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마태복음 1 : 1
제목: 예수님의 족보
일시: 2009. 12. 20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1.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의 주된 mission 은 아이를 낳아 후손을 잇는 일이었다. 우양이 많다거나 논밭이 많다거나 다른 진귀한 보물이 중요시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 낳는 일이 그토록 중요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삭이라는 아들을 가지기까지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는 인간적인 해프닝도 벌이게 된다. 그 아들 이삭도 아이를 갖는 것이 그리 용이하지 않았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아기를 낳지 못하므로 여호와께 간구하였더니 이삭의 나이 60이 되어서야 자식을 낳을 수 있었다. 그래도 감사하게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보게 된다. 애낳기 경쟁은 이삭의 야곱에게서 극치를 달린다. 야곱은 하란에서 4명의 아내를 얻게 되는데, 그들의 싸움은 자녀를 낳는 일이었다. 첫째가 라반의 큰 딸 레아였다. 그를 통해서 루우벤, 시므온, 레위, 그리고 유다를 낳게 된다. 이에 시기의 마음이 든 동생 라헬이 자신은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자 그의 몸종 빌하를 통해 아이를 낳는데, 이름이 단과 납달리였다. 레아가 여기에 질세라, 그의 몸 종 실바를 통해 아이를 낳는데 이름이 갓과 아셀이다. 레아가 막간을 이용하여 다시 아이를 낳아 잇사갈과 스불론을 낳게 된다. 그리고 디나라고 하는 딸도 하나 낳게 된다. 라헬도 결국 아이가 생겨서 요셉과 베냐민을 출산하게 된다. 네 여자들이 한 것은 자녀를 갖는 일이었다. 그렇게 후손들이 나와서 만들어 진 것이 성경의 족보이다.
II. 아브라함 이후부터 그 족보가 어디까지 가려고 그렇게 아이를 낳았을까? 예수 그리스도까지이다. 마태복음에서 그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아브라함 집안의 족보에서 포커스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아브라함의 가문이 빛이 나는 것은 예수님이 그 가문에 계셨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린다. 왜 그런가? 그가 믿음이 좋아서인가? 물론 믿음이 좋기는 하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하란을 떠났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가뭄과 기근이 있자 애굽으로 내려갔다. 약한 모습을 보였다. 아내 사래를 통해서 약속의 자녀를 얻게 되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여 상속자로 자신의 충실한 종 다메섹 엘리에셀을 염두에 두었고 아내 사라의 권유로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게 된다. 그런 그가 어찌 믿음의 조상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을까? 바로 그의 가문의 끝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게 아브라함의 정통성이다.
아브라함의 후손과 예수님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사실, 예수님이 태어난 것은 아브라함 가문과 연관이 없다. 예수는 요셉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장 16절을 보라. “요셉은 예수를 낳고”라는 말 대신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한다. 누가복음 3장23절에서는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라고 한다. 요셉의 아들로 알려졌을 뿐이다. 실제로는 요셉이 낳은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서 아브라함의 가문을 축복의 채널로 사용하셨다. 그래서 그는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택정함을 입은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가문을 접붙이신 것이고 그 가문을 끌어안으신 것이다. 예수님으로 인해 정통성을 갖게 된 가문이다.
III.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예수님은 우리와 상관하시기 위해 오셨다. 우리와 관계하시기 위해 오셨다. 아브라함과 관계를 맺으신 주님은 우리와 무슨 관계를 맺기 원하시는가? 가족의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 어떻게 가족의 관계가 이루어지는가? 피를 통해서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님의 피를 이어받듯이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하신 가장 큰 mission은 무엇이었는가?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었다. 십자가는 피를 흘리시는 곳이다. 피를 흘리는 것은 생명의 거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많은 생명을 얻으셨다. 주님이 오심은 생명의 잉태의 순간이었다. 33년간 생명을 품으시고 십자가 고난길이라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믿음의 자녀를 낳으신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생겨난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말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기록한 족보에는 예수님 이후에 더 이상 아무의 이름도 거론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기록해야 할 이름이 있다. 바로 내 이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다. 우리를 잉태하신 것이다. 우리는 아담의 족보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다. 그 족보에서 내려오는 기질은 죄의 가문에서 내려오는 죄의 성품이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해산의 고통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born-again하게 되었다.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제 우리의 이름은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21:27). 그 생명책이 우리의 호적이고 주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family of God에 속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체들을 형제요 자매라고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서로에게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족보있는 사람들이다.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우리는 그 세계 속에 포함된 자이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정통성 있고 명문 가문에 속해 있다. 주님은 한손으로는 아브라함을 잡고 있고 한손으로는 우리를 잡고 있다. 예수님의 족보에 모두가 접붙임을 받은 것이다. 바로 이 잉태와 해산의 고통과 생명의 출산을 위해 이 계절 크리스마스에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크리스마스, 주님의 오심을 축하하며 그리스도안에 한 가족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쁨의 성탄을 맞이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