 기계적인 음에 불과할 것이다.  어느 악기점에서 저절로 연주되는 컴퓨터 피아노를 본 적이 있다.  잘 연주되고 있지만 생명력이 없었다.  그게 제대로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가?  그것은 테크닉이고 기계일 뿐이다.  피아노는 연주자가 연주해야 한다.  그리고 연주를 하되 그 속에 그의 감정과 표현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래서 똑 같은 곡을 쳐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곡을 해석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명이 있음으로 우리는 긴장과 흥분을 가질 수 있다.  좀 피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명이 없는 것은 랑바일리쉬하다.  생명은 톡톡 튀는 것이다.  라이브를 좋아한다.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지겹지 않은 것이다.  생방송의 매력이 무엇인가?  “생”에 그 매력이 있다.  실수가 있다. 갑작스러움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 돌발적인 상황을 알 수 없다. 우리의 삶의 매력이 바로 그것이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다.  녹화방송같이 늘 예상된 일만 있다면 그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나의 계획이 어떻게 될지,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지금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결실이 날지.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그게 삶인 것이다.


III. 생명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이 생명과 연관하여 알아야 할 사실은 이 영역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요 하나님의 영역이란 사실이다.  우리 인간은 생명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도 영원한 생명 말이다. 게놈프로젝트를 통해서 생명의 신비를 풀려고 한다.  인간은 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설계도를 손에 쥐었고 생명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흥분하고 있다.  혹자는 생명은 하나님의 영역인데, 인간이 신의 설계도를 훔쳤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생명은 우리가 신의 영역에 들어가서 설계도를 복사하고 실험하고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갖기 위해서는 아들이 있어야 한다. 

요한일서 5장 11절-13을 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예)이 볼펜이 생명이라고 하자.  성경을 아들이라 하자.  볼펜을 성경 안에 넣을 때 성경을 갖게 되면 자연히 볼펜인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들을 소유하였기에 생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In Jesus Christ - 주 안에 생명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찬양한다.  “주께 생명 있네, 소망 주께 있네...”

요한은 요한서신에서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하는데, 주된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 되심을 말한다.  요한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이다.  예수는 수가성 우물가 여인에게 생명수 되심을 말씀하고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 쫓아온 무리에게 생명의 떡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다가 그렇게 자신을 비유정도로 말씀하지 않고 자신이 바로 생명임을 말씀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라고 하였으며(요14:6) 나는 부활이요 생명(요11:25-26)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러한 생명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안에 있으므로 우리의 모든 삶이 살아있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생명으로 있으므로 이제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생명과 연관이 있게 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티텔로 하게 된다.  그것은 생명력이 넘치는 것이다.  Leben 이 있기에 lebendig 한 것이다.  그 말은 이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이제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그 말은 이제 썩지 않고 남는다는 말이다.  생명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풍성해도 그 결과는 눌이다.  수학에서 아무리 많은 수가 앞에 있어도 곱하기 영이면 영이다.  우리의 인생 곱하기 눌하면 눌이다.  우리의 인생 곱하기 생명이 될 때 우리의 인생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우리의 인생은 생명이 없다는 것이고 생명이 없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남는 게 없다.  그러나 생명과 연결되어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형편없어 보여도 가장 귀한 것이 된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있을 때 생명이 있게 되는 것이고 나의 삶의 모든 일이 생명과 연관이 있을 때 생명력을 띠게 되는 것이다. 

예) 화가들이 한국에서 왔었다.  라이프찌히가 세계적으로 미술로 유명한 도시라는 것이다.  세계 유명한 갤러리들이 60개가 과거 방직공장에 다 들어와서 한국갤러리가 들어올 틈이 없다고 한다.  그들의 작품전시회에 가 보았다.  그들의 작품도 훌륭했지만, 그래서 무엇?  어떤 이는 작품을 만들다가 틀리고 실수한 것을 다 붙여서 그 위에 페인트로 뿌리고 해서 전시했다.  어떤 이는 푸데 자루 뒤집어 쓰고 조금씩 몸을 움직이고 무언인가를 표현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종이를 길게 붙여 놓고는 막 구겨서 천장에 걸어 놓았다.  그래서 무엇?  어떤 분은 마치 정리 안된 아이 방을 보는 것처럼 마구 해 놓았다.  자유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  그 동안 두 명의 화가는 교회 입구 칠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핵심을 알라.  모든 이들이 성화를 그리라는 것이 아니다.  꼭 성가곡을 부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내 안에 있는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이 있을 때 가치가 있고 남는 것이고 눌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예)하나님께서 귀한 건물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게마인데가 아니라, 게보이데이다.  교회건물이 주의 이름으로 사용되지 않으면 교회는 부동산업자요 임모빌리언 밖에 되지 않는다.  8월 11일이 되면 만으로 딱 9년째이다.  지금까지 아내는 밥을 무척 많이 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생명되신 예수님이 없고 밥만하면 식당주방장이다.  권목사가 형제자매들을 위해 운전핍업을 하고 돕는다면 유학도우미일 뿐이다.  권목사가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영적인 일과 육적인 일의 구분이 없어진다. 


IV. 이번 한주간도 우리에게 주어졌다. 

하는 모든 일들이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것이나 음악을 하는 것이나, 문학을 하고 의학을 공부하는 것이나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명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생명력 넘치는 삶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기에 그 생명이 생명력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요한이 이 사실을 너희로 알게 하려고 한 것처럼 모든 라이프찌히 교우들이 알기를 바란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생명으로 계시다는 증거가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풍성하게 드러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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