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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작성자권순태|작성시간05.05.09|조회수177 목록 댓글 0
성경: 베드로전서 1:23-25
제목: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일시: 2005. 5. 8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엇인가 얻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고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무엇인가를 쟁취하기 위해 처절한 인생의 싸움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있었던 어느 자매가 있었는데 그 자매의 메일 주소의 앞 아이디가 ggg였다. Das Geld(Das Geduld), Die Gesundheit(Der Glaube), 그리고 Das Glueck(Die Gnade)이였다. 약간은 세속적인 냄새가 나지만 아주 솔직하며 멋진 아이디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쓴다.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명성을 얻으려고 한다. 학위를 얻고, 지위를 얻고,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얻고자하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멀어져만 간다. 열심히 달려갔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다가 가기는 커녕 우리의 목표로부터 더욱 더 멀어져만 간다. 손에 넣기 보다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우리는 잃어버리는 것 밖에 없다. 무엇인가 얻겠다고 꿈꾸었지만 오히려 하나씩 하나씩 잃어가고 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무엇을 얻겠다고 수고하고 노력한다. 열심히 언어하고 연습하고 렛슨하고... (김빼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전도서에서 솔로몬이 말하는 것과 같이 마치 잃기 위해 얻으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버리기 위해 얻으려는 것과 같다. 이 잃는 일에 대해 사실 지금까지 경험해 오지 않았는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왔는가!
예) 최근에 저는 어금니를 하나 잃었다. 그것은 저를 슬프게 했다. 사실은 그것은 별것 아닐 수 있다. 이에서 무엇인가가 빠져 나갔다. 나는 단순히 때워놓은 무엇인가가 쓰다보니 빠져 없어진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치과에 갔더니 의사가 샤데하면서 이가 깨어졌고 빼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마취주사를 놓더니 빼어버렸다. 그날 저는 때우고 집에 돌아올 생각을 했다가 바로 몇 분 안에 선택의 여지도 없지 깨어진 이빨을 뽑아낸 것이다. 그래도 안쪽에 있는 거라서 보기 흉하지 않지...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이를 하나 잃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인생에서 하나씩 하나씩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잃었다는 것은 젊음을 잃어가고 있음의 상징이다(사고로 혹은 싸우다가 잃는 것말고). 더구나 어금니를 잃는다는 것은 열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최선을 다해 할 때 어금니를 물고 한다고 표현하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의 젊은 아름다움과 싱그러움도 잃어갈 것이다. 우리는 건강도 잃어간다. 우리의 부모도 잃어간다. 우리의 꿈도 잃어간다.

II. 조금만 시간이 지나봐라.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겠다거나 성취하겠다는 생각에서 안 잃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무엇을 얻는 것은 고사하고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 잃어가기 때문에 더욱 더 욕심이 생긴다고 한다. 나는 사실은 잘 모른다. 아직 그런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때에 생기는 욕심을 노욕이라고 한다. 늙어서 생기는 욕심이다. 잃을까봐 자꾸 챙긴다는 것이다.

감정도 약해진다. 자꾸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고 발언권이 약해지며 이제는 무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쉽게 노여움을 탄다. 어른들이 이전의 젊던 패기가 없어지고 약한 모습을 보게 된다.
예)장세균목사님과의 주보 갈등이 있었다. 이곳에 처음에 올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주보이다. 오자마자 주보부터 열심히 내 손으로 장만했다. 그때 장목사님은 어련히 알아서 다 할 것인데 뭐가 그리 급해서 자기가 한다고 야단이냐고 오해했었다. 저야 당연히 함께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이렇게 조그마한 것까지 목사님을 신경 쓰이게 하면 되겠는가 젊은 사람이 알아서 해야지라는 의도로 했건만 목사님은 내가 아주 급해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이 드셨던 것 같다. 그리고는 섭섭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 이것을 어느 회합에서 자연히 풀 기회를 가졌다. 저의 마음을 보여드리고 섭섭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씀드렸다(저를 꼬마 때부터 근본을 아시는 목사님, 장세균 하면 저도 어릴 때 무슨 이름이 그러냐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릴 때 한참 아파서 영등포시립병원에 다닐 때 설주 만할 때부터 저를 아시는 사모님! 제가 섭섭해드리게 하면 안 되지). 모든 것을 마치고 저희 집을 나서시면서 현관 앞에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내가 나이가 들었나봐” 저는 그 한마디가 아주 머릿속 깊숙이 들어박혔다. 그때 저는 겉으로는 “뭘요” 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그러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이제 목사님은 60이 되신 분이다. 그때 얼마나 스스로 마음다짐을 했던고... 어른들을 결코 마음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많이 하셔도 들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부모님에게도 느낄 수 있다. 어른들은 잃고 있는 분들이다. 약해져 있는 분들이다. 그분들을 마음 아프게 하지 말라. 그분들을 공경하고 높여드려라.

III. 오늘 말씀은 우리의 인생을 너무나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지금 싱그러운 잎사귀를 내며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무엇인가 결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요즈음 들판에 핀 노란 유채꽃과 같이 인생이 꽃피고 있다. 나무에서 돋아난 새싹들은 이제 제법 컸고 그늘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다.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활기차서 좋다. 이대로 평생을 갈 것 같다.
그러나 그 봄에 피웠던 꽃들, 그리고 그 여름에 무성했던 나뭇잎들, 그리고 그 가을에 풍성하게 맺을 그 열매들... 하지만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 싱그러운 풀과 아름다운 꽃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나중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슬픈 결말을 가지고 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그토록 얻고자 노력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말씀이다. 아름답고 싱싱했던 얼굴들, 그렇게 향기 나던 젊은 시절들도 말라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피부에는 검버섯이 피어 저승사자가 왔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꿈꾸고 열망하여 애쓰던 것들은 싱그럽고 아름답고 화려해 보일 수 있어도 결국 그것들은 유한한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겨우 한 토막이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 속에 있는 조그마한 토막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때를 우리는 지나고 있는 것이다. 그 전과 그 후를 경험할 수 없는 짧은 인생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얼마나 헛된 것인가?
예)가끔 생각하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그 권위 있게 보이던 아버님도 아이 때가 있어서 넘어지면 아프다고 막 우셨겠지. 엄마한테 혼날 때도 있었겠지. 그래도 그것은 요즈음 비디오와 사진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볼 수 있다. 자녀들이 할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는 것을 상상해 보았는가? 우리는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부모님의 뒷부분과 아이들의 앞부분을 보고 산다. 우리는 그 토막 속에서 살고 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때가 있고 모든 것이 기한이 있고 그 목적을 이룰 때가 있다고 한다. 지금 싱그럽고 푸르다고 자랑하지 말라. 지금 화려하게 꽃피웠다고 교만하지 말라. 기억하라.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verloren할 때가 있다.

IV.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영원의 소망을 주고 있다. 글쎄,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는가?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도 결코 잃지 않을 것이 있다. 우리의 성대는 약해져서 목소리는 떨려올 것이다. 우리의 손가락은 감각이 무디어져 음악가들은 더 이상 피아노를 치거나 바이올린을 켜지 못하고 의사는 수술을 하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우리의 기억력은 자꾸 쇠퇴해져 갈 것이다. 외워도 외워도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그나마 알고 있던 것을 안 잊어버리기에도 급급하다. 방금 말해도 또 잊어버린다. 무엇인가 하려고 가 놓고도 “왜 왔지”하면서 스스로 잊는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영원한 것이 있다. 항상 있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예)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이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에게 "내가 무엇이든지 줄 터이니 요구해 보라"고 했다. 이때 디오게네서는 알렉산더에게 "대왕께 영원한 것이 있으면 한 조각이라도 좋으니 주십시오"라고 답했다. 이에 알렉산더는 "그것은 내가 줄 선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디오게네서는 바로 알렉산더에게 반문한다. "그러면 왜 한 순간의 보장도 되어 있지 못하면서 세계를 정복하려고 고생을 하십니까?" 라고 했다는
것이다. 디오게네스(Diogenes)는 참으로 영특한 철학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영원한 문제 때문에 고민했던 사람이다.
바로 디오게네스가 고민하던 것, 그 영원한 것, 세세토록 있는 그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갈망해 왔다. 미이라를 만들어 부활을 꿈꾸었던 이집트인들이 고민했던 것, 부활을 꿈꾸며 묘를 편평하게 하지 않고 동굴 속에 넣었던 유대인들, 냉방시설까지 해 놓고 화려하게 묘를 꾸며놓은 중국인들, 절대자를 갈구하는 철학자들, 영원한 세계를 좇는 많은 이들에게 오늘 본문은 그 해답을 주고 있다. 오직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우리가 가진 것은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것이다. 저는 바로 그러한 영원을 사모하고 그런 소망 속에서 산다.
예) 어버이날이다. 독일에 있으면서 다 좋은데 좀 섭섭한 것이 있다면 부모님들을 자주 뵐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님은 성경책을 하나 가지고 계신데 그 뒤에다가 당신의 약력을 써 놓고 계신다. 1938년도에 예천군 용궁면 산택리에서 나시고... 그리고 학교와 결혼과 자녀들과 기타 중요한 여러 인생의 랜드마크들을 쓰시고 나서는 일기가 81살까지로 되어 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앞으로 12년 정도 남았으니 1년에 잘 만나도 12번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짐했다. 아버님! 그러다가 갑자기 돌아가셔도 하늘에서 봅시다. Wiedersehen im Himmel 이다. 그래 아들아 하늘에서 보자. 영원한 생명 속에서 함께 있자구나. 우리는 그냥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이다.
V. 세세토록 있다는 그 주의 말씀은 무엇인가?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의를 갖는가? 오늘 본문에서 이 말씀을 꾸미는 수식어구는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있는” 그리고 “세세토록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생명을 주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 말씀은 특별히 우리를 두 번 낳았다.

1) 첫 번째 이 말씀은 우리를 창조 시에 낳았다. Geboren 한 것이다. 이 영원하신 말씀은 창조 시에도 동참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으로 인해 태어났다.
예) 게임 중에서도 가라사대 (Gott sprach)게임이 있다. 어린이 주일학교에서 하는 것이다. 정신 차리고 해 봐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가라사대”이다. 가라사대 게임의 근본취지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모든 것이 그대로 된다는 말이다. 창세기에서 보라.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셨고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라 하셨고, 가라사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하셨고, 하늘의 별과 달을 말씀으로 만드셨다. 사람을 만드실 때도 가라사대였다.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26) 누구에게 굳이 말씀하셨다기보다도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만드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만드셨을 때 말씀으로 만드셨다. 우리는 집을 지으려면 철근, 시멘트, 자갈, 물, 모래 등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원재료가 없다. 만일 원재료가 있었다면 그 재료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존재해 오는 것이었을 것이고 만일 하나님과 함께 영원에서부터 존재해 왔다면 그 기원은 어디인가가 문제시 될 것이다. 모든 존재의 기원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든 우주 만물의 존재의 기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빠진다면 우리의 존재는 무너지는 것이다. 우리는 의존적이요 하나님은 자존적이다. 가라사대가 없는 것은 다 무효이다. 가라사대가 있을 때 그 존재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생명이 그렇게 주어졌다.

2) 두 번째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이것은 Neu Geboren한 것이다. 우주만물과 우리를 조성하셨던 말씀이 이제 육신이 되어 오셨다. 요한복음1장 14절을 보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즉, 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 즉, 말씀이신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은 바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기 위함이다. 베드로사도는 이 “말씀”으로 우리가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태초에 우리를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거듭 태어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한번만 태어나서 그것을 가지고 무엇인가 이루고자 한다. 거기에서 성공하고 돈을 벌고 이름을 높이고 야망을 펼치려고 한다. 그것도 해야 되겠지! 그러나 우리는 말씀이 주시는 두 번째의 생명을 얻게 되지 못한다면 그 “말씀”이 진정으로 주고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한번만 태어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두 번째 태어남을 소망해야 한다. 첫 번째 태어나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첫 번째 태어남은 두 번째 태어나기 위한 전제이다.
거듭나는 것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이다. 그분이 우리를 해산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출생된다. 새로운 탄생, 즉, 거듭남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갈보리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은 산고였다. 그냥 죽으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낳기 위한 산모와 같은 고통이셨다. 그리고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그분은 우리를 낳으셨다. 우리는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렇게 십자가로 우리를 낳으셨던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VI. 무엇을 좇고 있는가? 그 일에 최선을 다하라. 특히 요즈음에는 시험으로 인해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얼마나 애를 쓰고 수고하는지 모른다. 안쓰러울 정도이다. 내 마음도 떨린다. 초조해진 계절이 되었다. 저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의 졸업, 입학, 결혼, 직장, 건강 등... 앞으로의 모든 일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 저는 사업이 잘되어지고 돈도 잘 벌고 하는 일들이 형통하기를 바란다. 학교입학도 척척하고...

그러나 기억하라. 그 모든 것들이 주님과 떨어진 일이라면 그것은 시들어버릴 잎이고 풀이요 떨어질 꽃이라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일들이 주님의 영원하신 말씀과 연결되어야 한다. 하는 모든 일들, 계획하는 모든 것들의 중심 속에 영원하신 주님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그 하는 일들이 주님과 연관이 없을 때는 생명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그 일은 시들고 떨어질 것들이지만 생명력을 주고 지탱해주는 것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세세토록 있는 주의 말씀과 함께 할 때 우리의 일들이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지금 그저 열심히만 사는 사람을 보면 불쌍하다. 왜냐하면 시들고 떨어질 때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뿌리를 예수 그리스도에 박고 있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생명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 태어남은 바로 항상 있고 살아있는 말씀으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거듭남이다. 모든 일들이 거듭나기를 바란다. 말씀으로 거듭나라. 주님으로 거듭나라. 영원함으로 거듭나라. 음악도 거듭나라. 나의 인간관계도 거듭나라. 나의 삶의 습관들도 거듭나라. 말씀 안에서 예수 안에서 새로워지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생명력 있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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