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야고보서 1 : 2 - 4
제목: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III
일시: 2010. 5. 16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일년 중 우리 지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가 요즈음이다. 이번 주부터 입학시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실 입학시험뿐 아니라, 학기를 마무리하거나 졸업을 앞둔 시험,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을 위한 여러 가지 시험들이 있다. 저나 여러분들이 다 함께 긴장하는 시간이다.
이 시기에 슬로건은 “조금 더 참자”이다. 인내가 요구되는 시기이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다들 인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간 다시 한번 야고보서를 통해서 인내를 촉구한다.
오늘 성경본문의 키 워드는 시험 혹은 시련, 인내, 그리고 온전함 혹은 부족함 없음이다. 시험에서 온전함으로까지 나아가는 데는 인내를 거쳐야 한다. 오늘은 그 인내에 대해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II. 인내는 통과해야 할 의례과정이다.
인내는 우리의 결말이 아니다. 인내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내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할 과정인 것이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에서 완전함으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통과 관문이 인내이다. 따라서 당연시 여겨야 한다. 살아 숨을 쉬고 있는 한 시험은 연속된다. 죽을 때까지 시험은 우리와 붙어 다닌다. 평생을 쫓아다닐 이 시험을 피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여러 가지 시험을 인내로서 감당해 낼 생각을 해야 한다.
인내는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의식으로 여기라. 인내는 자격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인내는 사람의 그릇을 만들어가는 공정과정이다.
요즘 새벽기도 때에 사무엘상을 묵상하는데,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를 보고 있다.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미심쩍어 했다. 어떤 이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삼상10:27)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암몬사람 나하스가 이스라엘을 치러 들어왔을 때 사울은 길르앗야베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명실공히 왕으로 인정을 받는다. 암몬사람들과의 전쟁이 시험대가 되어 사울에게 기회가 된 것이다.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을 때도 시험이 필요했다. 골리앗과 한판 승부를 벌인 저 유명한 엘라 골짜기 싸움은 일약 다윗을 온 백성의 영웅으로 만든 싸움이었다. 시험은 진정한 왕으로 인정받는 의식인 것이다.
인내는 과정이기에 감당해 내어라. 만일 인내의 과정이 없이 바로 열매를 따버린다면 귀한 줄 손에 넣는 것의 귀함을 모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땀도 흘리지 않고 너무 쉽게 얻어버린다면 감사할 줄 모른다. 쉽게 얻으면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애쓰지 않고 주어진 돈은 우리에게 저주가 될 수 있다. 로또해서 성공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숫자 우연히 맞추어 얻은 돈은 영양가 있는 돈이 아니다. 오히려 불행해졌다고 한다. 수고 없이 원하는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다. 그 높은 자리에서 어지러움을 느낄 것이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갑자기 그 높은 자리에 올라간 것이 아니다. 꿈하나 해몽 잘해서 총리로 발탁된 것이 아니다. 그는 13년간이나 바닥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이다. 그 수많은 인내의 세월을 거치면서 민초들의 마음을 읽었고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인내의 과정이 없이는 총리의 직을 감당치 못했을 것이다.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인내의 세월이 필요하다. 야성을 갖고 강인해지기 위해서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영국의 자연주의 과학자 알프레드 위리스가 연구실에서 참나무산누에나방이 번데기에서 나비로 변하여 고치를 뚫고 나오는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나비는 안에서 꼭 바늘구멍만한 구멍을 하나 뚫고는 그 틈으로 꼬박 한나절을 애를 쓰면서 아주 힘든 고통을 치른 후, 나비가 되어 나오더니 공중으로 훨훨 날개짓을 하며 날아갔다. 그는 이렇게 힘들게 애쓰며 나오는 나비들이 안쓰러워서 한 번은 가위로 구멍을 잘라서 넓혀 주었다. 나방은 큰 구멍을 통해서 금방 쑥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좁은 구멍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던 나방은 영롱한 빛깔의 날개를 가지고 금방 팔랑거리며 날아가는데 쉽게 구멍에서 나온 나방은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그 무늬나 빛깔도 영 곱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죽어 버리고 말았다. 앞프레드 박사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비를 위해서 선을 베풀어 준 것인데 나비는 박사의 도움 때문에 죽어버린 것이다. 나비가 날기 위해서 그 고치를 뚫고 나오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는 이들, 졸업시험 등 여러 가지 시험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요 완전으로 나가는 바로 전단계의 필수과정임을 기억하라!
III. 인내는 축복의 통로이다.
인내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인내의 열매는 달다. 인내는 온전함의 직전 단계이다. 그러기에 인내는 축복의 전조이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뻐하라고 하는데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인내의 과정을 거치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내할 수 있다는 것은 기회이다. 입학시험을 치르어야 한다면 그것이 힘든 일이고 인내해야 할 일이지만, 축복된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인내할 기회가 없는 것이 문제이지 인내할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다. 시험은 우리에게 기회가 된다. 문제는 시험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문제는 평가받을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오디션이 생기고 시험을 치라고 하면 피곤한 일이 생겼다고 하는가? 아니다. 기회가 생긴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시험을 주지 마세요가 아니라, 시험을 부지런히 주시되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세요가 되어야 한다. 야고보는 12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베드로전서 1장 6-7절을 보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결실을 맛보게 할 것이다. 인내의 결실을 맛보라.
필리핀 ABGTS 신학교에서 선교학 공부를 시작한 첫 학기였다. 어떻게 세미나를 준비하고 참여해야 하는지 익숙치 않은터라, 처음 몇 주간은 잘 관찰하고 최선을 다해 세미나 준비를 해 갔다. 그런데 어느 날 캠퍼스에서 쉬고 있는 저에게 L 이라고 하는 어느 한국선교사님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세미나는 그렇게 참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척 도전적인 말이다. 속에서 불이 확 났지만, 마음을 가라 앉히고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그가 무슨 말을 한다. 그것은 귀에 다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는 저에게 인내테스트기계였다. 그로 인해 무척 피곤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IMF 위기가 터져서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자고 말하러 그 L 선교사님 집을 방문했다. 갔더니 집이 엉망이다. 그래서 어디 앉을 데가 없을 정도네요 라고 했더니 그게 상처가 되었나보다. 그날 밤 11시 나를 찾아와서 목사님은 얼마나 잘 해 놓고 사느냐고 따진다. 그의 특성을 아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캠퍼스 기숙사 앞에서 뛰어 노는 그의 둘째 아이가 있었다. 씩씩하게 노는 그 녀석을 보고 개구짖다고 개구쟁이라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그날 밤 역시 11시에 찾아왔다. 그리고 목사님 네는 자녀교육을 어떻게 시키냐고 따진다. 이제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대단히 피곤해졌다. 평범한 말을 하더라도 그는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었고 보통 밤 11시에 조용히 와서 말한다는 것이 상대방의 잠을 망친다는 것을 알았다. 세미나 쥬잠멘 아르바이트를 할 때나 어떨 때든지 잘 부딪히기에 그저 안보는 것이 상책이다 싶어 피해 다녔다. 강의실에서 기숙사 내 방으로 오려면 그의 집 앞을 지나가는데, 다른 길로 돌아갔다. 그렇게 피해 다녔다. 그랬더니 어느 날 11시에 또 찾아 왔다. 이 양반이 무슨 일로 왔는가? 그날 밤 내게 온 테마는 왜 자기를 피하느냐고 한다. 자기가 더러운 벌레냐 무섭냐... 사실 그것이 사실이었지만,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어서 아직 영어가 짧아서 외국사람과 시간을 더 보내려고 해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학기가 마감되는 어느 날 한인학생들과 선교사님들 총 20여명 정도가 종강 그릴파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양반은 오지를 않는다. 사모님은 참석했는데 말이다. 물어보니 집에 있으면서 안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찾아갔다. 왜 그랬는지 아는가? 또 밤 11시에 찾아올 것 같아서이다. 왜 회장이 회원을 챙기지 않느냐, 왜 미리 공고하지 않느냐 등등의 이유를 가지고 말이다. 그래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다. 하지만, 그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몇 번 두드린 다음에 이렇게 혼잣말로 들릴 정도로 말했다. “어디 가셨을까? 함께 그릴도 드시고 교제도 하시지, 참 아쉽네...” 나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날 밤 그분이 또 오신 것이다. 가슴이 덜컥했다. 그러나 그날 밤은 달랐다. 두 손을 들고 하는 말이 “그는 목사님 밖에 없군요” 라고 하면서 다가왔다.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를 만난 경우가 없다.
IV. 따라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
시험을 만나게 되면 그것을 네가티브로 보지 말고 포지디브로 보아야 한다. 야고보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게 되면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다. Consider it all joy! 물론 시험 자체가 기쁨은 아니다. 유쾌한 일은 아니다. 시험을 굳이 초청할 필요는 없다. 시험이 있게 될 때 좌절할 것이 아니라,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기쁘다고 여기라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불평할 것 밖에 없고 슬퍼할 것 밖에 없다. 평생을 네가티브의 먹구름 속에서 지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 축복된 사람이 된다. 불평뿐인 인생이 감사의 인생이 되며 운명에 따른 인생이 사명의 인생이 된다. 비참한 사람이 아니요 위대한 사람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똑 같이 고난을 받아도 그 고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위대한 성자의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인도에서 평생을 보낸 마더 테레사도 켈커타의 빈민들과 같이 힘들게 살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테레사에게는 성스러운 사람이요 다른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 되었을까? 테레사수녀는 사명감을 가졌고 빈민들은 운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가난하다면 “나는 돈이 없어 그래”라고 하지 말라. 그러면 비참한 사람이 된다. 오히려 “원래 재벌 갑부의 자녀인데 일부러 돈을 없이한 것이야” 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돈을 초개와 같이 생각하는 돈을 초월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 땅이 없어도 “원래 나는 지주의 아들이지”라고 생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억눌리고 힘이 없는 민중들을 위해 땅을 다 내어 놓은 거야“라고 생각하라. 그런 사람은 대단하다. 우리는 일부러 자청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그게 기쁘게 여기는 것이다.
이 주간에도 시험들이 있다. 삶의 문제들이 많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인내해 내라. 인내하면서 그 시험을 기회로 삼으라. 인내함이 결론이 아니요 통과해야 할 의례임을 기억하라. 과정임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 인내의 결실이 우리에게 축복으로 다가옴을 기억하라. 축복에로의 통로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 야고보의 음성이 이 한 주간도 크게 울려지고 체험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