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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작성자권순태|작성시간14.07.07|조회수260 목록 댓글 0

성경: 에스더 4 : 12 - 16

제목: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일시: 2007. 7. 15(2014. 7. 6)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퓌러목사님이 지난 월요일 71세의 연세로 돌아가셨다. 46세의 나이에 월요기도회를 통해서 동서독의 통일을 점화시키고 독일 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유명인사였다. 하지만, 우리 라이프찌히 한인교회에는 늘 가까운 분이었다. 라이프찌히 한인교회가 역사속에 태어날 때부터 함께 했고 우리 교회를 위해서 언제나 힘이 되고 늘 큰 울타리처럼 우리를 보살펴주셨다. 늘 청조끼를 입고 검소하게 다니시던 그는 저를 보기만 하면 독일말이 잘 안되어서 뻘쭘해 있기도 했지만, 뭔가를 말씀하고 싶어도 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예약하고 만났어도 우리는 무슨 빽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부탁을 해도 가능하면 인터뷰에도 응하고 만나기도 했다. 특히 남북공동예배를 1997년에 할때도 독일 통일과 같이 한국의 통일도 염원하면서 열심히 도우셨던 분이다. 독일 역사에서 언급되지 않을 수 없는 그분을 생각하면서 에스더를 오늘 함께 본다.

 

II. 페르시아가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근동을 다스릴 때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위기가 왔다.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의 오른팔인 하만의 정치적인 음모로 이스라엘백성들이 민족말살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위기 속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그때 영웅이 하나 나온다. 바로 에스더이다. 에스더는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났는가? 아니다. 그는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필연적인 존재였다. 바로 그 위기의 때를 위하여 준비된 자였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우연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연은 계획되지 않은 일이다. 우연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재수가 있네 없네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쓴다. 모든 일을 하나님이 계획하신다는 것이다. 에스더의 스토리는 모든 우연의 조각들이 맞아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잘 모르기도 하지만, 때가 될 때 무릎을 치면서 하나님의 그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된다.

종종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이 있지만 우리에게 일일이 말씀해 주지 않으셔서 좀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나 Gott hat einen speziallen Plannung fuer uns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음을 안다면 그분의 계획에 섭리에 맞추어서 살아야 한다. 인위적으로 우리가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따라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고 올바른 것이요 자연스런 삶이다.

예)아기가 나올 때 우리는 예정일을 말한다. 그러나 예정일보다 한주일 늦게 나온다고 하면 늦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예정이 한 주간 빨랐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예정일보다 한 주간 일찍 나왔다고 할 때 그것을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우리가 원래 예정일보다 예측을 빨리 했어 라고 해야 한다. 아기는 아기가 실제로 나올 때가 예정일이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다. 그 날 나오는 것이 예정일에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억지로 끄집어내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반칙이다. 년 초에 보면 늘 이해의 첫 아기는 누구인가 기자들이 산부인과에 가서 기다린다. 그리고 개띠 아기니 소띠 아기니 한다... 그러면서 올해 어느 아기가 처음으로 0시 땡하면서 나왔다고 한다. 만일 그가 제왕절개로 시간을 맞추었다면 섭리가 아니다. 반칙하지 않은 아기가 되려면 하나님이 자연 진통을 주시고 자연스런 때에 나온 아기여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의 우리의 인위적인 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에스더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자신이 그 자리를 일군 것이 아니다. 에스더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나서려고 왕비가 된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서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자연미인으로 태어났다. 미모를 갖추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태어나다 보니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또한 아하수에로 왕의 새로운 왕비를 맞이할 때에 그 어떠한 사람보다도 에스더에게 끌리는 감정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이후에 규례를 어기고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앞에 나아갔을 때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는가!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밀었고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가끔은 초조하고 답답하게 보여도 하나님은 팔짱을 끼고 계신 것이 아니라, 일하고 계시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작정하신 그 때를 위해 물밑작업을 하고 계신다. 민족말살의 위기를 위해서 하나님은 에스더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III. 에스더의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는 하나님의 때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나서야 하는 mission을 띄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가 일할 때가 왔다. 하나님이 준비시키시고 사용하시는 결정적인 순간이 온 것이다. 별이라는 의미를 가진 에스더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 모르드개 아래서 딸처럼 지냈다. 이렇게 어렵게 성장한 에스더이지만, 이후에 그는 아하수에로왕의 왕비가 되는 것이다. 보통 여기까지가 어린이 동화에 나오는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같이 “그래서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드래요” 라는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된 것이 그가 개인적으로 행복하게 오래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을까? 그녀는 인생을 즐기도록 그런 축복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생명이나 부지하고 권력과 부를 누리도록 계획된 것이 아니다. 에스더는 왜 그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되었는가? 하만의 흉계에서 왕 앞에 나아가 진실을 고하고 이스라엘민족의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의 이 민족적 위기에서 손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시 왕후로 있던 에스더였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주문한다.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형편이 영 좋지를 않았다. 왕후인 에스더에게도 그것은 아주 위험스러운 일이고 어려운 일이었다.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워낙 암살자가 많기에 왕이 자기 부인도 불러야 오는 시대였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다시 한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고 반 위협하면서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 말하고 있다. 모르드개의 말처럼 바로 이 순간, 민족적 위기의 순간을 위해 에스더는 왕후가 된 것이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우리는 “왕후의 자리”라는 손에 든 그 무언가가 있다. “왕후의 자리”는 누리는 자리인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때를 위하여 준비된 자리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위하여 준비된 사람이다. 그렇다면 떨칠 수 없는 성령의 감동과 나를 향한 요구가 있을 때 아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에는 그것을 번거럽게 생각들고 힘든 일이고 희생되어야 할 일이라 거절 하지는 않는가? 우리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지금까지 준비된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독일에서 가장 허무한 때 중의 하나는 집안에 열쇠를 두고 나와 문이 잠겼을 때이다. 어느 자매가 물건을 들여 놓는다고 해서 집에 갔다. 모든 것을 다 들여 놓은 다음에 내가 가려고 하니 나와서 인사하려고 하는데 그만 바람에 문이 잠겨 버렸다. 카드로 노력하고 수많은 노력을 하다가 결국 열쇠마이스터를 부른다. 보통 15만원 정도 출장비를 준다. 열쇠공은 조그만 가방을 하나 가지고 와서 책받침같은 것을 꺼내고 무슨 분무기 같은 것으로 한번 뿌리더니 5초에서 10초 사이에 간단히 문을 딴다. 그리고 “문이 열려서 기쁘지?”라는 듯한 표정으로 씩 웃는다. 아주 기분나쁜 웃음이다. 쉬워보이는가? 쉬워보이지만, 그는 그 순간을 위해서 연구를 하고 경험을 하고 방법을 알아냈을 것이다. 그는 준비되었기에 한 것이다. 이옥희집사님은 청소년유학에 대해 정통하다. 물어보면 몇가지 팁을 주는데 하나를 알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것이다. 김경희집사님은 번역 공증 섭외 통역 독일에서의 정착을 위한 제반 행정 즉 은행 관청비자 집계약 핸디.... 이 모든 것을 하는 뷔로롤 오픈한다. 모든 것에 능력이 있다. 어떻게 보면 잠깐이고 쉽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노하우를 알고 그게 자산이다. 손봉호교수님은 5분칼럼을 위해서 5시간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노래를 잠간 불러주고 그렇게 많은 돈을 받는다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고 발성연습을 했는고... 오늘 설교를 할때면 저는 50년을 준비한 것이다.

 

IV. 에스더가 고민할 때가 왔다. 위대한 민족의 영웅이요 구원자인 에스더는 정작 아무 생각 없이 잘 풀려서 그냥 그렇게 살아왔을 뿐이지 자신이 준비된 사람인 줄을 몰랐다. 이제 모르드개의 갑작스런 요청에 그녀는 고민해야 했다. 그 동안 왜 자기가 왕후의 자리에 앉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마침내 에스더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있게 되었는지를 고민하는 때가 온 것이다. “아 이게 바로 이것을 위함이구나”를 알아야 한다.

이때 에스더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단이다. 14절 말씀을 보라.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는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지만 에스더의 결단은 절망의 결단이 아니라, 소망의 결단이다. 죽음의 결단처럼 보이지만 생명의 결단이다. 그것은 에스더의 위기가 아니라, 실력발휘를 할 기회인 것이다. 그 기회가 왔는데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에스더는 준비가 되었다. 그 준비는 바로 이 기회를 위한 준비였다. 기회가 왔는데 기회를 놓치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다. 기회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이 시간 최선을 다해 준비해 놓는 것이다. 오늘 나갈 때 선보러 나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학위도 준비해 놓으라. 언어도 준비해 놓으라.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오늘 눈에 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언어준비도 필요하다. 아버님이 군에 있을 때 행정병으로 있으면서 재무를 맡았다. 그런데 그것을 잘 둔다고 한 것이 쥐가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 달간 보초를 서는 벌을 받는데, 벌을 선지 몇 일이 되지 않아 부대에 미군들이 왔다 갔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통역을 못한다. 가만히 들으니 가지고 온 물건을 어디에 놓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모른다. 그때 아버님이 가서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다 통했다. 그리고는 시치미를 떼고 뒤로 물러섰다. 보상이 뒤에 있는데 대장님이 오라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고 그 대장의 당번병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영어하나만 가지고 먹고 살 수 있었다. 아버님 시절은 일제시대영어이다. Is that a book?하면 이스데토부꼬이다. 우리는 마이마이 워크맨시대였다. 귀에 꼽고 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원어민시대이다. 현지에 나가서 공부를 한다. 지금은 영어하나만 가지고는 안 된다. 독일어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된다. 2개 이상 해야 한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는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이 소리를 기억해야 한다. 누가 아느냐?라고 하는 것은 모른다는 말이 아니다. 결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고민 안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고민은 위대한 결단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고민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을 크게 부각시키는 모습이다. 고민은 아름다운 것이다. 왜 하필 내게 그 과업이 떨어졌는가? 고민해야 한다. 마침 그게 내게 들렸다. 왜 내가 그때 그 말이 귀에 들어오게 되었는가 고민해야 한다.

에스더의 최종적인 결론이 무엇인가?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의 결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패하면 실패하리로다. 떨어지면 떨어지리로다. 손해보면 손해보리로다. 죽으면 죽으리로다. 퓌러목사님도 비밀경찰의 체포와 암살과 위협에서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이 에스더의 결단과 고백이 그의 마음에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V. 퓌러목사님을 이번주 많이 생각했다. 하나님은 그를 준비시켰던 것이다. 니콜라이교회의 담임목사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히 맡기신 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았다. 사회적 정치적 신앙적 요청이 자신에게 있는 줄을 알았고 고민했다. 그리고 결단했다.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신앙으로 실천에 옮긴 것이다. 퓌러목사님 하면 통일목사님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왕후의 자리가 크든 작든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의미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최고의 일을 하지 않아도, 가장 큰 것을 맡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왕후의 자리를 보면서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는 모르드개의 질문을 매 순간 하면서 의미있는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만들어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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